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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100년 후, 도쿄의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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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100년 후, 도쿄의 어느 하루

[김성민의 'J미디어']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와 일본 미디어

TV를 켜고 '한일병합 담화'에 관한 보도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순서가 돌아오질 않는다. '하마코'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자민당 출신 원로 정치인(하마다 고이치·浜田幸一)이 배임 용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 미국 유타 주(州)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가 전복되었다는 소식이 먼저 흘러나온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담화 관련 꼭지를 골라봤다. 어느 방송을 봐도 논조는 차분하다. 15년 전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起夫) 전 총리가 나와 이번 담화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힌다. ('한국인 뜻에 반(反)한'이라는 표현은 하토야마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회당 당수 후쿠야마 미즈호(福島瑞穗)는 담화에는 긍정적이지만, 위안부 보상 문제 등이 배제된 것이 아쉽다 한다.

자민당의 반응은 예상대로 부정적이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격앙된 목소리로 '무지', '경솔' 등의 단어를 쏟아낸다. 이미 존재 가치가 이런 자리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정치인이다. 여당인 민주당 내에는 담화 발표의 절차와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의원들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민주당은 지금 9월에 있을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권력투쟁에 한창이다.

▲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간 나오토 일본 총리 ⓒEPA=연합뉴스


일본의 지인들에게서 하나 둘씩 문자가 날아온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로서는 꽤 애쓴 것 같은데 어떻게 보았느냐는 질문들이다. 문자에 답장을 하면서 뉴스를 계속 지켜보는데, 거기서도 관심의 초점은 한국 사회가 이번 담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이번 담화의 핵심이 '한국'만을 특정한 것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엉뚱하게도 갑자기 지난 4월 <요미우리신문>에 실렸던 '미래소설 2020년'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경제기획청 장관 출신인 작가 사카이야 타이치(堺屋太一)가 쓴 이 짧은 글은, 2020년, 직장을 구하러 중국에 가겠다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대화로 시작된다.

"할아버지, 저 내년에 충칭으로 떠나요. 취직이 되어서 전자부품 공장에 다닐 수 있게 되었거든요."

73세의 할아버지는 대학 나온 손자가 고작 월급 15만 엔 때문에 상하이의 대학원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하려는가 싶어 못마땅해 하다 이내 2020년의 현실 감각을 되찾는다.

'지금은 다르지. 엔화가 계속 내려서 1달러가 240엔, 1위안이 거의 70엔이니까 1만 5000천 위안이면 약 100만 엔이로군.'

소설에 따르면, 지금 이대로라면 불과 10년 후에 일본의 경제는 파탄이 나고 일본의 대학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중국의 공장을 기웃거리게 될 것이란다. 사뭇 충격적이었다. 이런 끔찍한 공포 소설을 <요미우리신문> 1면 톱에서 읽어야 할 만큼, 이제 일본인들에게 중국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담화'가 발표되자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전후 65년, '담화'도 있고 '카라'도 있지만…

그런 지금, 중국과 미국을 중심축으로 재편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 체제에서 일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 좋든 싫든 이제 한국은 일본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협력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담화는 일본을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가장 굳게 손을 맞잡아야 하는 관계이다. 중국의 대두, 온난화와 에너지 문제와 같은 지구적 규모의 과제 앞에서 그 연대를 더욱 더 공고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사히신문> 8월 11일자 사설)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서울 올림픽이 열린 80년대였다. 한참 일본이 '록펠러 센터'나 '콜롬비아 픽쳐스' 같은 미국의 상징들과 전역의 부동산을 사들이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이다. 그전까지 한국은 정치, 경제가 아닌 '문화'적으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다.

"전화를 통해 간 총리로부터 담화의 설명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보다 튼튼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중략) 담화를 계기로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을 포함한 앞으로의 일한관계에 활력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미우리신문> 8월 11일자 사설)

늦은 아침, TV에서 낯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아키루호도 미스터! 소바이이떼 미스터…' 카라의 다섯 명이다. 노래를 마치고 짧은 머리를 한 멤버 한 명이 서툰 일본어로 열심히 춤을 가르친다. 진행자들은 그녀들의 엉덩이춤을 따라 배우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요즘 일본에서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인기가 대단하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반가움 반, 안쓰러움 반으로 한참동안 그녀들을 바라본다.

"병합 이후 100년이라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 중 전후의 기간이 훨씬 길다. 전후의 역사는 때로는 풍랑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비교적 안정되게 이어져 왔다. 무역관계는 착실하게 확대되었고 인적 왕래는 연간 500만 명에 이른다. 젊은 세대 문화의 상호 교류 역시 관계를 떠받치는 귀중한 요인이다." (<마이니치신문> 8월 11일자 사설)

역사에 '만약'을 갖다 붙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지만, 만약 해방 후에 한국과 일본 둘 중 한 곳만이라도 역사 청산에 성공했더라면, 그 후 60여 년은, 그리고 한일관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랬더라도 2010년의 오늘, '담화'가 필요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TV편성표를 펼쳐보는데, 하루 동안 공중파 TV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만, 하나 둘 셋… 네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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