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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산불·가뭄과의 전쟁…러시아 '최악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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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산불·가뭄과의 전쟁…러시아 '최악의 여름'

핵물질 옮기고 곡물 수출도 금지…전역이 비상사태

추운 나라 러시아에 뜨거운 재난이 닥쳤다. 모스크바주(州)의 일부 지역에서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5일(현지시간) 현재까지도 불씨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만 명의 소방관을 포함한 16만 2000명의 구호대책 인력은 물론 피해 지역 주민들도 산불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600개의 산불이 타고 있다고 러시아 비상대책부는 밝혔다.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은 18만 8525헥타아르(ha)에 이르고 가옥은 2000여 채가 소실됐다. <AFP>는 이번 산불에 대해 "러시아 근대 역사에서 최악"이라며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5일 기준으로 5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도심의 시계가 300m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짙게 깔렸던 산불 연기는 다소 걷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국은 당분간 기온이 떨어질 가능성이 낮아 추가 산불이 우려돼 언제든 연기가 되돌아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극심한 산불에 이은 연기로 짙게 스모그가 깔린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핵시설·폭발물에 산불 닿을까 노심초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비상사태부 장관은 5일 "지난 24시간 동안 상당수의 산불이 진화됐지만 기뻐할 수 없다"면서 비상사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남부 로스토프를 포함해 많은 지역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산불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곳은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보로네슈, 랴잔, 니즈니노보고로드, 마이리엘, 모르도비아 등 7개 지역이다.

쇼이구 장관은 또 "무엇보다 브랸스크 지역에서 피해를 제어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면서 "만일 불이 거기에 미치면, 토양에 묻혀있던 방사능 물질이 화재로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브랸스크는 우크라이나 국경으로부터 약 70km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로 토양이 방사능에 오염됐다.

이밖에도 러시아는 군사기지와 핵시설, 정유시설 등 산불이 번질 경우 대형 폭발 사고가 우려되는 곳을 집중 관리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4일 휴양도시 소치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다 급거 모스크바로 돌아와 비상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주요 시설을 산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모스크바 인근 해군 보급기지에 산불이 번진 것과 관련해 해군 사령관을 질책하고 고위 장교들을 해임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주 산불이 모스크바 남동쪽 100km 지점에 있는 콜롬나 지역의 해군기지에까지 번지면서 주요 시설을 불태우고 200여 대의 전투기 등 5만 6000톤의 군사장비들을 소실시켰기 때문이다.

군사시설마저 화마에 당하자 당국은 로켓 포탄과 폭발물, 핵물질 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라고 긴급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군은 모스크바에서 서남쪽으로 70km 떨어진 나로-포민스크 인근 병영에 있던 로켓 포탄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밝혔으며 원자력청도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400km 떨어진 사로프의 핵시설에 있던 폭발물과 핵물질을 다른 곳으로 이송했다고 크렘린에 보고했다. 정유 시설도 가동을 일시 중지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러시아에 닥친 산불 피해가 심각하다. 피해 복구 작업에는 50억루블(1억6600만달러)을 초과하는 비용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러시아 루호비치 지역의 어느 숲속에서 소방수가 남은 불씨를 진압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더위·가뭄 겹쳐…러시아 생애 최악의 여름

이번 산불은 숲 속에 퇴적되어 있던 이탄(泥炭)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만나 불이 붙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탄은 식물이나 낙엽의 퇴적물이 분해 작용을 거쳐 만들어지는 탄(炭)이다.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산불은 계속되는 더위와 최악의 가뭄의 영향을 받아 그 피해가 확대됐다. 여름 평균 온도가 23도인 러시아에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혹서는 재앙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5일 하루에만 더위를 피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58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익사자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3472명에 이르며 지난 한달 동안에만 1600명이 익사했을 정도로 피해는 심각해지고 있다.

가뭄 피해도 막대하다. 이번 가뭄은 50년 만에 최악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지난달 23개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또 러시아 전체 밀 농장의 3분의 1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곡물 수출을 이달 15일부터 연말인 12월 31일까지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5일 각료회의에서 "이상 고온과 가뭄 때문에 곡물과 곡물을 원료로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수출을 금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국내 식품가격의 폭등, 재고량 확보 등을 이유로 수출 금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러시아 보로네시의 한 농부가 다 말라버린 사탕무를 들고 울상을 짓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세계 3위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가 곡물 금수 조치를 발표하면서 러시아 밀에 의존하던 나라들, 특히 밀가루 가격의 상승이 빵 가격의 상승으로 직결되는 나라들이 타격을 받게 됐다. 또한 정부가 국민에게 식량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들도 피해를 입는다. 주로 아프리카, 중동의 빈국들이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포장, 마케팅 비용과 비교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유럽 등지에서는 빵 값의 가격 변동률이 적어 체감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밀 수출국인 미국과 아르헨티나, 호주 등은 오히려 러시아의 금수 조치에 화색이 번지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울상인 건 러시아 그 자체다. 밀 가격 오름세는 국제 시장에서보다 러시아 내에서 급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 농장들은 추가 가격 상승을 기대하면서 이미 수확한 밀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밀 가격은 지난 6월 초부터 거의 70% 상승해 혼란이 우려되어 왔다.

일각에서는 11년간 러시아에서 최고 권력을 누린 푸틴 총리의 정치 생명에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푸틴 총리는 1999년 8월 9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게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11년간 러시아의 최고 실권자로 군림했다.

200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재선을 통해 2008년까지 집권한 그는 3기 연임을 금지한 헌법 조항에 따라 총리로 물러났지만 아직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2012년 대통련 복귀를 노리고 벌써부터 발판을 닦고 있다는 관측도 뚜렷해졌다. 그런 그가 러시아 기상 관측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다시 '왕'같은 영향을 끼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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