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색'이나 '개혁·개방'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중국 모식'이란 책 제목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참 흥미로웠다. 중국에서 '체용론(體用論)'을 전공했던 필자는 '중국 모식' 즉 '중국 모델'이란 제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모델'은 곧 현대 중국의 '체(體, Identity)'를 말하는 것인가? 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최근 논해지는 '중국 모식'은 중국의 '체(體)'를 말하는가? 아니면 중국의 '용(用)'을 말하는가? 아니면 흔히 말하는 '중체서용'을 말하는가? 또는 '서체중용'을 말하는 것인가? 참으로 흥미로운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중체중용의 황금시대
▲ 최근 중국에서는 '중국 모식'(china model)이라는 용어가 책이나 기사 상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점차 체와 용을 분리하여 사유하기 시작했다. 몸과 그 몸의 동작이라는 원시적 의미에서 벗어나서, 체용은 사물 자체와 그것이 지닌 속성, 기능을 뜻하는 개념으로 발전했고, 때로는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 시기 체용 이론의 대세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몸과 그 몸을 확장시킨 행위의 구현에 있었다. 사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개념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또한 어떤 도구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요구되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사유방식은 매우 소박했고 그 질박한 사유 자체는 나름대로 거칠면서도 원시적인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공자와 같은 철학자들의 생각 속에서 도덕적 실천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 후 원시적이었던 체용의 사유는 심오한 철리와 조우하면서 현란하게 진화했다. 먼저 인도적 사유방식의 세례를 거친 당대(唐代) 철학은 체용의 옷을 입고 불교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화엄종(華嚴宗)에서 구사하는 현란한 체용적 사유는 그야말로 '드넓은 우주로 날아갔다가 빽빽한 지구로 돌아오는' 경이의 체험이었다. 이 시기 체용은 선(禪)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혜능(慧能)이 말한 진리는 본체가 곧 작용이고 작용이 곧 본체인 꿈틀대는 즉체즉용(卽體卽用)의 경지에서 열렸다.
체용적 사유는 송·명대 신유학과 만나면서 또 다시 만개했다. 주자의 철학 속에서 체용은 도체유행(道體流行)의 이론으로 발전했고, 당시 유학자들은 이를 '솔개가 하늘로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놀다'라는 시구와 연결 지어 철학적 화두로 삼았다.
자신의 몸을 통해 하늘의 도가 유행 발현한다는 사상은 명대 양명학까지 이어졌고, 조선 성리학에서도 큰 화두로 유행했다. 중국 고대 시기는 이처럼 체와 용이 따로 놀지 않는 '중체중용(中體中用)'의 시대였고, 이 시대는 중국 철학의 황금시대였다.
중체서용과 타협의 시대
중국적 '체'에 대한 확신과 신념으로 충만했던 시대가 저물고 서세동점의 시대로 진입하자, 중국인의 사유 속에서 체와 용은 균열이 일어났다. 중국식 '정체(正體)'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던 중국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한다는 자체에 크게 동요했다. 이 시기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적 '체(體)'를 고수해야 한다는 부류와 중국적 '체'를 버리고 서구적 '체'를 도입해야 한다는 부류로 양분되었다.
근대 초기에는 중국적 '체(體)'를 고수해야 한다는 부류가 대세였다. 이들은 고심 끝에 '중체서용(中體西用)'이란 구호를 들고 나왔다. 이때부터 '중체'는 중국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학문, 사상, 특색, 제도 등을 총칭하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서용'은 서구적 도구를 가져다 쓴다는 의미로서, 고대시기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도구 연관의 사용'이란 의미인 '용(用)'이 근대시기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마지막 왕조의 정체(政體)를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전반서화(全盤西化)'가 지식인의 중심 화두로 등장했다. '전반서화'는 낡은 중국의 것을 모두 버리고 서양의 새 옷을 입자는 운동이었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하면서 서구 제국주의와 중국의 봉건사상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것을 전면 부정하고 서구의 생각과 서구의 제도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이 시기는 '서체서용(西體西用)'의 전성시대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시기 옌푸(嚴復)는 '중체서용'을 소라는 몸통에다 말이 행하는 작용을 붙여놓은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엉터리 이론이라고 맹비난했다. 주체가 둘인 이 기괴한 캐릭터는 서세동점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시대와 타협하여 만들어낸 과도기적 사유형태였다.
반면 '서체서용'은 자신의 몸에 '서체'라는 전신갑주를 입으면 과거의 나 자신은 죽고 서체가 내가 되어 살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강렬히 원했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서체중용에서 다시 새로운 중체중용으로 가는가
그러나 중체서용도 서체서용도 중국인들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모든 문명이 들어오면 그것을 철저하게 자기화(localization)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던 중국인들은 마르크스주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초점은 '사회주의 정체(正體)의 탐색'에 맞춰져 있었지 이를 중국식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은 대약진 운동을 넘어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마오쩌둥식 실험은 큰 후유증을 남긴 채 실패로 인식되었다.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사회주의 정체의 확립은 실패로 돌아간 듯 보였다. 사회주의 정체성이 방향을 잃고 동요하던 중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논하기 시작했다.
리쩌허우(李澤厚)의 '서체중용' 이론은 바로 이 시기와 때를 맞춰서 학계에 등장했다. 덩샤오핑과 유사하게 리쩌허우도 서양의 생산방식과 생산력을 끌어들여 중국의 독자적인 길을 걷는 노선을 주장하였다.
중국 사회주의의 정체는 자본주의적 요소의 수혈을 통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 중국 내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골간으로 했던 서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자본주의 도입에 따른 중국식 응용과 적용이 중시되는 '용(用)'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용'의 시대는 적용의 시대이자 전술의 시대였으며 선별의 시대였다. 이를 배경으로 중국에서는 '중국 특색'의 적용이 강조되었고, 실용주의가 모든 교리를 빨아들이는 전술 이론으로 등장했으며, 계층과 지역과 정책에서 우선순위가 극명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중국식 응용'의 전능시대가 지속된 90년대를 거치면서 중국 내에선 오히려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팽배해지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폐해가 중국 사회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도농격차, 빈부격차, 여성소외, 지역격차 속에서 사회주의의 기본 가치인 '공정과 평등'은 상실된 듯이 보였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후진타오 정부의 출범과 함께 '조화사회론'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보완책은 지금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 '베이징 콘센서스'라는 용어는 중국식 체에 대한 전면적 고찰로 해석된다. |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는 이 용어가 적절치 못하며 이를 '중국 특색', '중국 국정(國情)', '중국 경험' 등의 용어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곧 '중국 모델'은 단지 덩샤오핑이 말한 '중국 특색'이라는 중국적 적용(用)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2010년, 중국에서 벌어지는 이 '차이나 모델'에 대한 논의는 이미 '서체중용'의 논의구조를 넘어서 새로운 '중체중용'의 이론을 논하는 것인가? 아니면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는 테두리 속에서 중국식 적용에 대한 다양한 실험의 한 형태에 불과한가?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필자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를 통해 중국의 황금시대는 언제나 고급 문명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자신의 몸으로 만든 뒤 이를 통한 춤사위를 벌인 중체중용의 시대에 비로소 열렸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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