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서방 정보기관 스파이 4명과의 맞교환이라는 냉전 시대 방식으로 지난 8일(현지시간) 풀려나면서 사건은 11일 만에 막을 내렸다. 사건은 미·소 냉전 시절은 물론 007 영화를 상기시키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오늘날 미국의 첩보전에 있어 부차적인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첩보전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 간부였던 마크 세이지먼 미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은 미국이 러시아 스파이를 체포한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서 그 외 국가들이 보다 나은 첩보 기술과 민간인에 대한 테러 음모를 통해 훨씬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AP>는 14일(현지시간) '포스트 냉전시대, 스파이 게임의 더 비밀스러운 측면은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제호의 기사에서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 첩보전의 과녁도 과거 동구권에서 이란과 북한, 시리아, 알 카에다 등으로 옮겨갔다면서 세이지먼의 발언을 실었다.
통신은 현 시대에 정작 가장 치열하고 냉혹한 첩보전은 수천 마일 떨어진 '동쪽'에서 벌어진다면서 이곳에서는 알 카에다 이중첩자들이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을 살해하고, 이란 핵과학자들이 수수께끼 속에서 죽거나 실종되는가 하면, 사막 지역에서 비밀리에 입수된 정보들이 핵확산의 거대한 위협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같은 신흥 강국들이 첨단 사이버 기술을 이용해 기존 강국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도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마크 세이지먼은 "(첩보전에서) 정치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바뀌었다"면서 "예를 들어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종되거나 죽는 이란의 핵 과학자들
▲ 샤흐람 아미리 ⓒEPA=연합뉴스 |
아미리는 지난해 5월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돌연 실종됐다. 그는 이란의 혁명수비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테헤란 말렉 아시타르 대학에서 근무했으며 따라서 이란 핵 개발 고급 정보에도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실종 6개월이 되어갈 무렵 이란 외무부는 미 정보당국이 아미리를 납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올 3월 <ABC> 방송 보도를 통해 아미리가 변절해 CIA에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에 망명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던 아미리가 지난 12일 갑자기 미국의 파키스탄 대사관에 나타나 본국으로의 송환을 요청했다. 미국은 그의 귀국을 허용했지만 결국 최초에 그가 망명을 했는지 납치를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아미리 사건은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그 첩보 활동 면에서도 치열하고 비밀스럽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러시아 스파이들이 캐낸 정보에 대해서는 웹서핑 등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라고 밝혔지만 핵 개발 정보와 연루된 아미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미국이 아미리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이란의 중북부 도시 콤에 비밀 핵 시설을 건설 중인 사실 등이 폭로되는 등, 아미리 사건 배후에는 미국의 치열한 첩보 계획이 숨어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AP> 통신은 아미리 사건과 함께 지난 1월 이란의 또 다른 핵과학자 마수드 알리-모하마디가 테헤란의 자택 부근에서 모터사이클에 장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살해됐다고 전했다. 이 사건 역시 이란의 핵 개발 의혹과 연루돼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를 노린 곳이 어디인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핵 문제 둘러싼 집요한 첩보전
통신은 또 스파이들이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유엔 기구들에 숨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IAEA의 가장 비밀스러운 대화들도 사이버 첩보망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IAEA 관리들의 지적을 전했다.
이란의 핵 개발 의혹 역시 미 정보당국이 이란으로부터 밀반출된 한 랩톱 컴퓨터에서 얻은 정보를 IAEA와 공유하면서부터 공식 제기됐다. 그 랩톱으로부터 미사일 탄도 궤적은 물론 탄두 폭발의 이상적인 고도와 비밀실험실 영상 등이 노출됐기 때문.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 알 카에다의 이중첩자가 자폭해 7명의 CIA 요원과 요르단의 정보 장교가 사망하는 등 미국이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서도 냉혹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첩보전에 비하면 러시아 스파이들은 서방 언론의 표현대로 '냉전의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4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들은 단돈 10달러면 살 수 있는 여행 안내서에 다 나와 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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