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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뜨거운 여름, 전선은 들불처럼 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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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뜨거운 여름, 전선은 들불처럼 번지고

[이웅현 '비극의 아프가니스탄'] 2010년 상반기 전황 총결산

'아버지의 이름으로'

전선(戰線)이 확대되고 있다. 1985년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판쥐시리의 사자' 마수드를 상대하느라 허덕이던 소련군에게, 대소항전의 아프간 전사가 아흐마드 샤 마수드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듯 확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것은 동부 호스트 지방의 잘랄루딘 하카니였다.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본격적으로 탈레반을 상대하기로 작심한 연합군에 대해, 그의 아들 시라주딘이 전선에서 은퇴한 아버지의 업을 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서부 국경지대에 파키스탄의 영토가 움푹 파고 들어온 곳, 그러니까 스핀가르 산맥에 의해서 차단, 격리되어 카불의 권력이 미치기 어려운 이 호스트 지방은 30년 전 잘랄루딘의 금성탕지(金城湯池)였고, 지금은 아들 시라주딘의 아성(牙城)이다. 남서쪽으로 접해 있는 파키스탄의 북부 와지리스탄과 이 호스트 주를 가르는 국경도 하카니 세력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 아프가니스탄의 호스트(Khost),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 ⓒBBC 뉴스

오락자이와 쿠람 계곡, 그리고 미람샤 등을 중심으로 한 북부 와지리스탄은 하키물라 메수드가 이끄는 파키스탄 탈레반의 근거지이자, 알카에다 주력의 은신처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30일 호스트의 캠프 채프먼(CIA기지)에서 발생한 이중간첩 할릴 알 발라위의 자폭테러(8명 사망)는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자 바이툴라 메수드의 사망에 대한 보복차원의 공격으로 알려졌지만, 이 지역의 하카니 세력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일주일 후에는 호스트 주지사의 관저에서도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또 열흘 뒤에는 카불의 대통령궁을 비롯한 정부 관청 건물과 쇼핑센터 등에 대한 동시다발 자폭테러가 발생, 카불은 일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최소 5명 사망). 같은 시기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고향인 우루즈간에서도 자폭테러가 발생했다(최소 16명 사망). 2009년 12월 미군의 증파계획이 발표된 후 시작된 반군의 공세였다.

세 개의 전선

게릴라전에 확연한 전선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지난 9년 동안 34개 주로 구성된 전장 아프가니스탄에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북서쪽 16개 주를 제외한 남동부 18개 주에 대체로 세 개의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쪽 이란과 접경한 헤라트에서 시작해 파라, 헬만드, 칸다하르, 우루즈간, 가즈니, 라그만, 그리고 파키스탄과 접경한 누리스탄과 쿠나르를 연결하는 벨트의 이남 지역이 그것이었다.

이 가운데 누리스탄과 쿠나르의 산악지대는 헤크마티야르의 '히즈브-이-이슬라미(이슬람당)'가 활동하는 북부전선이었고, 난가르하르, 파크티야, 호스트 그리고 파크티카 일부를 포함하는 동부의 험준한 지역은 하카니 네트워크의 병력이 출몰하는 중부전선이었다. 그리고 헬만드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평원 지역이 탈레반을 비롯, 이들과 연계된 여러 무장 단체들이 누비는 남부전선을 구성하고 있었다.

북서쪽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한 바드기스 주에서 시작해서 고르, 바미얀, 카불, 파르완, 카피사, 판지쉬리, 바다흐샨을 연결한 벨트의 이북 16개 주는 탈레반의 주력 파슈툰족이 소수파였고, 카불정권으로 편입된 구 '북부동맹'의 세력권이기 때문에 반군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34개주 ⓒ국제안보지원군(ISAF) 홈페이지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관 매크리스털이 물러나기 전인 2010년 2월 남부전선 특히 한복판이라 할 헬만드와 칸다하르를 작전의 스타트라인으로 삼았던 이유는 중부와 북부전선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통상병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험준한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탈레반의 주무대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지역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남부지역에서는 탈레반의 재원인 양귀비 재배가 창궐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부전선에 집중하겠다는 연합군의 의지가 읽혀지자마자 아프가니스탄 동부지역인 중부전선과 수도권에서 반군의 선공이 시작된 것이었다.

확전(擴戰)

2월 중순, 계획대로 연합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모슈타라크 작전이 헬만드의 마르자에서 전개되자, 이번에는 카불은 물론 '평화로웠던' 북부지역까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세인의 이목이 마르자의 전황에 쏠려 있던 2월 26일 카불에서 반군의 연쇄 자살폭탄공격 사건이 발생, 최소 17명이 사망했고, 3월 첫 주에는 파르완 북쪽 바글란 주 한복판에서 이 지역을 영향권으로 삼고 있던 헤크마티야르 세력과 이 지역에 새로운 전선을 확보하려고 침투한 다른 반군세력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발생해 수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 반군 상호간의 영역싸움으로 50여명이 사망하는 동안, 주 경찰이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방관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아무 일 없었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으로 반군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사흘 뒤에는 하카니의 호스트 지방에서도 나토 요원 2명을 죽음으로 이끈 미군기지 내 자폭공격이 발생했고, 같은 시각 칸다하르에서는 12건의 폭탄공격으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33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에는 칸다하르로 전선을 확대하지 말라는 탈레반의 '경고' 메시지가 발표되었다.

연합군이 남부전선에 전념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 북부지방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4월 초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아프가니스탄 최북단 쿤두즈 주 차하르-다라에서 반군의 공격으로, 교량건설과 지뢰제거 작업을 하던 독일군 병사 3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중순 미군은 '언터처블'한 누리스탄의 코랑갈 계곡에서 두 개의 주요기지와 5개의 위성기지(satellite outpost)를 철수했다. 형식적으로는 애초의 '미션 임파서블' 즉 협곡의 주민설득과 지역치안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출혈을 하기보다는 남부에 집중하기 위한 병력의 전환배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산악지역에 적응하지 못한 작전실패의 자인(自認)이었고, 결과적으로는 패주였다.

▲ 누리스탄의 코랑갈 계곡 ⓒ워싱턴포스트
전장 10킬로미터 폭 800미터 가량의 이 협곡을 포기함으로써 쿠나르와 파키스탄지역의 반군이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셈이었다. 한 달 뒤인 5월 19일 미군의 요새나 다름없는 카불 북쪽의 바그람 공군기지가 수십 명 규모 탈레반 반군의 습격을 받았다. 미국인 계약직원 1명이 사망하고 반군 16명이 사살된, 반군으로서는 실패한 작전이었지만, 전선이 이미 북쪽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바그람은 한국 지방재건팀이 머무는 파르완 주 차리카르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마르자의 작전이 일단락되고 카르자이가 반군과의 독자적인 협상을 시도하는 가운데, 6월 초 카불에서 개최된 소위 '평화 지르가'도 반군이 애용하는 RPG(로켓추진수류탄)포의 타깃이 되었다. 이미 2009년 11월 폭탄재킷으로 무장한 자살폭탄조에 의해 게스트하우스를 공격당해 5명의 스태프를 잃고 즉각 수백 명의 스태프를 철수시킨 바 있는 유엔은 6월 22일, 반군의 공격이 점증한다는 이유로 스태프들의 추가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매주 7건의 (반군에 의한) 민간인 암살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자살폭탄공격도 주당 3건씩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발표했다. 2009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자살폭탄공격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역으로부터 "(미군의 증파결정에 맞서) 탈레반도 병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으며, "노변폭탄은 물론 로켓 공격이 점증하고 있다"는 지휘관들의 보고가 빗발치자, 결국 6월 말 700명 규모의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누리스탄 남동쪽 쿠나르 주에 대한 공세로 대응했다. 2명의 미군과 150명의 반군 전사들이 사망하는, 최근 들어서는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 지난 달 말 '설화'로 사임한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 아프간 주재 미군 사령관이 재임 중 아프간 전황을 설명하는 장면 ⓒEPA=연합뉴스

'뜨거운 여름'

연합군이 남부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또 다음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탈레반을 비롯한 하카니 네트워크 그리고 이들과 협력하는 다른 무장단체들은 중동부지역을 통해서 북부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군의 증파(surge)와 춘계공세에 대해서 반군 역시 제2전선을 열며 확전(surge)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미 정부 내의 견해가 분열되어 있고, 카르자이가 독자적으로 탈레반, 하카니, 헤크마티야르 세력과 접촉, 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의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9년 넘게 지속되는 전쟁에서 미국 못지않게 인내심의 고갈에 시달리고 있는 반군이 국면전환을 노린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장차 진행될지도 모를) 협상에서 우월한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확전일 것이다. 이미 장기전이 되어 버린 전장에 무슨 '장기전의 조짐'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전선의 확장은 여전히 장기전의 전조이다.

아프가니스탄 반군은 탈레반, 하카니 세력, 헤크마티야르 세력 등 다양한 무장세력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이다. 이들 가운데는 풀타임 반군이 있는가 하면, 파트타임 반군도 있다. 반군의 전체 병력규모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북동부의 루트를 통해 저 멀리 북단의 쿤두즈에서부터 바글란, 바그람 미군기지, 그리고 카불까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화기의 사정거리 내에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파르완은 아프가니스탄 북부 힌두쿠시 산맥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산맥이 갈라지는 곳에서부터 카불 북쪽까지의 지역을 샤말리 계곡 혹은 샤말리 평원이라 부른다. 평지이지만 험준한 산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7월 1일, 이 샤말리 평원에도 포성이 울렸다. 사정거리가 기껏해야 700미터를 넘지 않는 RPG 로켓포탄이 한국의 지방재건팀 기지 공사현장으로 발사된 것이다. 이는 주둔 예정지 반경 1킬로미터 이내까지 화기로 무장한 반군이 접근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전에서는 테러와 폭파, 교전이 발생하는 모든 지역이 전선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왔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도 미군의 증파결정, 헬만드의 공세 그리고 워싱턴과 카불의 불화가 이어진 2010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전선으로 화(化)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전 지역이 '뜨거운 여름'이라는 비극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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