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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축구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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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축구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프레시안 스포츠] 나이지리아·가나 축구의 숨은 역사

동물은 아프리카의 야생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컨텐츠다. 또한 동물은 토템신앙이 뿌리 깊은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축구 대표팀의 별칭으로 동물을 내세운 아프리카 국가가 꽤 많다. 우리와 격돌할 나이지리아는 '수퍼 이글스'이고 카메룬은 '불굴의 사자들'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선수 자체를 특별한 이유없이 동물로 은유화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 물론 타대륙 선수들도 동물과 관련된 별명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처럼 많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로 모잠비크 출신의 에우제비우는 '검은 표범'이었고, 가나의 에시엔은 '들소'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닌다.

나이지리아 '동물성' 강조한 월드컵 광고와 알리의 인종차별

23일(한국시간)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국내 한 업체의 새 광고영상이 선을 보였다. 아프리카를 상징할 수 있는 치타, 코끼리 등 동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고릴라는 한국 팬들의 함성에 귀를 막는다. 이 화면은 곧바로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연상시키는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변환된다.

동물을 적극 활용한 이 광고영상의 제작 의도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인종차별적 문제로 비쳐질 수 있는 코드를 담고 있다는 점이 옥에 티다. 콕 집어서 얘기하자면 고릴라가 곧 나이지리아 선수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특히 '흑백갈등'으로 오랜 기간 고행을 했던 남아공이 이번 월드컵 개최지라는 점에서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군입대를 거부해 챔피언 자격을 내놓아야 했던 무하마드 알리는 반전을 했다는 이유로 60년대를 가장 잘 이해했던 스포츠 스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그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한 동료 흑인 복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75년 알리는 마닐라에서 열린 조 프레이저와의 경기를 앞두고 프레이저를 '고릴라', '납작코' 등으로 불렀다. 알리는 "마닐라에 온 고릴라를 때려눕히겠다"고 공언했다.

프레이저는 알리가 입대 거부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재정적으로 도움까지 줬던 친구였다. 프레이저는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하며 "알리가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당시 너무 분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프레이저는 이 경기에서 알리에게 패한 것 이상으로 알리의 모욕적 언사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프레이저에게는 알리가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또 한 명의 '백인'이었다.

▲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세리모니를 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선수들 ⓒ뉴시스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

아프리카 축구를 보는 서양의 시선은 때때로 편향적이다. 그들은 동물적 감각을 갖춘 아프리카 선수들의 운동 유전자를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또한 유럽 식민지와의 커넥션이 아프리카가 비교적 빠르게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이 흘리는 땀, 아프리카 축구 발전을 위한 진지한 노력에 대해서는 서구 언론의 관심이 크지 않다. 아프리카 축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정밀한 크로스나 헤딩슛으로 상징되는 독일 축구의 효율성이나 프랑스의 '아트 사커' 와 같은 설명은 찾기가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은 그들을 지배했던 프랑스를 이겼다. 주요 언론들이 분석한 세네갈의 승리 요인 중 첫 번째는 세네갈 선수들이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몰라보게 달라졌던 세네갈의 전술적 장점, 프랑스를 상대하기 위해 가다듬었던 그들의 정신자세는 드물게 거론됐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세네갈 국민들이 이 경기에서 이긴 뒤 즐거워하는 모습만이 간간이 TV 전파를 탔을 뿐이다.

아프리카 축구도 그들만의 '박스컵'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국가 지도자들은 축구의 위력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나이지리아의 벤자민 아지키웨(지크)는 대표적 인물이다. 아마추어 축구 선수이기도 했던 지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지크의 어슬레틱 클럽을 창설했다. 이 팀은 나이지리아 최강의 축구팀으로 발전했다.

이 팀은 능력만을 보고 선수를 뽑았고 과학적인 전술을 경기에 도입했다. 관중들은 이 클럽의 정교한 축구 스타일에 박수를 보냈다. 축구로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부족간 갈등의 돌파구를 마련했던 지크는 나이지리아 초대 대통령이 됐다.

가나와 나이지리아가 아프리카 축구의 강자로 군림하는 데에는 나이지리아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아지키웨 컵 대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70년대 박스컵 창설로 축구를 통한 민족주의에 초점을 맞췄듯, 아프리카 국가들도 비슷한 접근과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가나의 초대 국가 원수 크와메 은쿠루마도 아프리카 축구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196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 클럽 축구대회의 명칭은 은쿠루마 컵인 것만 봐도 그가 축구에 미친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지크 대통령이 후원했던 나이지리아 축구와 은쿠루마의 가나 축구는 일찍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아프리카 축구 수준을 높였다.

가나 축구 대표팀의 별명은 동물과 관련이 없는 '검은 별'이다. '검은 별'은 범아프리카 주의의 상징. 아프리카 노예 문제 개선을 위해 힘썼던 자메이카인 마커스 가비에 의해 만들어진 운송선의 이름에서 따왔다. 은쿠루마는 특히 이 '검은 별'이라는 별명에 애착이 많았다. 50, 60년대 가나 대표팀 유니폼 상의에 크게 장식됐던 '검은 별' 마크는 지금은 매우 작아졌다. 하지만 가나 사람들에게 '검은 별'이 갖는 의미가 축소된 것은 아니다.

▲ 포효하는 가나 축구 선수들 ⓒ뉴시스

왜 아프리카 축구는 외국인 감독에 의존하나?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나온 아프리카 여섯 팀 중, 다섯 팀이 외국인 감독을 두고 있다. 과거 프랑스에 독립하기 위해 축구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알제리만이 자국 감독에게 특명을 맡겼다.

흔히 백인 감독이 아프리카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백인 주술사'가 된다. 아프리카 축구는 유난히 이런 '백인 주술사'들을 사랑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와 격돌했던 토고는 흑인 케시 감독을 월드컵 직전 사임시켰다. 대신 독일 출신의 오토 피스터를 감독으로 내정했다. 이번에 우리와 맞붙는 나이지리아는 자국 출신 감독이 경질되고, 스웨덴의 라거백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아프리카 축구가 '백인 주술사'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외부의 영향에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 선수를 더 뽑아야 하느니 어떤 풋볼 아카데미 출신을 발탁해야 한다느니"와 같은 축구계의 압력을 사실상 외국인 감독만이 무시할 수 있어서다. 아프리카 축구의 이런 선택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의 선수선발 원칙과도 맥이 닿아있다.

아프리카 축구는 독립 초기 잉글랜드, 프랑스 등 자신들을 식민지배 했던 국가의 감독들을 선호하지 않았다. 냉전시대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아프리카에는 동구권 축구 코치들이 대거 몰려 왔다. 축구를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알리려는 동구권과 축구 기술발전에 갈증을 느꼈던 아프리카 축구계는 이렇게 만났다.

그 뒤에는 브라질 축구 감독들도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 축구에 브라질 축구 스타일을 접목시키기가 쉽다는 판단에서다. 식민지 커넥션이 감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단 선수들과의 언어소통이 자유롭다는 점이 이들의 강점이다. 2002년 세네갈을 8강에 올려놓은 감독은 세네갈을 지배했던 프랑스의 브루노 메취였다.

우리는 아르헨티나 축구에 대해 화려한 기술의 탱고축구라는 평가를 내렸다. 패했지만 그들의 뛰어난 기량을 '쿨'하게 인정했다. 이제 16강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나이지리아 축구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어떨까?

경기 결과를 떠나 적어도 나이지리아 선수들의 '동물성'을 강조하는 시각만은 사라졌으면 한다. 나이지리아 축구는 선수 구성 면에서 우리보다 더 유럽화 돼 있는 팀이고 적어도 우리만큼 자국의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국가다. 아프리카 축구를 '동물의 왕국'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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