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분쟁의 이유와 원인 모두 1993년과 같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쟁의 원인은 북한의 핵개발과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이고 촉발 동기도 대규모 군사동원 훈련이었다. (당시에는 팀 스피릿이었고 이번에는 키 리졸브로 이름만 바뀌었다.)
1993년과 2013년이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당시 북한은 핵개발을 미약하게나마 하려고 한다는 수준이었지만 지금 북한은 세 차례나 핵시험을 진행한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북한의 전력이 미국보다 월등히 낮은 상태였지만 지금은 북한과 미국의 전력 차이가 핵무기로 인해 상당히 보완되었다고 볼 수 있다.
▲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가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은 연일 긴장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사진은 노동신문 14일자 2면에 실린 포사격 훈련 장면.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평도와 백령도의 타격과 관련된 포병부대의 실탄 사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
파괴력과 후속효과로 인한 피해로 보았을 때 핵무기의 위력은 거의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 전쟁은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양쪽 모두의 공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자국 내에서 전개하는 대규모 훈련을 통한 위력 시위나 더 위력적인 무기 개발 등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핵무기도 상대방 국가에 투하할 수는 없지만 핵시험을 핑계로 자국 내에서 터트릴 것이고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전개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 것, 그리고 핵무기를 활용한 더 위력적인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 상태로 돌입한 것과 같은 상태라 볼 수 있다. 연례행사라고는 하지만 미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동원훈련을 진행하고 있고 이에 대해 전례 없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 반응은 미군의 훈련에 대한 맞대응 정도가 아니라 정전협정 폐기와 남북 상호 불가침 조약의 폐기까지 선언되었고 대응 수준도 대폭 올렸다고 한다. 또한 북한이 보유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무기가 비교적 단순한 핵분열탄인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을 넘어 핵융합까지 응용한 증폭분열탄, 수소폭탄 등이라고 거론되고 있다. 더 나아가 핵폭탄의 폐해를 대폭 줄인 EMP탄까지 가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다양한 출처에서 제시되고 있다. 심지어 중성자탄까지 거론되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북한의 EMP탄 보유에 대한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소설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EMP탄을 개발한 것뿐만 아니라 실전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EMP탄의 원리와 위력, 그리고 사용 가능성
EMP탄(Electro-Magnetic Pulse)이란 말 그대로 강력한 전자기파를 만들어 주변에 있는 전자기기들을 파괴하는 폭탄이다. 여기서 전자기파란 움직이는 전하에 의해 발생하는 파동을 뜻한다. 원래 전기장은 전기(전하) 주변에 생기는 것이고 자기장은 자석 주변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장과 자기장은 상호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 전기장의 변화는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자기장의 변화는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전기(전하)가 가만히 있으면 그냥 전기장만 만들지만 움직이게 되면 주변에 자기장까지 만들어낸다. 이것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동시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한다. 전자기파는 공기 중에서 빛의 속도로 전파되므로 전기 신호를 전달해주는 효과적인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선통신 시스템은 전자기파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전하의 움직임이 전자기파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역방향도 가능하다. 즉 전자기파가 있으면 그것에 의해 전하가 움직일 수도 있게 된다. 결국 전하가 풍부한 도체 속에는 주변의 전자기파에서 영향을 받아 유도 전류가 흐를 수 있다. 이렇게 유도된 전류는 도체 속을 움직이면서 저항을 만나면 열을 내게 된다. 그리고 회로 속의 부품들에 유도 전압을 걸어준다. 만일 전자기파에 의해 유도된 전류가 매우 큰 값이라면 도체에서 강한 열이 발생할 것이고 매우 큰 유도 전압이 걸린 전기 부품(저항, IC, 축전기 등)들은 터져 버리게 된다.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 바로 EMP탄이다.
핵폭탄이 터지면 방사선이 발생하는데 그중에서 전기를 띤 '전자'의 빠른 흐름을 뜻하는 베타선과 순수 전자기파인 감마선이 있다. 이 베타선과 감마선도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지만 주변의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시킬 수 있는 위력까지는 못 미친다. EMP탄은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에 만들어진 방사선이 대기 중에 있는 전기들과 연쇄반응하여 더 큰 전기의 흐름을 만들고 그로 인해 강력한 전자기파가 발생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결국 EMP탄은 높은 상공에서 핵폭탄을 터트려 막대한 방사선을 발생시키고 이에 공기 중의 전기를 띤 입자들이 반응하여 강력한 전기 흐름을 공기 중에 형성시키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강력한 전기의 흐름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만들어 지상에 영향을 준다. 이때 형성된 강력한 전자기파는 전기 회로를 비롯한 모든 도체에 강력한 유도 전류와 유도 전압을 만들어 도체에서는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이 나고 전기 부품들은 모두 타버리게 된다.
여기서 EMP탄이 전자기기에만 영향을 준다는 것만 보고 '인체에는 무해하다. 그래서 북한이나 미국이 이것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은 EMP탄의 원리를 이해를 못했거나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EMP탄은 전자기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자기파를 유도할 수 있는 '도체' 모두에 영향을 준다. 전자기야 원래 도체로 구성된 것이므로 필히 영향을 받겠지만 그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도체가 많이 있다. 우리 몸에만 하더라도 안경이나 시계, 목걸이 등 금속류가 많이 있다. 또한 건물을 비롯한 각종 대형 구조물은 철근 등에 의해 지탱된다. 이들도 도체이기 때문에 EMP탄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대부분의 도체들에는 저항이 들어 있으므로 유도 전류, 전압에 의해 그 도체들은 순식간에 막대한 열을 발생시킨다. 그 열은 매우 높을 수 있고 심할 경우 도체들이 녹아내릴 수도 있다.
결국 EMP탄이 터지면 대부분의 전자기기들은 망가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작은 소형 폭탄이 되어 폭발하게 되고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이나 귀금속류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우리 몸의 일부에 화상을 입게 된다. 또한 우리 주변에 우직하게 서 있던 대형 구조물과 건물들은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철근들이 녹아서 한쪽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 아마도 EMP탄에 영향을 안 받을 수 있는 것은 산이나 들에서 뛰어노는 야생동물이나 초근목피, 혹은 그곳에서 맨몸으로 일하는 사람 정도일 것이다.
EMP탄이 핵폭탄으로 인한 방사능 낙진 등의 우려는 많이 줄여주지만 오히려 그 피해 정도는 더 클 수도 있다. 핵폭탄보다 높은 곳에서 터지므로 그 작용반경이 굉장히 클 수도 있고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과 도체들이 망가지기 때문에 핵폭탄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용가능한 무기, 그것도 효과가 큰 무기는 EMP탄 보다는 GPS교란장치이다. 이미 연평도 포격 당시 시험 가동해본 GPS교란 장치는 GPS로 조종되는 대부분의 무기와 기계장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파괴력이 높은 EMP탄을 터트리기보다 상대방의 공격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GPS교란 장치를 다시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분간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믿지 말아야 한다.
북한 경제발전전략의 수정
문제는 이번 분쟁을 거치면서 북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은 국방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그 여력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북미 사이의 관계가 계속 풀리지 않아 전략의 수행이 지체되었다.
그런데 지금 북한 사회는 그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전 사회가 빠르게 동원 체제로 바뀌고 고 있고 모든 자원과 역량은 국방 부문으로 모이고 있다. 한동안 하지 않던 대규모 동원 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모았던 자금을 국방 부분에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상황이 좋게 풀려나가더라도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이번에 소비한 것들을 되돌려받으려고 할 것이다. 협상에 난제가 하나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의 변화를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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