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현장 경험과 탈북자들의 얘기를 토대로 한 겁니다. 물론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들도 경험의 차이가 있겠지요. 북에서도 '번'을 쓰지만, 그건 한 번, 두 번, 첫 번째, 두 번째 이렇게 횟수나 순서를 말할 때 쓰지,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서 쓴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은 글씨체도 낯설다고 했습니다. 북한에는 김일성체라는 게 있어요. 15도 각도로 드러눕는 글씨체. 김일성 주석이 현지지도 같은 걸 하면서 움직이면서 메모 지시를 내리다 보니까 그렇게 써야 빨리 쓰면서도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된다고 해서 개발했다는 겁니다.
물론 고딕도 쓰긴 합니다. 자주, 주체, 결사옹위 이런 말을 쓸 때 고딕을 쓰지만 이번에 나온 건 고딕도 아니고, 아무리 손으로 쓴 거지만 못 보던 글씨체랍니다. 탈북자들이 한 말이에요. '1번' 논란을 보면서, 민군 합동조사단이 설명력을 높이려고 했으면 좀 더 치밀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소한데서 신뢰를 잃는 거거든요.
오늘은 우선 대통령 대국민 담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외교부·통일부·국방부 장관들이 밝힌 구체적인 조치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몇 마디 해볼까 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용산 전쟁기념관을 걷고 있다. ⓒ청와대 |
대통령 담화, 평화만들기 언급이 없다
먼저 대통령 대국민 담화의 장소와 시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청와대에서 담화를 발표해도 충분했을 텐데 전쟁기념관을 택했단 말예요. 용산 전쟁기념관은 6.25 전쟁기념관입니다. 그걸 보면서 이제 남북관계가 6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10년 전에 나온 6.15 남북 공동선언을 부정하더니 60년 전의 6.25로 돌아가는가.
6.25로 돌아간다는 게 전쟁을 시작한다는 게 아니라 6.25로 인해 조성됐던 남북간의 적대, 반목, 불신, 대결의 시대가 정부 주도로 다시 시작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민족사적으로 볼 때 엄청난 후퇴입니다.
6.15는 북한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어서,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 한 분의 평화에 대한 의지만으로 된 건 아닙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우리가 최대한 활용하면서 민족의 활로를 열기 위해 추진했던 일종의 평화만들기 장전이었어요.
평화만들기를 한다고 해서 평화지키기, 즉 안보를 게을리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피스 키핑(peace keeping)을 위해 연간 전체 국가예산의 약 9∼10%, 20조 원 이상을 국방비로 쓰면서, 그것의 한 1/40 정도 되는 5000억 원 정도를 남북협력기금으로 만들어 평화만들기를 추진한 겁니다. 그게 6.15의 패러다임이었어요. 평화지키기를 계속 하면서 동시에 평화정착 노력도 본격화한다는 거지요.
그런 추세가 2000년 이후 7년 밖에 유지되지 못했지만, 그 기간에 우리 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걱정만은 안 하고 살았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천안함 사고를 계기로 나오고 있는 공세적인 대북 조치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것이 안보를 튼튼히 하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그건 평화만들기를 중단시킨 거예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도 평화에 대한 대목은 없었습니다. 평화라는 단어는 썼지만, 평화를 모색하고 만들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나 구체적인 방향 제시는 없었습니다. 연설 장소를 전쟁기념관으로 잡은 걸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담화 시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국내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다음날 바로 발표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풍(盧風)이 일어나는 걸 진화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합조단 발표가 선거운동 개시일인 20일이었던 것도 그렇지만, 4일이나 있다가 대통령 담화가 나오는 건 누가 봐도 국내정치를 의식한 측면이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이 안보 문제를 정치화하려고 한다, 북풍 몰이를 한다는 비난을 비켜갈 수는 없을 겁니다. 청와대도 각오하고 한 거겠죠. 비난을 조금 받더라도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나쁠 것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겁니다.
국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24~25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열립니다. 대통령의 담화는 그 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양쪽에 일종의 압박성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설득 내지 압박해서 중국도 북한 때리기에 동참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24일 오전을 택한 거라고 봅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끝내고 바로 서울로 와서 26일에 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할 예정입니다. 힐러리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떠날 때 입에서 어떤 단어가 나올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천안함 문제가 어떻게 풀려 갈지, 한반도 정세가 얼마나 오랫동안 격랑에 휩싸일지, 특히 미국이 어떻게 할 건지가 힐러리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힐러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라는 단어를 먼저 쓰고 또 힘주어 말하는지, 아니면 천안함으로 지역의 긴장이 높아졌지만 더 이상 악화되면 안 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교부 조치, '안보리 회부'도 자신 없는 듯
대통령 담화 후에 3개 부처 장관들이 발표한 내용을 봅시다. 우선 외교부는 별로 특별한 게 없고 그냥 이것저것 모아 놨더군요. 두 장짜리 자료가 나왔던데 그거 채우느라고 고생 좀 했겠더라고요. 확실하게 뭘 하겠다는 건 없습니다.
"안보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며, 이에 관해서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이 정도예요. 안보리에 반드시 회부하겠다는 말도 자신 있게 못 썼어요. 대통령의 어조로 보자면 외교부는 안보리 회부를 서약할 정도로 나왔어야 되는데, 벌써 자신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보리에 회부돼도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대개 예견하고 있잖아요. 중국은 천안함과 6자회담을 별개로 분리하자는 거고, 북한을 제재하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가 나오면 북핵 문제와 6자회담은 표류하고 그 와중에 동북아 정세가 험악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잖습니까.
중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동북아 평화를 더 사랑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다 자기들 이해관계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평화적인 환경이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불안 요소를 줄이려는 겁니다. 중국은 이미 G2의 지위를 확보했지만, 동북 3성 경제의 발전을 위해 북한 나진항을 수출항으로 쓰려는 참이라서 대북 제재에 동참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교부가 안보리 상정을 애매하게 얘기한 건 1차적으로 중국 때문이었을 겁니다.
러시아도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한국으로부터 들었다. 북한의 설명도 들었다'고 했거든요. 한국의 조사 결과만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조사 결과의 객관성·과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지, 정치적 입장 때문에 남북에 등거리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어떤 입장을 가질지 두고 봐야 합니다. 그 역시 예단할 수 없지만, 아마도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은 아닐 겁니다.
어쨌든 외교부 후속 조치 계획은 별 게 없고, 안보리로 간다고 해도 중국, 러시아 때문에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토, 아세안, G20 회의 같은 데서 북한의 대북 응징 조치를 촉구한다고 돼있는데, '촉구' '협의' 같은 거 외교부가 제일 잘 쓰는 단어입니다. 내용은 별게 없는데 많아보이게 하는 기술... 매우 외교적입니다. 허허.
국방부 심리전 재개, 한반도 위기지수 높이고 경제도 망쳐
국방부의 조치 내용은...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불허에 대해서는 밑에서 얘기하고요, 우선 서해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대잠수함 훈련을 하겠다고 했는데...이거야 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입니다. 사건 일어나고 대잠훈련 하겠다고 크게 홍보를 하는데, 3월 26일 사고 날 때까지는 대잠 훈련 일체 안 했나요? 사고 당시에 서해에 미국 이지스함 두 척, 한국 것 한 척이 있었다는데 그땐 뭘 한 겁니까?
더구나 북한이 소형 잠수정에 중어뢰를 싣고 귀신처럼 들어와서 쐈다고 하고, 수심이 얕아서 잠수함이 다닐 수 없는 물길을 절묘하게 뚫었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대잠 훈련을 하면 이제는 잡을 수 있나요? 대잠 훈련만 하면 어뢰 도발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거, 국민들에게 별로 신뢰를 줄 것 같지 않습니다.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훈련을 준비하겠다는 것도 하나마나한 소리예요. 9월에 호주가 주관하는 훈련 참가한다고 북한이 겁이라도 낼까요? 서해나 동해상 영해, 공해를 막론하고 오늘부터 북한 선박 검색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라면 북한에 압박이 좀 될지는 모르지만.
다만 대북 심리전을 재개한다는 건 좀 주목할 얘기입니다. 심리전 방송 중단을 합의할 때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었습니다. 2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설악산 켄싱턴호텔에서 2004년 6월 3일부터 4일까지 무박 2일로 열렸는데, 그때 우리는 서해상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 남북 함정간 무선 교신을 합의하는 게 회담의 목표였습니다. NLL 주변에서 충돌 가능성을 줄이려면 기술적인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였습니다.
반면에 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 중지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맞바꿨어요. 남북 함정간 무선 교신을 시작하고, 심리전 방송은 중단하는 쪽으로.
그런데 이제 심리전 방송을 다시 한다고 하면 서해 함정간 무선 교신도 완전히 끊기고 말겁니다. 북한이 이미 2008년 5월부터 무선교신을 끊었다고 국방부가 지적했지만, 심리전 방송이 재개되면 교환조건으로 합의한 함정간 무선 외에 제3국 불법 어선 관련 정보 교환도 어렵고, 서해 쪽 남북 해군 부대간 핫라인 운영도 끝나버리게 될 겁니다. 북한을 아프게 하려고 이런 것들을 하겠다는 건데, 상대방을 때리다 보면 자기도 다치게 돼있어요.
▲ 대북 심리전 방송 확성기를 정비하는 장병들 ⓒ연합뉴스 |
통일부 조치, 개성공단도 대북 지원 사업이라고?
외교부, 국방부의 조치와는 달리 통일부의 조치들은 구체성을 띠면서 남북관계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것들이 많아요.
우선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불허한다는 것. 북한 상선의 우리 해역 통과는 2003년부터 협의되다가 2005년 8월 15일부터 이행됐어요. 북한은 서해의 남포에서 동해의 청진, 원산으로 가는데 저 멀리 공해로 돌아가는 것이 기름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사전 통보와 승인을 조건으로 남쪽 해역, 특히 제주해협의 무해통항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남북간에 합의를 한 건데, 사실 그 합의 때문에 남쪽의 이득도 많았어요. 우리 배가 중국이나 러시아로 갈 때 북한의 영해를 통과하는 것을 교환 조건으로 합의했는데, 그렇게 하면서 우리 해운회사들도 경비를 많이 줄일 수 있게 됐었지요. 미국이나 유럽 가는 비행기도 북한 영공을 통과하면 시간과 기름 절약이 많이 됩니다.
2003년 협의 개시 초기만 해도 합참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해군 출신인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들어서면서 '특별한 문제없다'는 판단이 나왔고, 2005년에 비로소 합의를 하게 된 겁니다.
국방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상선이랍시고 지나가면서 바로 뒤에 잠수함을 붙여서 올 수 있고, 배 소음 때문에 잠수함 탐지 못 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그런데 해군 출신 윤광웅 장관이 들어서니까 '북한 상선 통과가 얼마나 자주 있겠나. 그리고 그건 우리가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다. 우리 상선이 북한 영해 통과하는데 따른 이득이 더 커서 국가 전체로 볼 때 득이 된다'고 해서 합의하게 된 겁니다.
국방부의 이번 발표를 보고 북한에 손해를 주게 돼서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 우리 민간 선박 회사들이나 항공 회사들이 받아야 하는 불이익이 오히려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미국행 여객기의 비행시간이 한 시간 정도 늘어날 겁니다.
통일부는 또 남북간 교역을 중단한다고 했어요. 통일부가 최근에 북한과 일반 교역과 위탁가공 교역을 하는 기업들에 원·부자재 반출을 사실상 금지시켰기 때문에 새로운 건 아니지만...이렇게 되면 통일부 업무의 반쪽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남북 교역에 참여하는 영세 기업들은 망할 정도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북한에 위탁가공을 맡기면 인건비가 싸고, 또 민족내부거래라서 관세가 많이 안 붙기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생깁니다. 위탁가공은 1992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시작됐는데, 북한 사람들의 손재주와 싼 인건비를 활용한 겁니다. 20년 돼가는 위탁가공이 중단되면 국가가 정말로 챙겨야 하는 영세 중소 상공업자들만 다치게 돼 있어요.
남북 교역이나 위탁가공 교역을 하는 업체들 중에 부자 기업, 대기업은 없습니다. 사실 정부가 관심가지고 도와주어야 하는 기업들만 있어요. 영세할수록 딸린 식구는 비율 면에서 대기업보다 오히려 많은 법인데, 이게 중단되면 남쪽의 관리 사이드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겁니다. 다른 걸 창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정말 비참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또, 대북 지원 사업을 원칙적으로 보류하겠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지원 사업이 보류하고 말고 할 정도로 얼마나 크게 있었나 싶네요. 영·유아 지원은 유지한다고 하는데 많아야 10억 원대밖에 안 되는 걸로 생색이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고.
통일부 장관이 대북 조치를 발표하면서 개성공단 문제를 대북 지원 사업 항목에 넣었던데...이거 보고 참...통일부 직원들의 생각도 그런지 장관만의 생각인지 알 길은 없지만, 직원들이라면 개성공단 사업을 지원 사업 카테고리에 넣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개성공단은 대북 지원 사업이 아니에요. 그건 기본적으로 경협사업이지만 다목적 프로젝트입니다. 우선 인건비 압박 때문에 국내에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워 중국, 동남아로 나가는 우리 중소기업들한테 살 길을 열어주는 차원에서 시작한 겁니다.
개성공단의 두 번째 목표는 우리가 70년대 초에 마산수출자유공단을 만들어서 달러벌이를 어떻게 하는지, 수출경쟁력이란 게 뭔지 배웠듯이 북한을 학습시키는 일종의 실습장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가 더 중요한데, 군사지역을 경제협력지역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지원 사업의 카테고리에 넣은 걸 보고...개성공단을 우리가 먼저 폐쇄하겠다고 안 한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쨌든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큰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이번 대북조치의 효과, 특히 경제적 압박 효과를 크게 기대하는 것 같고 KDI도 그런 방향으로 보고서를 낸 모양이던데, 그러나 이번 조치들이 북한을 아프게 하기 보다는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유엔 제재 결의안도 통과될 가능성이 적고, 설사 규탄성명 같은 게 나온들 맷집 좋은 북한이 아파나 하겠어요. 욕이나 한 마디 하는 거지. 그걸 위해 외교력을 집중한다? 목표달성하려고 외교력을 집중하면, 그게 거저 되겠습니까? 그 경비로 북한 관리하면 훨씬 싸게 정세 안정시키고 국격도 올라갈 텐데.
국방부 조치도 '심리전 방송 재개' 제외하면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태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했지만 잡은 것은 쥐 한마리 뿐)이고요, 몇 가지 아픈 게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저 사람들은 아프면 때리지 말라고 손을 붙잡는 게 아니라 더 극렬하게 저항하는 스타일입니다. 겪어 봤잖아요? 미국도 그동안 여러 번 처음에는 큰 소리 치다가도 결국 정책까지 바꾸지 않았습니까?
당장 심리전 시작하면 확성기를 조준해서 격파사격한다고 나왔잖아요. 앞으로 서해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군사적 긴장이 현격히 높아질 겁니다. 총성이 울릴 가능성이 커요. 그러다 보면 국지전이 확전돼서 전면전으로 가는 겁니다. 대외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바로 악영향 미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물론 46명이나 희생당한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도리지만, 이번 조치들에는 응징 차원만 있지 진정한 '평화지키기'나 '평화만들기' 차원의 언급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는 철학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요. 분노와 응징과 국면대응만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반성문을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다른 얘기를 하나 보탭시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면서 금융 제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되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도 BDA 금융 제재(2005년 9월 미국이 마카오 BDA은행에 있는 북한 계좌 2500만 달러를 동결시켰던 일)를 통해서 미국이 얻은 게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소기의 효과를 냈느냐 이 말이에요.
금융 제재가 잠시 아플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프면 더 극렬하게 저항하면서 더 큰 도발로 국면전환을 불러 왔습니다. BDA 제재를 하니까 북한이 결국 1년 후에 핵실험을 했잖아요. 6년간 대북 압박정책을 견지하던 부시 행정부가 바로 그 BDA가 자충수였다는 걸 알고 나서야 북한과 비밀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금융 제재는 어떤 점에서는 북미간의 비밀 접촉을 앞당기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지도 몰라요.
그리고 언론에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합조단의 조사 발표에 대해 대체로 국민들의 72%가 신뢰한다는 답을 했다던데, 미국 국민들도 2003년 3월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칠 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부의 설명을 믿었어요. 미국 언론들도 동조하면서 밀어줬기 때문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언론이 정부 발표를 검증하는 걸 소홀히 하고, 정책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는 걸 방조했다는 뉴욕타임스의 사설, 이번 천안함 사건에 적용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 언론들도 그런 점에서 한 번쯤은 스스로를 뒤돌아보면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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