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드라마 계에 생기가 돌았다. 기약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던 작가 지망생들과 신인 작가들에게, 또 신인 배우들과 연출자들에게 꿈의 구장이 다시 열렸기 때문이다. 단막극이 부활했다.
드라마국이 꿈의 공장이라면 단막극은 꿈의 심장이다. 방송 3사가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의 제작소들이라면 그 제작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는 것이 단막극이다. 단막극 한 번 써보지 않은 드라마 작가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연출자 또한 '자기 작품'의 시작을 단막극으로 하곤 한다. 단막극은 드라마 계의 등용문이자 그만큼 처절하게 스스로가 드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흘러가듯 감상하는 여타 드라마와는 달리 치밀한 구성력과 신선한 표현력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막극은 '비평적 가치'가 높다. 이는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를 두고 '비평'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각도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비평을 통해 형성된 담론은 그 드라마가 가진 의미를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재미도 높인다. 비평과 담론이 사라진다면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시청률을 올렸고, 얼마나 광고가 붙었는가 정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지어낸 이야기를 듣기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기에 가장 보편적인 매체인 TV에서도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따라서 드라마에 대해 발언하는 비평 문화의 확산은 드라마라는 장르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에피소드 형식이 아닌 연속성을 띤 장편물의 형태를 취한다. 이 경우, 다음 회차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 회차들에 대해 비평하기가 상당히 애매하다. 작품의 구성미와 그를 통한 전달력에 대해 섣불리 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느낌이 들더라, 배우들이 어떻더라, 식의 피상적인 인상 비평 정도를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새로운 드라마가 주목받을 뿐 이미 끝난 드라마에 대한 비평과 정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이 점이 드라마가 영화나 연극 비평과는 크게 다른 지점이다. 영화나 연극에서는 비평이 작품의 감상과 소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하나의 구성요소로써 결합될 수 있지만, 드라마에 대한 진지한 비평은 드라마 자체와는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드라마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가십거리, 눈요깃거리, 수다거리 같은 것들이 되어버린다.
또 한 가지 비평의 어려움을 가져오는 부분은 드라마의 상투성 때문이다. 진지하게 붙들고 앉아서 비평을 하려고 해도 의외로 비평할 여지가 별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는 타깃 시청층 별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여전히 광범위한 시청층을 끌어모아야 시청률 상승을 꾀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의 주목도와 전달력을 높이는 익숙한 방식의 화면 구성, 그리고 플롯에 방점을 크게 두지 않고 흘러가며 볼 수 있게 만드는 대사 중심의 대본 구성이 주류가 되면서 새로운 시도가 들어서기 어렵게 되었다. 상투성이 비평의 부재를 불러오고 비평의 부재가 또 다른 상투성을 끌고 와 시청률과 가십거리만을 담론의 중심에 남기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에서 독립되어 있는 것이 단막극 장르다. 단막극이란 드라마의 상투성에서 벗어나야지만 존재의미가 생길 뿐 아니라 가십 거리보다는 비평적 가치를 드러내야만 주목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 연출과 작가들에게도 자신의 연출과 집필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신인의 등용문이자 기성의 변곡점으로서, 단막극은 한국 드라마 장르를 계승·발전시키는 핵심이자 뛰는 심장이다.
▲ KBS <드라마 스페셜> '빨간 사탕'. 이 작품은 단막극을 둘러싼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KBS |
그렇기에 오랜만에 부활된 단막극 타이틀에 걸린 노희경 작가의 이름과 이를 둘러싼 담론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어떤 비평적 가치를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드라마 계에서 어떤 주목을 받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단막극을 둘러싼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단막극을 둘러싼 혼란이란 사실은 단순하다.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돈이 안 되면 화제성이라도 높아야 하는데 시청자와 긴 시간을 함께 버텨가는 장편 연속극과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단막극 부활의 첫 작품, <빨간 사탕>을 논한 모 일간지의 기사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빨간 사탕>은 5%의 시청률을 올렸을 뿐이며 불륜을 소재로 해서 단막극의 의의를 살리지도 못한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시청률은 돈이요, 불륜 소재는 가십거리다. 기존의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을 단막극에 그대로 갖다 대고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단막극 부활의 취지를 다시 읽혀야 할 만큼 한심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바라본 관점, 그 관점을 소화한 표현 방식, 그리고 상투화된 한국 드라마 화법에 어떤 새로움을 주었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빨간 사탕> 스스로도 사실 그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지된 사랑'은 도전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소재다. 기존 드라마들과의 온도 차이를 가능한 낮추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보편적인 소재를 새롭게 바라보았다고 하기엔, 남자를 좋아하게 된 여자 캐릭터의 개연성이 떨어졌으며 상투적 진행을 피하지 못했다. 또 장편에서 빛을 발했던 노희경 작가의 뭉클한 대사들은 단막극의 호흡과는 조금씩 맞지 않는듯 덜컹거리기도 한다. 캐릭터와 사건을 다루어야 하는 시간의 틀이 변하자 애를 먹은 흔적이 감지된다. 어찌 됐든 단막극의 연착륙을 바라는 제작진으로서는 명성을 쌓은 작가와 힘을 합해 조심스럽게, 시청자의 바다에 낯설지 않은 찌를 던지기 위해 고심했던 것 같다.
▲ KBS <드라마스페셜> '빨간 사탕'. 작품 스스로도 사실 그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지된 사랑'은 도전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소재다. 기존 드라마들과의 온도 차이를 가능한 낮추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KBS |
생활감을 담아낸 재박(이재룡 분)의 아파트, 지하철의 출퇴근 공간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소란함과 고단함을 잘 담아내며 여타의 드라마에서는 잘 보지 못한 방식으로 신선하게 찍혔다. 그리고 유희(박시연 분)의 자취집이 가진 고즈넉함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기여한다. 공간과 동선, 그리고 적절하게 흔들리는 화면과 점프 컷으로 설명적이기 보다는 시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부분은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목격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선곡이었다. 90년대 후반을 휩쓸던 브릿팝의 명곡들이 '너무 많이' 쓰였다. 라디오 헤드, 콜드플레이, 블러 등의 대표곡들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메인 테마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명곡은 그 드라마의 정서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브릿팝의 우울하고 성찰적인 정서가 이 드라마의 주제와 부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쓰인 노래들은 그 노래가 가진 명성과 환기하는 정서가 너무 강력하여 드라마의 오리지널리티를 깎아 먹는다. 곡 자체가 워낙 거대한 팬덤을 거느렸던 곡들이었는 데다 자주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드라마 자체의 정서를 계속 앞서가거나 분리된다. 드라마가 명곡의 아우라에 기대가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결국 이것 또한 대중성에 대한 고려였을 텐데, 드라마 자체의 독창성이 더 중요한 것이 단막극이 아닐까.
어찌됐든 KBS의 단막극이 다시 포문을 열었다. 감격스러운 면도, 실망스러운 면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작품의 성패도 궁금하다. MBC와 SBS도 KBS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새로운 기획과 패기 있고 섬세한 대본과 연출의 단막극이 신설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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