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천안함 사건 같은 일들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특히 촛불시위 이후 국가의 이익은 물론 정권의 장기적 이익이나 기초적인 상식에 비춰서도 설마 저럴까 하는 일들을 이 정권은 무수히 해왔다. 그런 경험칙을 바탕으로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1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어뢰냐 아니냐,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 같은 문제에 매달려 있는 건 이 정부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시민들의 프레임으로 바꿔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낙청 교수는 이날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백낙청) 월례토론회에서 "천안함 사건 자체의 원인 규명은 전문적·과학적 지식으로 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사건의 처리 과정에 정치적 의도나 고려가 개입되어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할 시민들이 오히려 정치적 판단을 뒤로 돌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과학적·군사적 지식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면 그렇게 끌려 다니다가 정부의 의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간의 행적으로 보면 6월 2일 지방선거까지 (천안함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다가 그 후로는 싹 바꿀 수 있다"며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를 위해 시민들이 정부를 바꿔야 하는데 남북관계 문제만 정면 제기한다고 해서 국민 대다수가 하루아침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관계, 4대강, 종교 개입 등 이 정부의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정부로 하여금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 사회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기본적인 상식과 합리주의가 통하는 사회냐에 대한 문제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천안함이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면 남쪽으로 내려오는 잠수함을 소나(음탐기)가 왜 잡지 못했는지, 어뢰 피격에 따른 특징적 현상들이 왜 안 나타났는지 (정부의) 설명이 너무나 부족한데 우리 사회는 어뢰가 격침시켰다고 느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언론 권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 정권을 한 쪽으로 몰아서 북한과의 적대적 의존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남북간의 적대적 의존이라는 냉전 틀이 과연 깨졌는지, 우리 국민이 깰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 분석' 발표에 나선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은 "천안함의 파손과 유실 정도를 보고 뭔가 강한 충돌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건 타당하지만 폭발이냐, 어뢰냐, 기뢰냐, 어느 나라가 쐈느냐를 지명할 만큼 자료를 찾을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RDX 화약 흔적, 3~4mm 알루미늄 조각, 마그네슘 합금 정도가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은 "북한에 당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오라는 것"이라며 "북한 소행이라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국제사회에 먹히지도 않고 유엔 안보리에 가서 대북 제재를 하자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8년 북한의 상어급·유고급 잠수함을 포획했을 때 어뢰의 특성이나 잠수함의 음향 특성에 관한 데이터를 다 확보해 놨을 것"이라며 "천안함 소나가 어뢰를 못 잡았고, 소나를 다시 틀었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의 잠수함이 들어와 어뢰를 쐈다면 잠수함의 침투 경로와 어뢰 발사 후 도주 경로를 포착하지 못한 것은 우리 군의 실수"라며 "북한의 잠수함은 남측의 209급 잠수함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질 텐데 침투·도주 경로를 못 찾았고, 적을 쫓는 끈질김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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