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잇달아 열린 한중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이 한국-중국-북한 삼각관계를 둘러싸고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최상급 관계로 인정받고 있는 한중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북중 관계와 비교하여 어떤 정도인가? 그동안 우리가 한중 관계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향후 한중 관계를 전개할 것인가? 최근 한중, 북중 회담을 둘러싸고 생긴 의문이다.
특히 시기적으로 천안함 사건의 배후를 둘러싸고 북한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중 정상회담에 이은 북중 정상회담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4월 30일 엑스포 개막식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이어 5월 3일부터 3박 4일간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환대하며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중국은 민감한 시기에 국가적 행사를 축하하러 간 한국의 대통령에게 사흘 후에 중국에 오는 북한 지도자의 방중을 알려주지 않아 한국 내에서 한중관계보다 북중관계가 더욱 중요하며 중국이 한국을 무시 내지는 홀대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통일부장관은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국제적 책임론'을 강조하며 항의하였고,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이는 중국의 내정문제라며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이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과의 회담에서 던진 '선 천안함 원인 규명, 후 6자 회담 재개'라는 메시지 도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별개 문제라며 한국의 입장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연 중국은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를 곱씹어볼 때다. 그러나 그전에 과연 우리가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자문해보아야 하며, 혹시 우리 스스로의 희망을 담아 중국을 보는 건 아닌지를 생각해보면서 단편적이지만 이번에 논쟁을 야기한 몇 가지 문제를 되새겨 보자.
우선,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던 문제를 살펴보자. 중국은 일단 지금까지 북한 지도자의 방문을 실시간으로 알린 적이 없다. 이전에는 몇 개월이 지나고 알려진 때도 있을 정도다. 주지하다시피 정상회담은 적어도 3-4개월을 준비한다. 이미 방문이 성사되면 기본적인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서해전선에서 최악의 군사 사고가 발생했고, 구체적 원인은 차치하고 이는 한국에게는 매우 중차대한 안보문제이며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 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북한 지도자의 방중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이미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북한 측에 선 북미대화 후 예비회담을 거쳐 6자회담 복귀라는 시간표를 제안해 놓고 있었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미국으로부터 적절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던 중국은 일단 방문을 받아들였다. 이는 중국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불확실한 천안함 원인보다는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문제가 전략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언제나 중국 편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중 관계가 과연 한중 관계보다 중요한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북중 관계에 관해 중국 지도자들은 분명히 정상적인 국가 관계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중 관계의 특수성도 항상 강조되고 있다. 중국도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전략적으로 실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의 한계를 강조하면서 북한의 국내 안정을 위해 많은 것을 용인하는 한반도 정책을 실시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은 '핵보유국을 주장하는 북'과 '안정된 북한'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책적 모호성이 노정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여전히 '관리 가능한 북한'이 필요하므로 북한의 요구를 계속 수용하고 있다. 이점을 잘 아는 북한은 결정적인 위기 때마다 중국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때문에 북중 관계는 한마디로 애증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에게 '전략적 소통의 강화'를 건의하였다. 이는 북한 혼자서 자의적으로 '사고를 치지 말라'는 주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향후 세대가 바뀌어도 우의가 유지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후계 구도가 자신의 계획대로 되면 중북 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사회주의의 완충지대로서의 북한과 사고뭉치 북한 사이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애증관계다.
셋째, 중국이 북한에 보인 표면적인 환대는 북중 관계의 중요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그러나 이도 이중성을 띠고 있다. 이번 방문이 비공식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중앙정치의 핵심인 9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모두 만났으며 일부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해 시찰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 개방 의지를 충분히 의심하고 있다. 중국을 사회주의의 변절자로 비판하던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이후 중국 방문에서 매번 중국 개혁 개방의 성과가 집대성된 도시를 둘러보고 베이징과 대화한다. 이번에도 따렌, 텐진 등을 거치면서 북한 나선지구 개발의 벤치마킹임을 선전했다. 그러나 북한으로 돌아가면 달라지는 김 위원장을 중국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중국의 투자만 강조하면서 구체적 개방이나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 김 위원장은 이미 중국에게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 있다. 이번에 중국이 개혁 개방에 관한 중국의 주문을 전달했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때문에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결과를 놓고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한중 관계는 애초부터 북한 요인을 안고 출발하였다. 중국은 안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미국과 같은 편이므로 자신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히 중국 측의 전략적 고려에 의해 진행된다. 자신들이 곤란한 경우에는 '북한이 주권국이며, 중국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얘기한다.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판단하는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상황도 아니다. 결국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국면을 타개할 수는 없는가?
앞에서도 보았거니와 한반도 문제의 난국은 모두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 비록 애증의 관계가 교차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북한의 미래에 배팅하기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현재의 북한이 중국에게는 전략적으로 훨씬 매력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이러이러한 입장이 중국에 어떻게 유리하니 우리의 뜻을 받아들여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또는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게도 이렇게 유리하니 이랬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요구나 정책은 중국 측에 전혀 전략적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중국을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중국과 같이 북한에 대한 구체적 지원이나 정책을 펼쳐가는 것이 더욱 실질적일 수도 있다. 이번에 드러난 상황을 근거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 중국 외교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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