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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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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부재

[한윤수의 '오랑캐꽃']<228>

한국말도 못한다.
영어도 못한다.
소통할 방법이 없다.

태국인이냐고?
아니다.
한적한 농장에 캄보디아인끼리만 있으면 이렇게 된다.

가게에 가서 라면 정도는 사먹어야 하므로 한국어 단어 몇 개는 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아는 것은 오히려 병이다. 단어를 뒤죽박죽 늘어놓기 때문에 머리만 아프다.

캄보디아 여성 4명만 있는 농장이 있다.
3명은 매일 열심히 일하므로 문제가 없다.
월급 100만 원을 타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다. 하루 빠진다 하더라도 그만큼만 제하면 된다.

문제는 소라(가명)다.
그녀는 몸이 안 좋아 일을 잘 빠질 뿐더러 기억력도 좋지 않다. 아흐레를 빠졌는데 여드레를 빠진 줄 아니까.
게다가 꾸무럭거리느라고 좀 늦게 출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일하려면 가!"
견디다 못한 사장님이 소리를 지른 게 화근이었다.
그날부터 소라는 사장님을 믿지 않았다.

결국 소라는 그 농장을 나와 발안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이면지에 55라고 썼다.
임금 55만원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열흘 후 성남 노동부
감독관이 사장님에게 물었다.
"55만원을 안 준 게 사실인가요?"
"아닙니다. 정확히 날수를 따지면 못 준 게 25만 원 정도 됩니다."
"기록이 있나요?"
"물론이죠."
사장님은 농장일지를 내놓았다.
감독관은 일지를 꼼꼼히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한 달에 두 번 쉬게 해주셨네요?"
"예."
K감독관은 정확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농장이라도 네 번은 쉬게 해줘야 합니다. 휴일 네 번으로 계산하면 줄 돈이 38만원으로 올라가는데 어떻습니까? 인정하시겠어요?"
사장님은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좀 억울하지만요."

감독관이 소라에게 물었다.
"기록이 있나요?"
소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38만 원 받을래요?"
소라는 또 고개를 저었다.

감독관은 물론 우리 직원까지 황당해졌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를 않는 거니까.

감독관과 사장님이 소리를 높이지 않고 사근사근하게 얘기한 게 오히려 그녀의 불신을 키운 것 같았다.
"저것들 짜고 치는구나!"하고.
말 못하는 사람은 표정과 어조로만 파악하니까.

그녀가 더 받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걸 설명할 방법도 없다.
캄보디아는 *통역도 없으니까.

*통역도 없다 : 캄보디아 통역은 정말 찾기 어렵다. 전화로 통역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 있긴 하지만 웬만해선 연결조차 되지 않는다. 또 요행으로 연결된다 한들 별 볼 일 없다. 경험과 실력이 영 시원치 않으니까. 한 마디 통역을 부탁하면 5분을 지껄이니 이게 통역인지 잔소리인지 알 수 없다.

후일담 : 열흘 후 일요일에 소라가 다시 발안에 왔을 때 손짓 발짓으로 재차 소통을 시도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흐르고 흐른 후 소라는 겨우 납득했고 감독관의 조정안에 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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