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박재완 수석 '논문 이중게재' 리포트 불방 논란

"KBS 정치 독립 하수구에 빠져"…담당 국장 "위험관리 차원에서 뺀 것"

한국방송(KBS)이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에 대한 비판 보도를 삭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엄경철)에 따르면, KBS는 4일 <뉴스9>에 방송될 예정이던 김정환 기자의 "교수 출신 공직자 35% 논문 이중게재 의혹"아라는 리포트를 이화섭 KBS보도제작국장의 지시에 따라 삭제했다.

"너무 오래된 논문이다, 방송 빼라"?

이 리포트는 이날 <시사기획 KBS10>에 방영될 "학자와 논문 : 공직의 무게"를 요약한 것으로 헌병철 국가인권위원장과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등 교수 출신 고위 공직자의 논문을 분석해 이중게재 등 연구 윤리를 위반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이 리포트는 <뉴스9> 최종 큐시트에 19번째 꼭지, 2분 10초 분량으로 잡혀 있었으나 본 방송에서는 빠졌고 큐시트는 <뉴스9>이 이미 끝나가는 21시 51분 20초에 수정됐다.

KBS 새 노조에 따르면 이화섭 보도제작국장은 리포트를 편집 중인 김정환 기자를 오후 7시 30분께 불러 "해당된 논문이 너무 오래된 논문"이라며 리포트 원고에 포함돼 있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이인실 통계청장의 부분을 빼라고 지시했다.

문제가 된 박 수석의 논문은 1992년과 1993년에 발표된 것으로 <시사기획 10> 제작진은 1990년 이후 발표 논문을 검증 기준으로 삼았다.

김 기자와 <시사기획 10> 제작진들이 삭제 지시를 거부하자 이 국장은 "박재완 수석 부분을 삭제하고 방송하든지 아니면 방송할 수 없다"면서 "국장 직권으로 데스크권을 발동하겠다. 국장직을 걸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방송된 <시사기획 KBS 10> '학자와 논문 : 공직의 무게' 편. 박재완 수석이 이중게재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KBS

KBS 본부는 "지난해 천성관 법무부장관 내정자와 관련된 뉴스가 불방된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때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어거지라도 썼지만 이제는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빼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수구에 처박힌 KBS의 정치 독립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KBS 본부는 "박재완 수석은 KBS 기자와의 통화에서 '도대체 이화섭 국장과 무슨 관계냐'는 질문에 '친구입니다'라고 답했다"며 "<뉴스9>에서 박재완 관련 내용을 빼려고 하고 결국 불방시킨 이화섭의 노력은 친구를 위한 의리였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화섭 국장 "특수관계 없다…소송 등 위험 피하기 위한 것"

한편 이화섭 보도제작국장은 KBS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박재완 수석과는 '특수관계'가 없으며 국장으로서 소송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화섭 국장은 "취재기자와 취재 대상자 사이에는 특수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취재내용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단 한 차례도 정책기획수석과의 관계를 언급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이 국장은 "모든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사실에 기반해 불편부당함이 없이 균형된 시각에서 제작돼야 한다"며 "<뉴스9> 리포트는 2분 정도의 요약 리포트로 프로그램 형식상 검증대상이 된 논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반론권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쟁송 등 위험관리도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8시 뉴스에서 수정을 지시했으나 취재기자는 지사를 거부한 채 방송을 강행했다, 보도제작국장으로서 편집팀과 협의해 불방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