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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절반이 이스탄불이라면 이스탄불의 절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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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절반이 이스탄불이라면 이스탄불의 절반은?"

[화제의 책] 유재원의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

잠시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것을 생각해보자. 터키,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의 가운데 있는 나라로 국토 역시 양쪽 대륙에 걸쳐 있다. 비교적 작은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서양 문물의 근원이라는 그리스와 마주본 나라. 지중해를 둘러싸고는 시리아, 이라크 등 이슬람 국가와 맞닿아 있다. 세계사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비잔티온, 오스만터키 등의 나라가 명멸하는 무대도 바로 이곳이다.

유재원(한국외국어외대학교 교수)이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전2권, 책문 펴냄)을 펴냈다. 유재원은 그리스학의 권위자로 <프레시안>의 인문학습원에서 '신화 학교'를 진행하기도 했고, 그리스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지중해 3국 등의 고대 문명을 답사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계획, 안내하기도 했다. 올 1월에는 이 책이 다루는 터키 답사도 진행했다.

▲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전2권, 유재원 지음, 책문 펴냄). ⓒ프레시안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은 기본적으로 여행서 형식을 따른다. 터키의 중심지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기암절벽의 땅 카파토키아,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트로이아 등 각 도시의 유적지를 찬찬히 살피고 소개하는 식이다. '동서 문명의 교차로, 자세히 읽기'라는 부제처럼 각각의 도시와 유물, 하다못해 그림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까지 밀도 깊게 읽고 그곳의 역사를 되짚는다. 내용의 밀도만 따지고 보면 '지역학 총서'에 가깝다.

가령 터키의 중심, 이스탄불의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이스탄불이 터키의 절반이라면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스탄불의 절반은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다. 그만큼 이스탄불 관광에서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스탄불 관광을 다녀온 수많은 한국인 가운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532년 2월 23일, 소실된 지 39일 만에 아기아 소피아의 세 번째 건축이 시작됐다. 유스티니아노스가 생각한 성당의 모습은 앞선 두 건물과는 개념부터 다른 것이었다. 그리스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이어야 했고, 제국의 위엄을 한껏 보여 줄 만큼 웅장하고 화려할 뿐 아니라 완벽한 것이어야 했다.

또 교회의 통일을 보여주기 위해 건물 안에는 기둥이 없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그리스도의 우주관이 한눈에 드러나는 건물이어야 했다. 이런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네무난 건물 위에 둥근 돔 모양의 지붕을 얹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각형 위에 둥근 돌을 얹을 때 엄청난 지붕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도록 하느냐였다."


이 설명은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갖고 있는 구조적 특성, 함의와 딜레마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건물이 5년 10개월 4일만에 완공됐을 때 실내에 들어선 유스티니아노스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도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이 건물은 성상 파괴 운동과 지진,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약탈 등 터키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는다. 그리고 이슬람 모스크로 바뀐다.

"1543년 5월 29일 (…) 정복자 메흐메드 2세는 잠시 모자이크를 바라보다가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 961년 동안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청 대성당으로서의 역사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바꾼 1934년까지 481년 동안 술탄의 모스크로서의 시대가 시작됐다. 대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무슬림이 기도할 때 반드시 필요한 메카의 카바 방향 '키블라'를 가리키는 '미흐라브'를 설치하고 이슬람에서는 우상 숭배로 여기는 모자이크 성화들을 회 반죽으로 덧칠한 뒤에 이슬람 특유의 당초 문양과 쿠란 구절들을 채우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아기아 대성당은 유네스코와 미국인 '토마스 이트모어'가 회 반죽을 걷어내고 복원 작업의 결과 모자이크 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이면서도 '유럽'이기를 지향하는 지금의 터키와 닮은 모습일까?

유재원은 이를 두고 자신만의 균형잡힌 시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은 벗겨내는 회 반죽 위의 문양들도 500년이나 된 문화재라는 점이다. 어떤 문화재를 더 귀하게 여길 것이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풍경. ⓒ책문

이스탄불의 전차 경주장이던 히포드로모스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청록홍백 네 팀이 각각 두대 씩의 전차를 달릴 수 있는 넓은 경기장이다. 관중들이 경기에 큰 돈을 결고 응원하는 '오락'의 공간이지만 시민 간 정보를 교환하고 여론을 만드는 아테네의 아고라와 같은 역할을 했고, 더 나아가 자주 관람에 나온 황제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소리를 질러 의견을 전달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적잖은 황제들이 이곳에서 일어난 민중 폭동으로 인해 제위를 잃기도 했다. 히포드로모스의 정치적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은 청색당과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활동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전차 경기를 조직하고 응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청록홍백의 당파들은 머지않아 단순한 스포츠 조직이 아니라 정치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또 겉모습이 "지구보다는 달 표면을 더 닮았다"는 카파도키아도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이 곳은 화산재로 이뤄진 계곡으로 사람들은 동굴을 파서 집이나 교회를 지었고 지하에 도시 하나를 짓기도 했다. 로마의 속주로 있던 시기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계곡으로 피신해왔고 수많은 그리스 정교회 유적이 남아있다.

이 책에서 유재원의 꼼꼼한 설명 못지 않게 터키를 '꼼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원경부터 모자이크 그림 하나를 보여주는 근접 사진까지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유재원의 설명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며 상당한 사실감을 준다. 언뜻 상상하기 힘든 카파도키아의 기이한 풍경도 이 책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전한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트로이아에 시대별로 겹겹이 쌓여있는 도시층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는 과정도 흥미롭고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라라트 산은 구약성서에 "아라라트 산의 등마루에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고 쓰여있는 바로 그 산이다.

유재원은 이 책의 서문에서 1976년 4월 말 이스탄불을 방문했다 자신이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고,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설명해줄 사람이 없다는 설움에 북받쳐 톱카프 궁전 제1관문 앞에서 통곡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도 바울의 고향 타르소스를 떠나는 마지막 편에서 "이제 이렇게 길고도 지루한, 그리고 터키 땅에 대해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밝혀 쓰고 있으니 일견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재원의 지식에 대한 열정과 탐구로 엮인 이 두 권짜리 책에, 죄송스럽게도 감상은 단순하다. "아, 터키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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