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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의 '오랑캐꽃']<225>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퇴직금을 주지 않는 회사가 있다.
무조건 안 준다.
심지어 한국 사람한테까지도!

경리부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회사 역사상 한 번도 퇴직금을 준 적이 없어요!"
마치 불멸의 업적을 세운 것 같은 말투다.
이걸 무슨 자랑이라고 하고 있나?

물론 퇴직금을 주지 않음으로써 부작용도 생긴다.
이런 회사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가지 않아서 노동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감당하는 작업량이 점점 많아져서 사고가 자주 난다.
며칠 전에도 사고가 나서 캄보디아인의 손가락이 잘렸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퇴직금을 주지 않는 사장님의 방침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가히 물 샐 틈 없는 방비태세라고 할까?
그러나 굳은 성벽에도 틈이 보인다.
그 회사를 나온 베트남인 하나가 기어코 퇴직금을 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꽝(가명)은 노동부에 진정했다.
감독관은 꽝에게 퇴직금 190만 원을 지급하라고 사장님에게 명령을 내렸다.
갑자기 사장님과 경리부장이 꽝을 찾기 시작했다. 진정을 취하시키려고. 그들은 꽝을 잡으려고 그가 갈 만한 곳은 다 찾아다니고 있다. 혹시 우리 센터에 왔나 하고 발안까지 찾아왔으니까.

꽝이 갑자기 무지하게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꽝이 퇴직금을 받으면 다른 사람도 다 받고, 꽝이 못 받으면 다른 사람도 못 받을 테니까.

일요일에 꽝이 왔다.
그는 사장님의 집요한 추적을 받아서 그런지 초췌한 얼굴이었다. 꽝이 자신 없는 태도로 물었다.
"받을 수 있을까요?"
내가 말했다.
"받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얼마나 걸릴까요?"
"재판까지 가도 4, 5개월이면 끝나.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저 시간 걸리는 거 괜찮아요. 다 참을 수 있어요."
"좋아. 그러면 내가 말하는 것 따라 해봐."
"예."
꽝은 내가 선창하는 대로 따라 외쳤다.
"전화 받지 말고."
"전화 받지 말고!"
"전화 받았더라도 만나지 말고."
"전화 받았더라도 만나지 말고!"
"만났더라도 사인하지 말고."
"만났더라도 사인하지 말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중요한 인물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난 중요한 인물이에요!"

그렇다.
그는 VIP다.
역사를 바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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