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고 있었다. 때 아닌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대한 1심 공판 준비기일이 열리는 27일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오전 10시쯤 경기도 수원지법 110호 법정으로 들어섰다. 김 교육감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허리를 곧바로 편 꼿꼿한 자세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평상시 그의 모습 그대로 흐트러짐 하나 없이 반듯한 자세다.
김 교육감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양털처럼 부드러워도 속은 차돌멩이처럼 단단한 분이다. 언제보아도 모든 게 반듯하다. 화를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오늘 법정에서도 평소 모습 그대로 단정하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늘 웃는 그의 얼굴이 오늘은 조금 무거워 보인다.
억장이 무너진다. 법 없이도 살 것만 같은 김 교육감이 왜 피고인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혁신학교, 무상급식 등 대한민국의 교육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분이 왜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야만 하는가? 김교육감은 깊은 고민과 숙고 끝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유보하였다. 참으로 성실하고도 책임있는 직무수행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이를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는가?
헌법상 보장된 교사들의 표현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에서 덜컥 사람부터 자르라는 교과부의 조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헌법적 요청과 교육적 원칙에 입각해 대법원 판결 때까지 징계를 유보하겠다는 결정이 과연 검찰에 소환되고 기소까지 당할 사인인가? 저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수도 있겠구나. 경찰이 민주진보 진영 뒷조사를 하고 있다더니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겠구나.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괜히 천정을 올려다본다.
법정에는 재판장과 배석판사를 중심으로 왼쪽에 검사, 오른쪽엔 김 교육감과 변호사 두 사람이 자리를 하고 있다. 시민 50 여명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출마한 김진표 민주당 최고의원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이 방청석 앞자리에 앉아 있다.
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가 김 교육감에게 묵비권을 사용할 수 있음을 고지한 뒤 곧바로 인정신문을 시작한다.
"주소는?"
"경기도 수원시 XXX…."
"본적지는?"
"서울 XXX…."
이날 쟁점은 ▲김 교육감이 대법원 판결 확정시까지 징계를 유보한 것이 징계권자 권한에 합당한가 ▲징계 유보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징계 유보한 것이 직무유기에 해당 하는가 등 세 가지다.
젊은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어 내려간다. 피고인의 범행 배경 및 범행동기를 입증하는 자료들을 줄줄이 열거하기 시작한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고발장과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 우익단체들의 고발장도 들어 있다. 문화방송(MBC) 시사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발언까지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된다.
검사의 공술 도중 갑자기 방청석 이곳저곳에서 킥킥 웃음이 터진다. 한 여성 방청객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큰 소리로 웃고 만다. 결국 경위 한 사람이 뛰어 와서는 그 방청객에게 조용히 하라며 주위를 준다. 신성한 법정에서 왜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일까? 바로 검사가 김 교육감의 직무유기 증거라며 제출한 자료들이 황당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사는 극우단체들의 고발장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김 교육감이 시국선언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은 것이 국민들의 감정을 얼마나 상하게 했는지를 입증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검사는 또한 우파 매체들에 실린 신문기사들 역시 김 교육감의 직무유기를 입증하는 증거들이라고 말했다. 법에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자료들을 증거랍시고 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재판장이 나선다. 참고자료에 그칠 뿐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한다. 이어 피고인 측 변호인으로 나온 김칠준 변호가가 조목조목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법정 용어를 빌리자면 '증거 부동의'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검찰의 주장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김 변호사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실들을 하나씩 집어낸다.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자료 대부분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지적한다.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지닌 극우단체의 고발장과 정파적 이데올로기를 지닐 수도 있는 신문기사들이 어떻게 법정의 증거물로 채택될 수 있겠는가? 방청석에서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는 한 편의 코미디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재판장은 공판에 앞서 한 번 더 공판준비 기일 절차를 갖자고 검찰과 변호인 측에 제안한다. 그러자 김 변호사가 나서서는 재판진행을 6.2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달라고 청한다. "현재 김 교육감이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상황"이라며 "재판 결과에 따라 선거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재판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만큼 지방선거 이후로 재판을 연기했으면 한다"는 의견이다. 선거 이전에 판결선고가 어렵다면 선거 이후로 재판을 연기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었다. 다만 준비절차 기일은 피고인이 출석을 안 해도 되므로 선거 기간 중 한 번 더 일정을 잡는 것은 무방하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장이 검사의 의견을 묻는다. 검사는 재판일정을 선거 이후로 미루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며 재판장께서 판단해 달라고 대답한다. 판사는 "재판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재판진행이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본안 심리를 선거이후로 미루자"는 결정을 내린다. 5월 18일 오전 10시에 준비절차 기일을 한 번 갖되 피고인의 출석여부는 재량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가 다시 나서서는 판사에게 청한다. 5월 18일은 교육감 선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인 만큼 준비절차 기일을 조금 더 앞으로 당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사는 그렇게 될 경우 재판이 너무 늦어지게 된다며 이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 교육감에 대한 첫 번째 공판준비 기일 절차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국가권력이 얼마나 황당하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교육감에 대한 기소는 결국 검찰과 교과부 합작으로 만들어낸 '민주진보 교육감 죽이기' 시나리오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엔 경찰까지 나서서 민주진보 교육감 뒷조사를 하는 등 정권적 차원의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법정을 나섰다.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으스스 몸에 한기가 몰려온다. 봄은 언제나 오려는가. 지금 시절이 어느 때인데 찬바람이 쌩쌩 분다는 말이냐. 눈을 들어 산을 본다. 아! 온 산이 울긋불긋 환한 꽃들로 치장하고 있다. 이런 추위 속에서도 봄은 오는 구나! 그 어떠한 심술도 뚜벅뚜벅 다가오는 세상의 섭리를 어쩌지는 못하는구나! 겨울의 모진 찬바람도 연약한 봄의 꽃잎을 이겨내지 못하는구나! 김 교육감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어느새 그는 평소의 환한 표정을 되찾고 있었다. 칼바람이 아무리 기세등등하게 몰아쳐도 결국 봄은 오고야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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