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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 향내에 짙어가는 통영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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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 향내에 짙어가는 통영의 봄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17> 약선 음식, 도다리쑥국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란 류시화 시인의 시가 있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전문


▲ 통영 바닷가에 봄의 전령 매화가 활짝 피었다. ⓒ이상희

사람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더 애가 탄다. 시인이 외눈박이 물고기라고 노래한 비목어는 가자미목 붕넙치과의 '넙치가자미'를 이르지만, 가자미류를 통칭하기도 한다.

"동방에 비목어(比目漁)가 있는데 눈이 하나뿐이므로 두 짝이 서로 합해야만 전진할 수 있다."

중국 동진 때 사람 곽박(郭璞, 276~324)의 저서 <이아주(爾雅注)>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인은 이 책의 내용을 차용해 시를 썼으나, 이는 와전이다. 실상이 아니란 이야기다. 가자미류의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 와전되어 눈이 하나뿐인 외눈박이 물고기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비목어 이야기의 허황함을 모르고 시를 썼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비루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신비를 찾아내는 자가 시인이 아닌가. 우리가 신비라 여기는 것들은 실상 순백으로 빛나는 흰 눈이 덮인 황무지와 같다. 한자락 햇빛에도 금세 녹아 본질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사람은 신비에 눈감고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신비가 없다면 삶이란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바다 보기가 어려운 중국인들이 비목어에 대한 와전된 지식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실증으로 반박한다.

"대체로 이 물고기는 반쪽만 갖추었으므로 그 모양에 따라 이렇듯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바다에서 나는 이 넙치가자미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속칭이 각각 다르고 개체가 독립돼 있다. 그리고 암수가 있으며 두 눈이 치우쳐 붙어 있으며 입은 가로로 찢어져 있다. 얼핏 보면 외짝으로 가기 어렵다고 하나 실험해 보면 한 쌍이 서로 나란히 가는 것이 아니다."
- <자산어보>(정문기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 중에서

몸이 넓적한 가자미는 늘 바다 밑바닥에 몸을 찰싹 붙이고 산다. 몸의 한쪽을 늘 빛이 없는 바다 밑바닥에 붙이고 있기 때문에 원래 밑에 있던 눈이 빛이 있는 위쪽으로 돌아버려, 양면인 가자미류의 눈이 한쪽 면에만 몰려 있는 것이다.

▲ 어린 도다리는 오른쪽으로 쏠리지 않고 눈이 가운데에 붙어 있다. ⓒ이상희

약선 음식, 도다리쑥국

통영에는 입춘 전후 솟아나는 해쑥을 먹으면 한 해 병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요즘 통영은 온통 도다리쑥국 끓이는 향내로 진동한다. 도다리는 비목어인 가자미 종류 중 하나다. 통영의 솥들에서는 그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에 대한 사랑이 절절 끓는다. 원래 깊이 사랑하면 먹거나 먹히는 것이다. 그래야 네 살과 피가 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내 피와 살이 네 살과 피가 된다. 그렇게 사랑은 먹고 먹힘으로써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통영의 들판도 통영의 바다도 이미 봄빛에 짙게 물들었다. 육상의 먹거리처럼 해산물도 제철이 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봄에는 살 오른 도다리가 맛있고 가을에는 기름진 전어의 맛이 뛰어나다. 참돔은 여름에 맛있고 감성돔은 겨울에 맛있다. 농어는 6~7월이 제철이다. 대구는 겨울 대구다. 조개는 4~5월이 맛있다.

가자미의 일종인 도다리는 가자미목 가자미과 도다리속이다. 가자미는 넙치과와 붕넙치과와 가자미과의 넙치가자미, 동백가자미, 참가자미, 목탁가자미, 줄가자미, 용가자미, 문치가자미, 돌가자미, 도다리, 강도다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가자미류는 500종이 넘는다. 그중 도다리는 회색이나 황갈색 몸에 크고 작은 반점이 온몸에 산재해 있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다른 생선보다 많아 맛이 담백하다.

같은 가자미목으로 도다리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넙치과의 광어(넙치)는 가을, 겨울이 제철이다. 봄 광어는 맛이 없다. 그래서 '3월 넙치(광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식담(食談)이 생겼다. 이제는 다들 아는 상식이지만 그래도 광어와 도다리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대로 손쉬운 구별법은 '좌광우도'다. 대체로 사람이 정면에서 봤을 때 눈이 왼쪽으로 쏠려 있으면 광어, 오른쪽으로 쏠려 있으면 도다리다. 물론 광어도 어릴 때는 눈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고 강도다리같이 눈이 왼쪽으로 쏠려 있는 도다리도 있으니 절대적인 구분법은 아니다.

▲ "도다리쑥국 한 그릇 먹으면 한 해 병치레를 안 한다." ⓒ이상희

이른 봄 통영 바다에는 도다리들이 많이 올라온다. 도다리는 물때가 부드러워야 잘 잡힌다. 보통 물살이 세지 않은 13물에서 15물까지와 1물 때에 많이 잡힌다. 물살이 너무 셀 때는 물고기도 떠밀려 이동을 못 하니 잘 잡히지 않는다. 겨울 두 달간은 산란 철이라 금어기다. 봄 도다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도다리가 최고로 맛있을 때는 알이 꽉 찬 산란 철이다. 하지만 알밴 도다리를 잡는 것은 불법이다. 게다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다. 참을 건 참을 줄 알아야 오래간다. 산란 직후의 도다리들은 살이 물러 회로 먹기에는 적당치 않다. 늦겨울 산란을 끝내고 본격적인 먹이 활동을 시작하는 도다리는 봄이면 살이 부쩍 오른다.

살이 단단해지기 전 무른 도다리를 맛있게 먹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 쑥을 넣고 국을 끓이는 것이다. 쑥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따뜻한 피가 돌게 하고 면역력을 증가시켜주는 약초다. 좀 더 멀리 가자면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어머니 웅녀가 본래 곰이었는데 쑥 한 타래와 고작 마늘 스무 개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지 않는가. (아! 신화의 시대에는 사람 되기 참 쉬웠다! 지금은 평생을 살아도 사람 노릇 하기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아무튼 곰을 사람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한 쑥이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거기다 도다리는 <동의보감>에 "허(虛)를 보하고 기력을 더하게 하고, 많이 먹으면 조금 동기(動氣)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보양식이다. 그러니 도다리쑥국은 그대로 음식이 곧 약인 최고의 약선 음식이 아니겠는가.

▲ 통영의 아낙네들은 봄이면 쑥을 비롯한 봄나물을 캐느라 분주하다. ⓒ이상희
오늘도 나그네는 통영 중앙시장 안에 있는 단골식당에서 도다리쑥국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이 집은 얼큰한 쑤기미 매운탕이나 시원한 물메기국도 잘 끓이지만 도다리쑥국 끓이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맑은 국물 한 수저를 떠 넣으니 입안 가득 쑥 향이 고이고 도다리살은 입속에 들어가자마자 봄눈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다. 무른 도다리는 오래 끓이면 살이 부서진다. 그래서 도다리는 살이 익을 정도로만 살짝 끓였고 쑥 또한 푸르르 익혀 푸른빛이 그대로다.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어린 쑥은 생선의 비린 맛을 잡아주면서도 향이 진하지 않아 도다리살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두 재료가 어우러졌으되 함부로 섞이지도 않았다. 소금 간 외에 자극적인 양념을 배제하고 끓였다. 음식에서 양념의 절제가 얼마나 훌륭한 미덕인지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통영의 도다리쑥국이야말로 절제의 미학이 구현된 최고의 봄 음식이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봄을 만끽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이름이 아니겠는가.

아랫도리 무거워 문지방을 못 넘게 하는 쑥국

▲ 통영 바닷가에 봄의 전령 매화가 활짝 피었다. ⓒ강제윤

통영에서는 도다리뿐만 아니라 물메기나 조개에도 쑥을 넣고 끓여내는 풍습이 있다. 궁합이 맞아 어느 것이든 향기롭다. 쑥은 다 자란 쑥보다 어릴 때 기운이 더 넘친다. 그 부드럽고 여린 순으로 단단하게 얼어 있는 땅을 뚫고 나오니 그 생명력이 어떠하겠는가. 쇠도 뚫는다는 새순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황무지가 된 땅에서도 가장 먼저 솟아난 풀이 쑥이었다 한다. 옛날 섬사람들은 쑥을 약재로도 귀히 여겼다. 쇠에 찔렸을 때 방치해 두면 파상풍에 걸리기에 십상이다. 잘못되면 파상풍 때문에 팔다리를 자르는 일도 많았으니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그런데 쑥을 끓인 물에 상처를 담그면 절대로 파상풍에 걸리지 않았다 한다.

통영의 섬 추도에서 만난 노인들은 "쑥하고 톳나물 묵고산 사람들은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섬에서는 톳이나 쑥이나 다들 흉년에 먹을 것 없을 때 먹는 구황 작물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실상 다 약초였던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웰빙 식품이란 것들이 다들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다.

"아직까지 병원을 안 가보고 살아요. 병원하고 담을 쌓고 살아요."

쑥을 상식했다는 추도 어부의 말씀이다. 쑥은 치료 약이면서 보약이다. 그래서일까. 통영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식담이 하나 있다.

"정월 보름 전에 쑥국을 세 번 먹으면 붕알이 무거워서 문턱을 못 넘는다."

겨울을 이기고 솟아난 해쑥은 그만큼 약효가 뛰어나다는 뜻에서 나온 식담일 것이다. 쑥은 조혈 작용에 도움을 주어 피가 잘 돌게 하니 지당한 말씀이지 싶다. 이런 불끈거리는 식담을 듣고도 도다리쑥국 한 그릇 못 먹어보고 봄을 넘긴다면 그 또한 얼마나 서글픈 봄이 되겠는가.

강제윤 시인이 이끄는 인문학습원 <섬학교>가 4월 답사를 떠납니다.
4월 답사지는 <자산어보>와 홍어의 고장 흑산도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여기로 ☞ "흑산도, 그 깊고 푸른 물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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