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김일성의 사망, 1995~96년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 그리고 김영삼 정권의 대북 강압 정책이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이 땅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북한 붕괴설'의 한 복판에 있었다. '3일' 아니면 '3달', 그것도 아니면 '3년' 후에는 북한이 붕괴할 거라는 소위 '3-3-3 가설'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거의 모든 매체들은 성향에 상관없이 북한이 붕괴하고, 후에 어떻게 북한을 안정화시키고 통합시킬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답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치 당연한 듯이 처참한 몰골의 북한 사람들, 영양실조에 배가 불룩 튀어 나온 어린이들, 시장을 헤매는 꽃제비들, 중국 지역으로 나온 탈북자들과 그들의 증언을 앞 다퉈 보도했다.
출처가 어디인지 불분명 했고,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은 거꾸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당화했고,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는데 일조했다.
당시 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북한의 참상은 아마 거의 모두가 사실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유례없는 참상은 북한으로서도 처음 겪은 위기였으며 그러기에 그들도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고의 위기 극복 정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남북의 역사에서 그러한 상황을 처음 맞이하는 남측의 입장에서, 더구나 1990년 독일의 통합과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 등이 겹친 상황에서 북한의 붕괴는 숙원이었던 통일로 나아가게 된다는 희망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2000년대를 맞이해 90년대의 기억과 희망은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 1996년 함경북도의 허름한 주택 주변 지나는 북한 어린이. 1990년대 중반 국내 언론매체를 수놓았던 이러한 이미지들은 북한 붕괴론을 유포시키며 김영삼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조응했다. ⓒ연합뉴스 |
대북정책 정당화에 동원되는 북한 정보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명박 '실용정부'의 등장과 함께 남북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이 최악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앞으로 개성공단 등으로 여파가 확산될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그러나 언론 매체들에 등장하는 풍경은 다시금 1990년대의 그것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일본 방송에 기대어 90년대처럼 곧 무너질 듯한 북한의 낯익은 풍경이 공중파를 통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화폐개혁의 실패=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등식이 등장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에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예견하는 지극히 민감한 시나리오가 공개되고 있다.
비단 그런 모습만 낯익은 것이 아니다. 중국의 학자들이 '북한은 곧 망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보의 출처도 다양해졌다. 북·중 국경지역을 통한 정보만이 아니라 북한 지역 내 주민들과의 통화 내용까지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대북 정보를 취급하는 국내의 민간단체를 통한 소식이 대표적인 통신사에 그대로 실리고 있고, 이것이 다시 증폭되어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사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정보의 출처가 다양해졌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며, 재정적·기술적 면에서도 그때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졌다. 그만큼 정보를 신뢰하게 하는 근거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정보만큼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넓어졌고, 그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이 보다 객관적인 토대에 기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90년대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시 난무하던 출처 불명의 매체와 그 풍경들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당화했고, 이는 다시 정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취사선택되어 확대되었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정보의 선택과 해석은 정책의 정당성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고, 대중적인 정당성을 얻기 위한 해석도 그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은 북한 붕괴설이 지배적인 분위기였고, 정부의 정책 지향과도 일치했다. 정보는 그 자체로 객관적일 수 있지만, 그 해석은 지극히 주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0년대의 경험은 북한에 대한 '사실'보다도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룰 것인지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건강이상설', '화폐개혁의 실패', '북한 급변사태' 등 온갖 설들이 매체에 나타난 북한의 풍경과 정확히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고, 이는 현 정부의 '실용적인 대북정책'의 정당성과 '원칙 고수'라는 입장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정부와 언론의 '이심전심'이라는 측면에서는 1990년대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보에 기초한 '사실'만을 부각시킬 뿐,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정부의 정책과 가치 지향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 강압정책에 따라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북한의 위기를 부각시키는 소식과 뉴스가 전면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前 CIA 한국지부장 "북한, 미국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
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에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 국가는 유·무형의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정보 활동을 전개한다. 특히 북한처럼 정상적인 정보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획득된 정보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신뢰성과 타당성을 검증받게 되고, 해석을 통해 정보의 가치가 최종적으로 평가된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또한 정보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더구나 판단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된다. 만약 해석하는 사람의 눈에 뿌연 안개가 끼어 있다면 객관적인 사물이 제대로 보일 수 있을까? 사물을 제대로 보았더라도 그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정보 중에 어떤 것을 취사선택해야 할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90년대와 비교해 지금의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해석 능력은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정보의 객관성과 해석의 정확성보다는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 혹은 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눈에 낀 뿌연 안개를 제거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그레그 전 CIA 한국지부장(전 주한 미국 대사)은 미국의 정보 역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실패한 사례가 북한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미국에 정보가 없거나 해석 능력이 부족해서였을까? 북한에 대한 냉전적 인식, 미국 정부의 정책 지향에 맞추어서 취사선택되고 해석된 북한만이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근 북한 관련 뉴스를 보면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뉴스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천안함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실명으로 '김정일 방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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