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사회에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의 적색공포가 풍미했다. 조지프 매카시 공화당 상원의원이 1950년 2월 9일 선거유세차 작은 도시에 들어 국무부에 정부전복, 국가반역을 기도하는 297명의 공산당원이 침투해 암약하고 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명단까지 갖고 있다는 폭로는 충격파를 더욱 증폭시켰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의 거짓주장으로 발단한 빨갱이 마녀사냥은 미국사회 전역에 사상검증 광풍을 일으켰다. 색출대상이 국무부, 해외공관을 넘어 공무원, 연예인, 교육자, 과학자, 노조원 등으로 확산되면서 수만명이 공산주의자 또는 그 동조자로 몰려 고발되거나 조사받았다. 그 중 1만여명은 투옥되거나 해고됐다.
1954년 상원 청문회에서 그의 주장은 허위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매카시즘이 불러일으킨 반공주의는 명분 없는 월남참전을 불러왔고 그 반작용으로 확전과 반전 사이에서 미국사회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진통했다. 매카시즘은 조지프 매카시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었다. 냉전논리를 발판으로 정치적 입신을 꾀하던 기회주의적 우익인사, 동서대립을 통해 시장확장을 노리던 군수업자, 인종차별을 통해 기성체제를 향유하려던 백인우월주의자, 지배체제의 고착화를 기도하던 FBI, CIA의 합작품이었다. 언론도 가세했다. 객관적 보도란 이름으로 반론을 한두 줄 쓰면서 그들의 선동적인 주장을 확인 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매카시 광풍을 부채질했던 것이다.
반세기 만에 한국에 매카시가 환생했나
반세기가 지나 이 땅에 매카시가 환생했는지 적색공포가 맹위를 떨친다. 냉전체제 붕괴에 따라 탈이념화가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한지도 2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 10년'을 타령하더니 정치적 반대자를 한마디로 좌파, 좌빨이라고 딱지를 붙여 매도한다. 좌빨은 좌파 빨갱이의 줄임말인데도 서슴치 않는다. 정책 비판자, 개혁 주창자, 민주 수호자를 몰아서 색깔공세를 퍼붓는 형국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찰의 곤봉과 검찰의 기소권을 내세워 일반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결박하고 족쇄를 채운다. 비주류 매체는 좌파언론이라고 옥죄고 공영방송은 노영(勞營)방송, 좌파방송이라고 단죄하더니 집권세력이 접수를 끝마쳤다.
전임정권이 KBS 이사장, 이사, 사장을 임명하거나 선임했다는 이유로 차례로 강제퇴출시켰다. 최소한의 법적 절차를 무시한 폭력적 방법에 대해 법원이 해임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관제사장 체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KBS 장악과정에 어떤 모의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간다. 이런 터에 MBC 장악에 대해 시각에 따라서는 양심고백 같고 내부고발 같기도 한 소리가 엉뚱한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도 친여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잡지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의 김우룡 이사장이 집권세력의 MBC 장악과정을 천박한 표현으로 소상하게 토로했다.
인터뷰의 요지는 MBC의 좌파를 청소하려고 엄기영 사장을 반강제로 내쫓고 김재철 사장을 뽑았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도 정리됐다"말하고 "그걸로 (김 사장은) 1차적인 소임을 했다"고 평가해 그가 좌파 청소를 청부받았음을 강조했다. 이번 인사에서 해임된 12명의 지역 MBC 사장들이 과연 좌파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쉽게 말해 말귀 잘 알아듣고 말 잘 듣는 사람이냐가 첫 번째 (사장 선임) 기준이었다"라는 대목이 엄 사장을 왜 축출했는지 설명하고도 남는다.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다)"라고 밝혔다. 지난 2년 동안 왜 비판적인 9시 뉴스 앵커와 100분 토론 진행자한테서 마이크를 뺏었는지, 또 왜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을 없애라고 그 토록 난리를 피웠는지 배경을 잘 말해 준다. 좌파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계에도 좌파 딱지 붙이는 안상수
좌파 딱지 붙이기는 방송계를 넘어 종교계로 가는 모양이다. 봉은사 주지승 명진 스님이 지난 21일 열린 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기로 한데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13일 오전 프라자호텔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라고 자승 총무원장에게 얘기했다고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아무 데나 좌파 딱지를 붙이는 안상수 대표는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 자리에 배석했던 김영국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안 대표가 명진 스님을 가리켜 '좌파 스님' '운동권 스님'이라고 말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명진 스님과는 면식도 없으며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는 말로 압력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동석한 적도 있고 식사도 같이 한 적이 있다고 대응함으로써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안상수 대표는 또 지난 16일 좌파교육 때문에 흉악범죄와 아동성폭력이 생겼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자 단순히 언론의 왜곡보도 탓으로 돌렸다. 흉악범이 30대이니 이른바 좌파정권 이전에 학교를 다녔을 텐데 말이다. 그는 지난 1, 2월에는 시국사건 법원판결에 대해 연달아 불만을 터뜨리면서 "좌파성향 판사가 사법부의 핵심 개혁대상이다.", "좌파정권이 박은 대못을 뽑아내야 한다" 따위의 발언으로 좌파척결을 유난히 강조한다.
"좌파 척결" 이명박 정부 기반 위협할 것
집권세력이 걸핏하면 좌파척결을 외치는데 정말 누가 좌파인지 알고 싶다. 왜 가치중립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념으로 재단하고 착색해 매도하는가? 분단현실에서 지지세력을 규합해 정권재창출을 기도하는 전략적 판단 이외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시대상황을 외면한 채 외곽세력의 열광만 보고 도취한다면 그 결과는 파멸적이다. 매카시 광풍이 미국사회에 어떤 폐해를 끼쳤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상대결은 계층간-이념간-지역간의 대립과 갈등을 더욱 첨예화하여 오히려 정권의 안정기반을 위협할 것이다. 정치란 분열과 대치가 아닌 대화와 설득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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