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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소동파가 중국인들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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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소동파가 중국인들 부른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日 '아시아로' 北 '중국으로' 南은 어디로?

지난 12일부터 약 1주일간 일본에 다녀왔어요. 일본에서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으로부터 대북 협상 사례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아서 갔습니다.

그건 일본의 새 정부가 앞으로 대북 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학자들은 정부로부터 상당히 큰 규모의 용역을 받은 걸로 보였어요. 내가 그 사람들하고 워크숍을 끝내는 날 중국에서도 전문가가 왔더라고요. 협상 테크닉까지 연구하고 있는 걸 보고 앞으로 일본의 대북 행보가 빨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백낙청) 멤버들이 16일 도쿄에 도착해서 당일 오후 일본 민주당 의원들하고 간담회를 했습니다. 일조(북일)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의원들 십여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만찬까지 하면서 일조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우리의 얘기를 들으려고 했는데, 그 역시도 일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18일 오전에는 하토야마 내각의 외교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책임자급 의원들이 별도로 다시 만나자는 요청도 왔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납치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야 일조관계를 풀 수 있는지 아주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해주고 돌아왔습니다.

17일에는 게이오대학 한국연구센터와 한반도평화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세미나를 했는데, 일본 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도 역시 납치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하는 그 점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17일 오후에는 <세카이>(世界)란 잡지를 출간하는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이 '한일 지식인대화'를 주최했습니다. 일본 쪽에서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 도쿄대 명예교수, 그리고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등 현직 도쿄대 교수나 언론인 출신의 교수 등등 열댓 명이 나왔어요. 소위 진보적인 학자들인데, 거기서도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4시간 이상 대화를 했습니다.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이 아시아 외교를 강화하려면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도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데 과거 자민당 정부가 납치 문제를 조건화하여 국내정치 문제에 이용하면서 납치 문제가 넘기 어려운 벽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괴로워했어요. 대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식인들처럼 고민하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돌파구를 여는 방법이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지식인과 정치인의 차이입니다. 그걸 보면서 일본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나름대로 역할을 잘 나눠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국가에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본, 脫亞入歐에서 脫歐入美 그리고 脫美還亞로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내 놓은 건 일본외교사(史)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말은 사실 일본 외교에 더 어울리는 말이에요.

19세기 중반 일본 막부 시대 말기,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들어올 때, 그걸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동아시아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서양적인 국제질서와 문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라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벗어나서 구라파로 들어가겠다는 뜻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것은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한 중국 중심의 당시 국제질서에서 일본이 조선만큼 중국한테 대접을 못 받아 온데 대한 반발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 미련을 안 갖겠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일본은 서양 문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면서 강국이 됐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이겼고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을 강제로 합병했어요. 그 뒤 일본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철저히 탈구입미(脫歐入美)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보다 더 미국적으로 행동했던 게 자민당 시대의 외교정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창한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는데, 거기에는 더 이상 대미 종속외교는 안 된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봅니다. 탈아입구에서 탈구입미로 갔다가 탈미환아(脫美還亞)하겠다는 거였고, 이번에 일본에 가서 본 게 바로 그런 구체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일본 사람들이 참 정세를 빨리 읽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이 탈미환아하려는 것도 중국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미 G2로 불릴 만큼 국력이 커졌고 미국의 국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어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얼마 전에 서울에 와서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키신저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겁니다. 키신저가 누굽니까. 한때 미국 중심주의적 외교를 강력히 밀어붙였던 사람 아닙니까. 일본은 기울고 있는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을 양쪽에 두고, 계속 미국 쪽에만 서 있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으로 아시아 중심 외교를 공개적으로 말하게 됐습니다.

일본이 그러는 걸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시아 중심 외교는커녕 한반도 중심 외교도 안 하잖아요. 북한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그리고 완전히 미국 중심 외교로 가고 있어요. 한미동맹 지상주의가 우리 외교정책의 기조가 돼버렸어요. 아니 기조라기보다는 그게 출발점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에서 빠져 나오는데 우리는 반대로 더 들어가고 있어요. 물론 일본이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게 적대관계를 만들겠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에 너무 치중하는 건 도움이 안 되고 앞으로 형성될 국제질서 속에서 위상이 낮아지는 걸 막으려면 아시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멀리 보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우리 안보론자들은 전시작전통제권도 돌려받으면 안 된다, 한미연합사 해체도 안 된다고 하는데...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미국은 절대로 한국에서 자기네들의 군사적 개입 여지를 스스로 끊지 않습니다.

전작권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북한을 위험국가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한테 돌려주려고 하는 겁니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나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전작권이 족쇄가 되니까 돌려주려고 하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은 한반도에 안보 위기가 올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은 만약 안보 위기의 징후가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는 다른 대책을 다 세워 놓았을 겁니다.

미국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강한 나라예요. 연합사가 해체되고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도 미군은 한국에 남게 되어 있어요. 전작권 반환되고 연합사 해체되면 미군이 떠날 것처럼 왜곡하고 선동하는데 미국은 절대 안 나갑니다. 그리고 한국의 군사정책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일본이 왜 지금 저러는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키신저의 말도, 이번 말만큼은, 곱씹어 봐야 되고요. 미국이 쇠퇴해가니까 버리자는 게 아니라 너무 매달리지는 말자는 겁니다. 요즘 정부가 자주 얘기하는 그 국격에 어울리는 외교적 위상은 우리 스스로 정립해야 하는 겁니다. 남들이 국제회의 열어서 우리 국격의 등수를 매겨주지 않아요.

▲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금강산 관광지구 ⓒ연합뉴스

긴자에서 만난 중국인들 금강산으로 몰려간다면?

또 일본에서 최근 남북관계 상황과 관련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목격했습니다. 일본에만 있는 물건을 하나 사러 긴자(銀座) 거리에 갔었는데, 중국에서 온 중년 부부들이 너도나도 디카를 들고 도처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중국말로 크게 대화를 하며 관광을 하는 거예요.

북한은 금강산·개성 관광 중단이 계속되면 관광 관련 합의·계약을 파기하고 부동산을 동결하겠다고 남쪽에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새로운 사업자에 의해 금강산·개성 관광을 자국 및 해외에 개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계속 3대 조건만 되풀이하면서 끄떡도 안 하고 있어요.

긴자 거리나 일본 지하철에서 수많은 중국 사람들을 만나고, 또 중국에서 북한 관광 상품이 제법 팔린다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 주는 문제를 북한을 압박하는 일종의 카드로 삼으려는 게 잘 안 먹히겠구나...진짜 오판이고 오산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광이란 건 가까운 나라부터 갑니다. 중국은 이미 6~7년 전에 1인당 소득 1만 불 이상인 인구가 1억 명 넘는다고 했어요. 그동안 경제가 더 나아 졌으니까 이제는 2만 불 이상 인구가 1억 명 가까이 된다 치면, 중국 주변국가에 경치가 좀 아름다운 데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인해전술로 몰려나갈 겁니다. 이미 일본까지 가고 있잖아요. 그전엔 한국에 많이 왔었고. 북한 관광 문호가 열리면 상당수의 중국 사람들이 금강산으로 몰려갈지 모릅니다.

백두산도 그랬어요. 내가 1992년 여름에 중국 쪽에서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안내하는 조선족 동포들과 중국 군인들만 빼고 전부 한국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2005년 여름 연변대학 학술회의차 그쪽에 간 김에 백두산에 다시 올라 갈 때 보니까 십여 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어요. 거의 다 중국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주 간간히 들렸고, 정상에 가 봐도 중국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어요.

금강산은 중국 사람들한테 상당히 매력 있는 관광 지역으로 얼마든지 포장될 수 있습니다. 우선 진시황의 전설이 있어요. 진시황이 서복(徐福)이란 사람한테 '동방의 봉래산에 불로불사초가 있다하니 가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서복이 가서 안 돌아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 봉래산이 금강산의 여름 이름입니다. 진시황이 사람을 보냈던 봉래산에 가자고 하면 중국 사람들은 일단 호기심에서라도 오게 될 거에요.

또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송나라 소동파(蘇東坡)는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란 시구를 남겼습니다.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게 내 소원이다.' 진시황과 서복의 전설, 소동파의 시구를 가지고 관광 상품을 홍보하면 과거 남쪽에서 갔던 것 못지않게 많은 중국 사람들이 금강산으로 몰려 갈 겁니다.

중국 사람들이 일본 긴자에서 디카로 사진 찍고, 미국 유럽까지 관광가는 시절인데 진시황, 소동파 들이 대면서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판촉을 하면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카드로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북한의 버릇을 못 고치고 중국 사람들이 금강산·개성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돼서 중국 돈이 북한으로 막 들어가면 북한 경제는 순식간에 중국화될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 통일은 그만큼 멀어진다는 얘기예요.

독일 통일이나 EU(유럽연합) 통합 과정을 보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커지면서 정치적인 연합이 가능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경제 교류를 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낮아지고 정치·외교적으로도 북한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는데, 9.19 공동성명이 그렇게 해서 나온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 끊기고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경제는 결국 중국의 동북 3성과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화폐 개혁도 실패한 것 같으니까 북한을 틀어막기만 하면 붕괴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요새 갑자기 늘고 있는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삽니다. 남쪽에서 틀어막고 압박해서 손을 들게 하겠다는 사이 북한은 대풍투자그룹을 만들어서 외자 유치에 나섰고, 중국에도 나진·선봉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나진·선봉 개방은 북한과 중국이 자기네들끼리 상부상조하겠다는 겁니다. 중국은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대미·대일 수출의 물류 통로를 확보하는 대신 북한은 사용료 같은 걸 받겠다는 겁니다. 또 조중간 변경무역도 더 원활해지면 북한 경제는 살아나는 거예요. 남쪽이 안 도와주니까 북한이 탈남입중(脫南入中)하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럴 줄 몰랐겠죠. 꽉 막아 버리면 언젠가 무릎 꿇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북한은 이미 다른 쪽으로 숨통을 트고 있습니다. 중국도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차원의 고려 때문에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도와줄 수밖에 없어요. 북한은 이제 남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점점 기대를 접는 쪽으로 갈 겁니다.

그게 뭐가 아쉽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가 위안화 경제권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건 우리로서는 정말 불행한 결과밖에 오지 않아요. 민족사적으로.

우리 민간기업들이 금강산에 3000억 원 이상 투자하고 정부도 600억 원 들여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지어 놨는데, 북한이 부동산 몰수하고 그러면 앞으로 누가 북한에 투자하겠느냐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는 안 갈 거라고 믿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북한은 어차피 빨간 딱지가 붙어 있어서 그런 거 겁도 안 냅니다. 2003년 8월 내가 통일부에 있을 때 남북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했는데. 거기에도 예외조항이란 게 있어요. 나중에 불가피한 경우 투자한 걸 실비로 보상해 줄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걸 근거로 실비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중국이나 이런 데서 들어오는 돈을 현대에 찔끔찔끔 주다가 나중에 유야무야 끝내버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투자보장협정 왜 안 지키느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북쪽도 할 말 많아요. 투자보장협정이 나오게 된 상위 합의인 6.15 공동선언은 왜 안 지키느냐고 나오면 뭐라고 답할 겁니까? 참 답답합니다. 이제 금강산은 다시 멀리서 '그리운 금강산'을 노래로만 부르며 그리워해야 할지도 몰라요. 과거에는 직접 가서 불렀는데,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앞에서 옛날 얘기가 돼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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