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고액 보수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러자 얼마 전 이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말이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런 방안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 경영자의 평균 보수가 1976년에는 일반 직원 평균 보수의 36배였지만, 1993년에는 131배로 늘어나면서 최고 경영자들의 고액 보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일부 경제학자들도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자 최고 경영자의 보수 인상을 자제시킨다는 뜻에서 이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다. 2007년 고위 경영자의 평균 보수는 일반 직원 평균 보수의 369배로 공개 조치 이전보다 한층 더 껑충 뛰었다. 심리학자들은 왜 이런 역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보수가 공개되면 다른 사람과 비교가 더 뚜렷해지면서 보수를 인상해달라는 요구가 더욱더 거세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왼쪽부터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한덕수 무역협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이희범 경총회장. 이들은 지난달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경제 위기 극복 유공자 훈장 수여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나란히 받았다. ⓒ연합뉴스 |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왜 이렇게 엄청난 금액의 보수를 받게 되었을까? 생산성 제고나 이윤 창출에 기여한 당연한 결과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할 것이다.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에서 각 개인은 '생산에 기여한 정도'만큼을 보수로 받게 되어 있다는 이론이 19세기에 개발된 이래 많은 경제학자는 이 이론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어디까지나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을 전제하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완전경쟁시장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이런 중요한 전제를 살짝 빼놓고 결론만 얘기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들도 인정하듯이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상황일 뿐이다. 현실의 시장은 독과점으로 그득하다. 특히 대기업은 대부분 독과점 기업이다. 독과점 기업은 완전경쟁시장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고객에게 강요함으로써 독점이윤을 챙긴다. 이 독점이윤의 상당한 부분을 고위 경영자들이 나누어 먹기 때문에 이들은 생산에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게 된다. 실제로 대기업 고위 경영자의 고액 보수에 관한 한 연구는 이들의 소득이 기업 실적과 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독과점 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는다. 독과점이 불공정 거래의 일종이라고 하면, 대기업 고위 경영자의 고액 보수는 불공정 거래로 얻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과점 이론만으로 최고 경영자의 엄청난 보수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보면, 실패한 고위 경영자들도 고액 보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때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고, 2008년 미국 금융 붕괴 때에도 그런 사례를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고위 경영자의 고액 보수를 설명하려는 많은 다른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공격적(위험을 덜 두려워하는) 경영을 위한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고위 경영자에게 고액의 보수를 주게 된다는 이론도 있다. 대체로 주주들은 위험하더라도 수익률이 높은 사업을 선호하는 까닭에 회사가 공격적 경영을 해주기를 원한다.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 경영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이에 따른 금전적 손실은 다수의 주주에게 분산된다. 그래서 각 주주는 실패의 위험을 크게 느끼지 않으며, 위험보다는 수익률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고위 경영자는 위험에 매우 신중하다. 이들에게는 일생의 경력이 걸린 문제다. 공격적 경영을 하다가 실패하는 날이면 그 책임을 제일 먼저 뒤집어써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력서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들의 경력은 회사의 성공 여부에 크게 달려 있다. 그래서 고위 경영진의 입장과 주주의 입장이 엇갈리게 된다. 주주는 회사 경영진이 좀 더 공격적이기를 원하지만, 이들은 고위 경영진의 업무 수행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무래도 고위 경영진은 주주들보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훨씬 더 잘 알면서 각종 의사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주주는 오직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경영진으로 하여금 좀 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높은 보수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보면, 돈이 많은 사람은 위험을 덜 두려워한다. 예를 들면, 거부들은 실직을 덜 두려워한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고액 연봉을 받는 고위 경영자는 그렇지 않은 경영자에 비해서 위험을 덜 두려워할 것이며, 따라서 주주의 요구에 부응하여 공격적 경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이론도 있다. 최고 경영자들의 고액 보수를 연구한 하버드 법대의 어느 두 교수는 최고 경영자들과 이사진의 유착을 그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사회가 거리를 두고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다는 최고 경영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나 조치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묵인하려는 유인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체의식, 가까운 지인들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려는 성향, 그리고 지연, 학연, 혈연 등으로 엮인 감정, 충성심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최고 경영자의 비정상적 고액 보수의 궁극적 원인을 일반 국민의 무지의 탓으로 돌리는 학자도 있다. 일반인들은 비정상적 고액 보수를 둘러싼 복잡한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미지근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기업 내부의 속사정은 최고 경영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최고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최대한 채운 결과가 비정상적 고액 보수라는 것이다. 비정상적 고액 보수는 이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의 한 증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서 최고 경영자의 보수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대기업 최고 경영자의 연봉을 규제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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