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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아사다 마오를 낳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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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아사다 마오를 낳으셨는가"

[모 피디의 그게 모!] 각본없는 드라마

열 여섯 모 -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짧은 순간이었다. 김연아가 경기를 마치고 아사다 마오가 긴장된 얼굴로 빙판에 나서기까지. 김연아의 점수가 너무 높았다.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어 보이는 벽에 도전해야 하는 심정. 내가 하는 경기가 나의 패배를 인정하게 만들 뿐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눈 앞에 놓인 잔이 독주라는 걸 알면서도 자기 앞에 놓인 잔은 비워야 했다. 아사다 마오는 실수를 했고, 경기는 끝났다.

아무리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지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기는 최고의 영웅 서사였다. 모든 요소가 완벽하리만치 갖춰졌다. 아름다움과 기술을 동시에 뿜어 내야하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일생의 라이벌인 두 소녀. 더욱이 한일전. 사람들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혹은 적벽에서의 제갈공명과 주유를 떠올렸다. 신은 왜 주유를 보내시고 또 제갈량을 보내시었는가. <삼국지연의>의 유명한 문장은 곧 패러디되었다. 왜 신은 아사다 마오를 낳으시고 또 본인이 직접 내려오셨는가. 그리고 언젠가 김연아의 일기장에 쓰여졌다던 '왜 하필 아사다 마오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라는 아쉬움 짙은 문구는 이 영웅 서사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한다. 경기 자체는 여신과 그 여신을 이겨보려는 인간 2인자의 구도였지만, 길게 보면 김연아의 인생을 건 불굴의 대역전극이기도 했다.

여신 대 인간이라고 했다. 이 구도가 대중이 가장 환호하는 구도다. 인간은 불굴의 의지와 놀라운 대범함으로 여신이 되었고, 라이벌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인간으로 남았다는 이야기. 이건 거의 환웅 설화다. 김연아는 건국 시조를 낳은 웅녀고 아사다 마오는 쑥과 마늘을 못 견디고 뛰쳐나간 호랑이다. 이처럼 스포츠에서의 압도적인 성취는 현대의 신화가 된다. 이런 경우, 얼핏 김연아는 배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중이 감정이입을 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타가 되는 데서 그치지만, 스포츠는 진짜 현실의 승부이기에 그대로 국민적 영웅이 됨과 동시에 전설이 되어버린다.

이것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 스포츠 국가 대항전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노력과 승부라는 선명하고 명쾌한 영웅 서사를 통해 새로운 신화를 맛보며 뿌듯해하거나, 실패의 아픔과 아쉬움에 인간적으로 공감하며 과정에 박수를 보내거나. 그러나 선수들은 입장이 좀 다르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중되는 대중들의 욕망과 요구는, 그들이 집중했던 훈련과 경기라는 인생의 규칙만큼 단순하지 않다. 이번에도 미디어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미디어야 승패를 떠나 최대한 '그럴듯한' 영웅 서사를 많이 제공할수록 수익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선수들이었다. 승자에겐 지나친 기대와 요구로 질식시키거나, 패자에겐 지나친 동정과 연민으로 비참함을 가중시키거나 할 것 같았다.

▲ 금메달을 들여다 보이는 김연아 선수와 자신의 은메달을 바라보는 아사다 마오 선수. 인간은 불굴의 의지와 놀라운 대범함으로 여신이 되었고, 라이벌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인간으로 남았다는 이야기. 이건 거의 환웅 설화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과로 느껴지는 게 있다면, 선수들이 미디어의 신화 쓰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압도당하지도 않았다는 데에 있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구도를 심화시키려는 인터뷰에 끊임없이 시달렸지만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한다는 현명한 답변을 했고, 최고의 선수였지만 올림픽 메달을 따지 못했던 이규혁도 스스로의 성취가 미치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드러냈을 뿐, 미디어의 조명에 주눅 들거나 미안해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뭐라고 하건, 미디어는 쓰고 싶은 서사를 쓰고 대중은 보고 싶은 영웅을 본다. 그걸 부정하거나 나쁘게 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만 선수들은 솔직하고 발랄했다. 시상대에서의 시건방 춤이든 중학생 곽민정의 환호성이든, 그들은 영웅 서사를 써야하는 국민적 사명을 띤 전사들이 아니라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거창하게 포장되는 일이 촌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는 걸 체득하고 있었다.

자라나는 세 세대의 선수들은 이렇게 멋지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언론 장악의 최후 수순으로 MBC 사장이 결정된 날은 김연아의 경기 전 날이었다. 2008년 KBS 사장의 불법 해임은 하계 올림픽 개막 전 날이었다. 너무 진부하여 읽기조차 싫지 않은가. 사실 이런 이야기는 쓰기도 너무나 촌스러워 소름이 돋는다. 스포츠로 인한 우민화 정책과, 국민적 관심이 몰린 경기 직전의 정치적 사안의 날치기 처리라든가, 도대체 이것들이 언제적 담론이란 말인가. 이렇듯 시대는 한 없이 역행한다. 하지만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희망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시대가 어떻든 미디어의 욕망이나 대중이 주는 부담에 개의치 않고 훌쩍 날아오르는 듯한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주변에 압도당하지 않고 무엇이 본질인지 직관할 줄 아는 세대가 다음 세대라면, 지금 세상의 촌스러움도 머지 않아 극복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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