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기분 좋은 새해 설 선물을 하겠다(이운재). 일본에는 정말 지기 싫다(구자철).'
축구 태극전사들이 13년 만에 일본의 심장부에서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침몰시키는 `도쿄 대첩'을 재현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4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 2010 동아시아선수권대회 풀리그 최종 3차전에서 선제골을 내주고도 이동국, 이승렬, 김재성의 연속골로 기분 좋은 3-1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최고의 `도쿄대첩'으로 불리는 일본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연상시키는 명승부다.
한국은 1997년 9월28일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열렸던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후반 22분 선제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었으나 조커로 투입된 서정원이 경기 종료 7분 전 최용수의 헤딩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뽑았다.
이어 이민성은 3분 후 기습적인 중거리포를 날려 2-1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당시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일본 관중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후지산이 무너진다'는 해설자의 말은 한동안 인구에 회자했을 정도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4개월여 앞두고 국내 축구팬들의 거센 비난 여론에 마음 고생을 해왔던 후배들도 13년 만에 선배들의 `도쿄대첩'으로 한일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은 이번 대회 1차전에서 홍콩을 5-0으로 대파하고도 중국과 2차전에선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 투지 실종 등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0-3으로 패배를 당했다.
이 때문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격분한 네티즌이 몰리면서 서버가 한때 멈추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일각에선 허정무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흘러나왔다.
허정무 감독으로선 일본과 경기까지 진다면 `경질설'에 휘말릴 위기에 놓였고 일본 언론은 역시 팬들의 퇴진 압박에 직면한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맞대결을 빗대어 `단두대 매치'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08년 2월23일 중국 충칭에서 이뤄졌던 동아시아선수권대회 3차전(1-1 무승부) 이후 2년여 만의 맞대결에 총력전을 폈으나 승리의 여신은 한국의 편이었다.
한국은 전반 22분 엔도 야스히토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해도 중국에 당한 참패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일본만 만나면 승리를 향한 투지를 불태우는 건 후배들도 다르지 않았다.
수비 가담 부족으로 지적을 받아왔던 최전방 공격수 이동국은 과감한 태클로 공을 뺏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도 거친 수비로 강민수와 김정우, 김보경이 잇달아 경고를 받았다. 특히 김정우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또 한 번의 거친 태클로 퇴장을 당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의 허슬 플레이는 결국 귀중한 승리를 엮어냈다. 김보경이 재치 있게 페널티킥을 유도하자 키커로 나선 이동국이 침착하게 동점골을 만들어냈고 이승렬이 통렬한 왼발 중거리포로 역전골을 뽑았다. 아크 정면에서 때린 이승렬의 슈팅은 13년 전 일본을 무너뜨렸던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에 비견될 만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김재성의 쐐기골로 일본의 추격 의지를 꺾고 결국 3-1 역전 드라마의 마지막 조각을 맞췄다.
역대 일본과 A매치에서 38승22무12패로 앞서고도 이 경기 직전까지 7년 동안 4경기 연속 무승(3무1패) 부진에 빠져 있던 한국.
벼랑끝에 몰렸던 태극전사들은 중국전 참패를 딛고 최대 민족의 명절인 설에 승리를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결국 짜릿한 역전승으로 비난했던 축구팬들에게 기분 좋은 승전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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