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는 지난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코펜하겐 회의의 캐치프레이즈는 '지구를 구할 마지막 기회'였다. 이처럼 '시기적 절박성'을 강조한 근거 역시 IPCC 보고서에 담긴 예측이었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모든 빙하는 2035년 경, 혹은 더 일찍 사라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라는 이 예측은 과학적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과학논문'이라는 IPCC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관련 기사: 지구온난화 이론, '과학적 사기극'으로 전락하나)
IPCC는 최근에야 이 사실을 공식 인정하면서도 "인간적 실수였으며, 보고서의 핵심 내용도 아니다"면서 지구온난화 연구 전체를 폄하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 히말라야 빙하들의 소멸 예측은 근거도 없이 너무나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로이터=뉴시스 |
사실 이 예측은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추려낸 정책참고요약(summary for policymakers)에는 빠졌다. 과학적 연구 결과물이 아닌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지지하는 진영은 이 예측에 열광했다.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압도하는 '포괄적이며 단정적인 서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을 바로 '블랭킷 스테이트먼트(blanket statement)'라고 한다.
과학계에서 '블랭킷 스테이트먼트'는 어떤 서술보다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할 대상인 것은 상식이다. 과학기구라는 IPCC조차 UN 산하기관으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IPCC 보고서에 '블랭킷 스테이트먼트'가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고 들어간 것은 '실수'가 아니라 '정치적 역학'이 작동한 것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히말리야 빙하 소멸설'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해서, 지구온난화 연구 모두가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도 지난 23일 이 점을 한 기후학자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히말라야 빙하가 2035년 경 사라진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기뻐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빙하가 사라지는 것은 여전히 시간문제일 뿐이다."
또한 지구온난화 이론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오류가 일부 있다고 해서 전체가 틀렸다고 몰아가지 말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블랭킷 스테이트먼트'의 오류는 계산 실수나 해석의 실수 등 '일부 오류들'에 포함시키기에는 성격이 다르다. 과학적 검증을 거쳤는데도 오류로 드러났건, 과학적 검증 자체를 거치지 않고 포함시켰건 엉터리 '블랭킷 스테이트먼트'가 과학논문에 실린 이번 사건은 '지구온난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그 이론에 대해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는 중대한 사태다.
"2035년 빙하소멸하려면, 예상보다 25배나 빨라야"
<인디펜던트>는 '히말라야 빙하 소멸' 시기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2035년으로 설정되었고, IPCC 보고서에 실리게 됐는지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기사 원문보기)
이 신문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연구로 2007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IPCC가 내놓은 이 예측은 히말라야 빙하에 대해 실상을 알고 있는 과학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히말라야 빙하가 2035년 경 모두 사라지려면 두께가 수백m에 달하는 빙하들도 예상보다 무려 25배나 빠르게 용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통념과 크게 다른 주장이다. 과학계에서 '비범한 주장'은 '비범한 증거'가 요구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히말라야 빙하 소멸설'의 근거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IPCC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이 예측에 대해서 과학적 주장의 가치를 평가하는 '확고히 수립된 기준'이 적용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또한 IPCC는 "히말라야 빙하들은 지금도 녹고 있지만, 2035년 경 사라질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빠르게 녹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IPCC 보고서의 저자들이 실수로 저지른 이 예측의 근거는 이른바 '회색문헌(grey literature)'에 의존한 것이었다고 <인디펜던트>는 지적했다. 발표 이전에 다른 전문가들이 검증하는 '피어 리뷰'를 거친 과학 논문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 저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이것만이 아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실수가 명백히 있었다.
문제의 예측은 1999년 4월 <다운 투 어스(Down to Earth)>라는 인도의 한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시작된다. 시예드 하스나인이라는 인도의 한 과학자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히말라야 빙하들은 세계 어느 지역의 빙하보다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으며, 이런 속도로 진행되면 2035년 경 모두 사라진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기사에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존경받는 빙하학자 블라디미르 코틀랴코프가 하스나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발언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코틀랴코프의 발언은 심각하게 잘못 인용된 것이었다.
어쨋든 이런 주장들을 담은 기사를 노련한 환경전문기자로 존경받는 프레드 피어스가 읽지 않았다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끝났을지 모른다.
피어스는 하스나인에게 연락해 이 주장을 다시 확인한 뒤 <뉴사이언티스트>에 기사화했다. 이제와서 하스나인은 피어스에게 "당시 그 주장은 그저 추정이었을 뿐"이라고 말을 바꾸었다.(☞관련 기사:'기후변화 전문기자' 피어스의 고백…"과학자에 대한 신뢰 상실")
여기까지만 해도 '2035년'이라는 숫자가 IPCC 논문에 그대로 인용될 정도로 공신력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국제적인 환경기구 WWF가 2005년 보고서에서 '2035년'이라는 숫자는 국제설빙위원회에 제출된 하스나인의 내부보고서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
하지만 이 위원회의 보고서들에 '2035년'이라는 숫자가 담긴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WWF의 보고서, 그리고 '2035년'이라는 숫자는 모두 <뉴사이언티스트>에 실린 피어스의 기사에 의존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같은 해에 먼저 나온 <다운 투 어스>에 의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 지난해 12월 개최된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기후변화에 대한 '종말론적 경고'만 했을 뿐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했다.. ⓒ로이터=뉴시스 |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정치적 배경이 의심되는 과정이 전개된다. IPCC 보고서에 히말라야 빙하 섹션을 담당한 저자들은 IPCC 제2분과 소속이었다. 이 분과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파괴적 영향'을 평가한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기후변화 연구를 책임지는 곳은 제1분과다. 이 분과는 빙하 연구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정작 제1 분과가 작성한 자체 보고서에는 '2035년 히말라야 빙하 소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반면 제2분과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히말라야에 있는 빙하들은 세계 어느 지역에 있는 빙하들보다 빠르게 녹고 있으며, 현재의 속도로 진행이 계속되고, 지구가 현재의 속도로 계속 더워진다면 2035년 경 또는 아마도 더 이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50만㎢의 빙하 면적은 2035년 10만㎢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 보고서에는 이 예측을 뒷받침하려고 WWF의 2005년 보고서가 참고 문헌으로 포함돼 있는데, 그것도 보고서 초안 작성 도중 검토를 하던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서술은 코틀랴코프가 언급한 빙하 면적 축소 예측을 포함해 <다운 투 어스>의 기사 내용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2035년이라는 수치는 2350년의 오기?
사실, 히말라야 빙하의 총 면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틀랴코프가 히말라야 빙하 면적의 축소를 언급한 것이 아닌 줄 알았을 것이다. 코틀랴코프가 언급한 것은 극지역 빙하를 제외한 전세계 빙하 면적의 축소 예측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다운 투 어스>에 심각하게 잘못 인용된 코틀랴코프의 보고서 내용이었다. 바로 극지역 빙하를 제외한 전세계 빙하들의 면적이 5분의 1로 축소되는 것이 2350년이라는 것이다. 2035년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IPCC가 문제의 예측을 뒷받침하기 위해 히말라야 빙하에 관한 데이터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계산 착오를 저질렀다. 텍사스 A&M 대 존 닐슨-개먼 교수가 최초로 발견한 이 실수는 다음과 같다.
121년 걸친 변화를 21년으로 계산
히말라야의 빙하 중 하나의 길이가 1845년에서 1966년 사이에 2840m가 줄어들었다. 연평균 23m가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IPCC의 보고서에는 연평균 135m가 감소한 것으로 기록됐다. 누가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121년으로 나누어야할 것을 21년으로 나눈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2035년 예측이 IPCC의 정책참고요약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예측이 핵심 결론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처럼 놀라운 주장은 널리 회자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 예측에 대해 제기된 의문들은 IPCC 수뇌부들에 의해 거부됐다. 진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평범한 기후 과학자들의 끈질긴 조사에 의한 것이었다."
캐다나 온타리오에 있는 트렌트대 그레이엄 코글리 교수는 '2035년 예측'의 출처가 1999년 <뉴사이언티스트>의 기사라는 것을 발견하고 피어스 기자에게 경고했다.
IPCC 위원장이 의문 제기 일축한 것도 '실수'?
코글리 교수에 따르면, IPCC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자 신속하게 잘못을 시인하며 바로잡았다. 하지만 IPCC의 위원장 라젠드라 파차우리는 지난해 IPCC의 연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을 "부두(흑마술) 과학자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코글리 교수는 "제1분과의 연구지침은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회색문헌'에 의존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2분과에서 이런 규정은 보다 느슨하다.
코글리 교수는 지구온난화 이론 전부를 회의적으로 보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히말라야의 현실은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열악하다"면서 지구온난화 연구가 '정치적으로 오염돼 과장된 이론'으로 전락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히말라야 빙하 전문가로 IPCC 보고서의 오류 적발에 기여한 제프리 카겔 교수도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IPCC 제4차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매우 견고하고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카겔 교수는 "회의론자들이 '빙하게이트'에 대해 언급할 때 가슴이 아프다. 정교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면서 "과학은 자기교정이 있고, 그런 과정이 진행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이론은 일개 한 과학자의 논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학자들 수천 명이 모였다는 IPCC 같은 거대한 과학기구가,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을 '흑마술 과학자'로 일축하며 몇년 간이나 자기교정에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지구온난화 이론은 정치적, 산업적 배경을 넘어 '종교적 색채'까지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2035년 히말라야 빙하 소멸'처럼 '종말론적 예측'이 가장 엄격해야 할 UN 과학기구의 종합보고서에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고 포함된 것이 그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IPCC 보고서' 논란이 과학이론이 정치적,산업적, 종교적으로 오염될 위험을 경고하는 '쓴약'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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