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혁시민연대가 느닷없이 시민방송 RTV를 공격하고 나섰다. 그런데 공격의 수위와 방법이 심상치 않다. 우선 수위가 이례적이다. 지난 14일 발표된 방개련 성명의 제목은 이렇다. "시민채널 RTV, 공산주의 선전방송인가?" 오싹하다. 내용은 더욱 섬뜩하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국가 정체성을 뒤흔드는" RTV에 대해 "채널 심사를 엄격히 진행하여 그 존폐 여부를 판가름해 줄 것"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하는 게 핵심이다.
방개련 성명이 나가기 무섭게 뉴라이트 계열 인터넷 매체가 공격에 합류했다. <뉴데일리>와 <독립신문>이 약속이나 한 듯 기민하게 나섰다. 이들 매체는 한 술 더 떴다. 아예 분석 기사의 제목을 "DJ 때 출생, 노무현이 키운 RTV 어떤 곳인가?"로 달았다. 작은 제목도 예사롭지 않다. "국민 외면한 편파방송, 노무현 정부 때 지원금 싹쓸이" 등이다. 도대체 왜 이럴까?
시민방송 RTV는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영하는 국내 유일의 시청자제작(퍼블릭액세스) 전문 채널이다. 1990년대 중반, 각계 인사가 주축이 됐던 국민주방송추진위원회의 논의 성과를 토대로 지난 2002년 9월에 개국했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은 주류 방송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들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영하는 곳이다.
2005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뉴스'와 '이주노동자세상'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취재, 제작, 진행을 맡은 RTV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TV 프로그램이 없던 터여서, 국내외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주류 방송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국내외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영화, 날개를 달다'와 장애인들이 스스로 만들고 진행한 '나는 장애인이다', 전국 20여개 대학 방송 전공 대학생들이 제작한 '달리는 대학, 청년을 말한다' 등도 방송의 선정성과 상업성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특히 (제작자에 대한) 차별 금지, (제작물에 대한) 최소 심의, 선착순 방영'을 원칙으로 일반 시민들의 프로그램을 모아 방영한 '무한자유지대'는 우리 방송사에 일찍이 없던 시도였다.
이런 가운데 방개련과 보수 매체가 갑자기 'RTV 죽이기'에 나섰다. 무슨 까닭일까? 사실 RTV는 현 정부 들어 이미 반쯤 죽어 있는 상태다. 지난 2008년까지 방송법에 근거해 지원되던 정부로부터의 지원금이 2009년부터 전면 중단됐다. 공익채널 정책 시행 첫 해인 2005년부터 매년 지정됐던 공익채널 선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제됐다. 모든 지역의 케이블 TV가 의무전송해야 하는 공익채널에서 탈락되면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는 여지도 많이 좁아졌다. RTV는 우리나라 PP(채널사용방송사업자) 가운데 유례가 드문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공익성을 중시하는 까닭에 개국 이후 상업광고를 하지 않고 다른 수익사업도 펼치지 않았다. 이런 채널에 유일한 수입원인 정부 지원금을 모두 끊었다. 시청자와 만날 수 있는 여지도 크게 좁혀 버렸다. '시민방송'이라는 이름이 마뜩치 않고 시민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RTV 구성원들이 미워서일까. 아니면 거기서 방영되는 소외계층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일까.
2중의 차단벽 탓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RTV에 방개련과 뉴라이트 계열의 인터넷신문 등이 집중 포화를 퍼붓고 나섰다. 방개련의 성명과 <뉴데일리> 등의 보도 내용으로 추측컨대, 지난 해 11월 RTV가 방영한 '군대?'라는 프로그램이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군대?'는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을 주장해 온 강의석 씨가 직접 만들어 방영을 요청한 작품이다. 방개련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국가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이런 반국가적, 편향적 방송 채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방통위를 상대로 "경영이 부실하고 공적 책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RTV에 대해 채널 심사를 엄격히 진행해 그 존폐 여부를 확실히 판가름해 줄 것"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 자체를 완전히 날조하거나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방송 전문가를 표방하고 있다는 방개련이 '시청자참여'(퍼블릭액세스)라는 방송의 중요한 분야에 대해 전혀 식견이 없거나 형편없이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드러났다는 것이다.
우선 사실에 대한 날조와 왜곡이다. 방개련은 "RTV가 참여정부 5년 동안 총 150억원의 법적 근거가 없는 지원금으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우선 수치가 틀렸다. RTV가 참여정부 집권 시절 받은 지원금의 총액은 83억원이다. 법적 근거도 없이 지원 받았다는 비난도 터무니없다. 2000년에 개정된 통합방송법 제 38조는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과 방송 소외 계층의 방송 접근을 지원하는 데 방송발전기금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RTV를 지원했다. 법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현 방통위 야당 상임위원보다 훨씬 강력한 견제 목소리를 냈던 당시 야당쪽 상임위원들의 동의 아래 기금이 집행된 것이다. 완전한 날조가 아닐 수 없다.
방개련은 또 "시청자제작프로그램에 배정된 방송발전기금의 69%를 할당 받는 등 끊임없이 특혜시비가 제기됐다"고 썼다. '69%'라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특혜 시비가 제기된 적도, 제기될 이유도 없었다. 까닭은 이렇다. RTV는 국내 유일의 시청자참여(퍼블릭액세스) 전문 채널이다. 편성의 80% 이상을 시청자가 제작한 프로그램들로 채운다. RTV 말고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내보내는 데는 한국방송 KBS(<열린채널>)과 일부 케이블 TV 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한국에 퍼블릭액세스 채널 여러 곳이 있는데 RTV에만 기금의 절반 이상이 몰렸다면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다. 2008년 한 햇 동안 방영된 시청자제작프로그램 2천5백편 가운데 1천4백편이 RTV가 내보낸 것이다. 게다가 RTV가 방송위의 기금으로 시청자 제작자에게 주는 방송채택료는 다른 데 비해 한결 적다. KBS의 방송채택료가 분당 23만원이고 케이블TV가 4만원인데 반해 RTV는 3만원이다. 기금을 잘게 나누어 보다 많은 제작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계산에 넣으면 시청자제작프로그램 지원금의 80% 정도가 RTV에 지원되는 것이 맞다.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셈인 것이다. 따라서 방개련의 이 주장은 교묘하지만 터무니 없는 왜곡이다.
날조와 왜곡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방개련 소속 '방송 전문가'들의 방송에 대한 무지다. 특히 시청자의 방송 참여와 퍼블릭액세스에 대해 이들이 이번에 드러낸 천박한 인식 혹은 무지는 방개련이 추진하는 이른바 '방송 개혁'에 심각한 우려를 던져준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우선적 기능은 방송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비교적 가감 없이,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주류 방송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야 거대 방송이 좌우하는 여론시장의 공정성이 그런대로 확보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미디어 선진국을 포함한 해외의 퍼블릭액세스 채널들이 '최소한의 심의'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류 가치를 잣대로 소외 계층의 주장이 훼손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강의석씨가 제작한 '군대?'도 마찬가지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우리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소수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이나 의견은 주류 방송에서 잘 내보내지 않는다. 바로 이런 주장과 의견을 가급적 거르지 않고 방영하는 곳이 퍼블릭액세스 채널이다.
물론 최소한의 심의는 거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도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들의 주장이나 의견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가급적 삼간다. 방개련 주장대로 강씨 작품이 문제가 있다면 강씨 주장을 반박하거나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을 요청하면 된다. 이것이 퍼블릭액세스 채널의 운영 원리다. 만일 소수자의 의견이 지배적 가치와 충돌한다고 방영을 불허하거나 내용을 크게 수정하라고 한다면 이는 퍼블릭액세스의 기본 취지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유럽의 한 퍼블릭액세스 채널에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2차대전 뒤 반나치 계열 인사들이 개국한 이 채널에 나치 인사들이 앞다투어 나치즘을 찬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을 요구했다. 선착순 원리이므로 아침부터 이들 나치 인사들이 이 방송사 앞에 줄을 섰고 '시청자 프로그램'을 선착순으로, 훼손하지 않은 채 방영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몇 개월 가까이 개국 취지에 어긋나게 이들 나치 찬양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이다.
또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2004년 한겨레신문이 자신의 뉴스 콘텐츠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데일리 뉴스 프로그램인 '한겨레 뉴스 브리핑'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방영 요청을 했고, RTV는 이를 수용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일보가 얼마 뒤 '조선-갈아만든 이슈'라는 내용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방영 요청을 해 왔다. RTV는 '차별 금지, 열린 편성'라는 편성 원칙에 따라 이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했다. 이후 상당 기간 '한겨레 뉴스 브리핑'과 '조선-갈아만든 이슈'가 맞편성되어 나란히 방송됐다.
방개련은 '군대?'의 사례를 들어 공정성과 공익성을 거론하며 편파방송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정성과 공익성을 외면한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얘기를 거르지 않은 채 방영하되,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담은 프로그램의 방영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공정성이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에서 소수자와 약자 등 소외 계층에 대한 편파성은 오히려 공익성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내야 여론 시장의 독과점을 막고 공론 광장의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퍼블릭액세스 채널을 표방하는 RTV의 존재 의미를 의심케 하는 것"이라는 방개련 등의 주장은 무지의 소치다. 아니면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일면적 인식 탓이거나. 방송 개혁을 진두 지휘하거나 나서서 거들기 위해서는 방송의 주요 분야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알량한 지식으로 오도된 비판을 펴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라와 우리 방송의 장래가 걱정된다.
남는 의문이 있다. 방개련 등이 왜 이 시점에, 별로 큰 영향력이나 지명도가 없는 RTV를, 그것도 돈줄이 막혀 허덕이는 곳을, 야단스럽게 공격하고 나섰는가 하는 점이다. 강의석씨 작품 '군대?' 만을 문제 삼은 것이라 하기에는 '공산주의 선전 방송'이라는 공격의 수위가 너무 높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YTN과 KBS에 대한 공략은 마무리됐다. 이어 MBC도 다잡고 있다. 이제 저 아랫녁에 있는 구멍가게도 손봐야 안심할 수 있다는 들뜬 안달인가? 기우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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