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나 2010년 1월 7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 1997년 대법원 판결,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이미 불법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보도자료를 보면 다 알려진 내용으로 새로운 사실이 없다. 이번 발표는 과거와 달리 통·폐합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강제해직은 곁가지 정도로만 취급했다. 다만 진실규명을 넘어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유난히 강조한 점이 다르다.
신군부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진실화해위는 신군부가 체제에 순응하는 언론구조를 만들려고 언론계의 저항세력을 30%로 규정하고 이들의 해직을 언론사에 강요했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의 자율결의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는 보안사가 비판적인 언론인 명단을 작성해 언론사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언론사는 보안사로부터 지시받은 일정비율에 맞춰 자체적으로 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비리, 무능 등의 이유로 해직시켰다는 것이다. 일부 해직자는 삼청교육대에 입소시키거나 취업을 불허한 상태에서 부조리, 무능력이란 낙인을 찍음으로써 가정파탄, 생계곤란, 불명예 등의 고통을 당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해직선풍에 앞서 보안사는 언론검열에 항의해 제작거부를 결의한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을 지명수배를 통해 체포한 다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온갖 고문을 자행했다. '악질'로 분류된 해직기자에 대해서는 전화도청, 동태파악을 통해 취업활동을 봉쇄하고 직장동료와의 접촉도 차단했다. 가족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피해를 입은 사례도 허다하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출신이 단연 많았다. 유학을 위한 여권발급도 거의 거부했다. 반면에 신군부에 빽을 쓴 사람은 해직시켰지만 곧 복직시켜줬다. 신군부의 실세 허문도를 배출한 <조선일보>는 해직기자가 2∼3명에 불과했다. 언론사에 따라서는 편집방향과 무능경영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명단에 끼워넣어 자르기도 했다.
언론사가 난립하면 취재경쟁은 필연적이어서 효율적인 언론통제가 어렵다는 것이 신군부의 기본적인 판단이었다. 언론사 통·폐합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 중앙일보 계열의 동양방송(TBC)과 동아일보 계열의 동아방송(DBS·라디오)을 KBS에 통·폐합시켰다. 당시 가장 비판적이었던 기독교방송(CBS·라디오)은 보도기능을 중지시켰다. 신문의 경우 <신아일보>를 <경향신문>에, 경제지인 <서울경제>와 <내외경제>는 본지인 <한국일보>와 <코리아 헤럴드>에 각각 합병시켰다. 통신사는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합쳐 정부소유의 연합통신을 만들었다. 지방지는 1도 1사 방침을 세워 14개 신문사를 10개로 줄였다. 진실화해위가 해직기자가 1000여명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통·폐합 과정에서 추가로 200여 명이 더 해직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전두환의 민정당이다. 그 탓인지 이명박 정부는 언론장악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군인의 총칼은 없지만 경찰의 곤봉을 믿는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KBS, YTN 사장을 언론특보 출신으로 잘아치우고 다음 차례로 MBC를 넘나본다. 낙하산 사장투하를 반대한 언론인을 해고하거나 정직, 좌천, 감봉 따위로 결박하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뉴스 진행자, 토론프로그램 진행자의 마이크를 뺏는다. MBC의 <뉴스데스크>와 <100분 토론>이 대표적이다. 쓴소리를 내는 오락프로그램 진행자도 예외가 아니다. 시사프로그램도 수난시대를 산다. 아예 없애거나 제목, 시간대, 성격을 예사로 바꿔버린다. 아니면 검찰이 제작진에 올가미를 씌우고, 아니면 보복인사를 단행한다. MBC의 <PD수첩>, YTN의 <돌발영상>이 바로 그 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법제화를 통해 체계적·조직적인 방송장악을 기도하고 있다. 신문법·방송법 개악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언론법 개정안을 불법으로 날치기 처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유효하다고 억지를 부리며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친여신문 조·중·동한테 종합편성채널을 주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신문시장은 조·중·동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친정권적 여론조성을 주도하고 있다. 방송시장도 신문시장과 유사하게 개편하려는 의도로 조·중·동한테 종합편성채널을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설득한 논리가 부족하다.
진실화해위는 왜 갑자기 '언론사 통폐합'을 꺼냈나
왜 새해 벽두에 진실화해위가 서둘러서 해묵은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을 들고 나왔는지 의문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언론인 강제해직의 진실규명이나 피해구제에 대해 지난 30년 동안 냉소적이었다. 또 과거사위원회 등을 거론만 해도 신경질적인 거부반응을 보여 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언론사 통·폐합은 현실적으로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까닭에 과거 정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기피적이었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나서 진실화해위가 "전두환 신군부, 정권장악 위한 언론 통·폐합"이란 주제와 "64개 언론사 18개로 강제 통·폐합…정기간행물 등록취소, 언론인 강제해직도"란 부제를 단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제목만 봐도 통·폐합의 의미는 확대하고 강제해직의 의미는 축소하고 있다. 그리곤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유독 강조하고 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과 관련해 쉽게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종합편성채널을 조·중·동에 주려는 논리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그 해답은 강제해직은 외면하면서 통·폐합만 부각시키는 조·중·동의 보도행태에서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1면 머리로 다루고 관련기사를 4·5·6면에 깔았다. 사설은 "국가는 언론통폐합의 피해구제조치 취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면 중간 머리기사로 싣고 관련기사를 4·5면 전면에 취급했다. "신군부 '언론학살' 구제조치 있어야"라는 사설을 실었다. 두 사설은 똑같이 강제해직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고 통·폐합의 피해구제만 주장하고 있다. 구제조치는 무엇일까? KBS에서 KBS 2TV와 라디오를 뺏어서 달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종합편성채널을 달라는 소리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해가 없는 조선일보는 사설은 아예 없고 기사도 1면 하단에 3단으로 간단하게 취급했다. 종합편성채널 허가에 있어서 경쟁관계에 있는 중앙·동아일보를 의식한 축소보도이다.
▲ 8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동아일보 |
연초부터 김인규 KBS 사장이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고 이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체적 액수까지 제시하며 맞장구치고 있다. 수신료 인상의 단행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KBS가 700억원 이상의 흑자를 시현했다. 이런 현실에서 수신료 인상이 그리 시급하지 않다. KBS의 수지개선이 아닌 광고폐지 또는 대폭축소를 겨냥한 것이란 판단이 옳다. 종합편성채널 허가를 위한 광고기반을 조성하려는 노림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수신료 인상은 KBS에서 광고를 빼내 종합편성채널로 몰아주려는 계산인 것이다. 신군부는 무력으로 방송계를 개편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제도를 통해 방송계 개편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론자유?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원 1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3.5%가 "주류신문사들의 방송진출로 여론독과점이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신문시장에 이은 조·중·동의 방송진출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소리다.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채널이 늘어나 시청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질 것"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8.8%만이 동조했을 뿐이다. 또 "노무현 정부와 비교할 때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6.4%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 중에서 69.4%는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심대한 언론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학살과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이 시대상황에 따라 접근방법이 다른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언론학자들의 합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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