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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맞은 NHK '홍백가합전', 그 전통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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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맞은 NHK '홍백가합전', 그 전통의 무게

[김성민의 'J미디어'] 홍백전 살리기 대작전의 의미

"처음에 연출을 맡으라고 했을 땐 전통의 무게에 등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1972년 '홍백가합전'을 앞두고 연출자 후지무라(藤村)는 이런 말을 했다. 무려 80%의 시청률을 넘다드는 '국민방송'의 연출을 맡았으니 그 부담감이 엄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연출한 그 해의 시청률은 80.6%였다)

보아나 동방신기 등이 출연하면서 한국에도 잘 알려진 <NHK>의 '홍백가합전'(이하 홍백전)이 올해로 60회를 맞는다. 1951년 <NHK> 라디오로 시작해 1954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기 시작했으니, 일본 텔레비전 방송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매년 12월 31일 밤 그 해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선발되어 홍팀(여성팀), 백팀(남성팀)으로 나뉘어 노래 대결을 펼치는 것. 당연히 누가 뽑히는가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고, 매해 연말이 다가오면 출전 가수들을 점치느라 각종 미디어들은 자사 타사 가릴 것 없이 매우 분주해진다.

그러니 홍백전 출전 자체가 가수들에게는 가장 커다란 상이자 영예로 여겨진다. 한국과 달리 수십 년씩 롱런하는 가수가 적지 않은 일본에서 '홍백전에 몇 번 출연했는가'는 그 가수의 관록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장 화려한 축제이면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셈이다.

▲ NHK 전통의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이 올해로 60회를 맞는다. 사진은 작년 59회 홍백전의 시작을 알리는 화면 캡쳐

사실 홍백전의 전성기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하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홍백전에 나오는 가수들의 품평회를 여는 것이 한 해 마지막 밤의 가장 중요한 할 일이었던 시절, 다른 민방들이 같은 시간대 경쟁 자체를 포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미디어의 환경도, 가족간의 관계도, 연말의 풍경도 모두 변했다. 시청률은 눈에 띄게 하락했고, '국민적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위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성역'에 대한 잠재된 거부감도 하나둘씩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위기설과 폐지설이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90년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를 강타한 '잃어버린 10년'이 홍백전에게는 '잃어버린 10%'의 세월이었다. 39.3%(2004년), 42.9%(2005년), 39.8%(2006년), 39.5%(2007년)…2000년대 중반부터는 40%를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민방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작년에는 홍백전을 앞두고 민방의 프로그램들은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홍백전 출연자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화제를 만들어냈다. 민방에서 인기를 얻은 연예인들이 대거 홍백전에 출연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청률 40% 사수'는 민방에 있어서도 관심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공통의 과제처럼 보였다. 그리고 '홍백전이 민방화되어버렸다'는 일부 비판 속에서 2008년 시청률은 다시 간신히 40%를 넘겼다.(42.1%) 이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DJ OZUMA가 지난 2006년 홍백전에서 DJ DOC의 '런 투 유'를 번안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날 홍백전에서 DJ OZUMA의 여성 백댄서들은 나체를 프린팅한 복장을 입고 나와 비난을 받았다. 도 "최종 리허설 때는 그런 의상이 아니었다. 홍백전과 어울리지 않는 퍼포먼스였다"고 사과했다. ⓒ뉴시스

사실 프로그램으로서의 홍백전은 그 자체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쇼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홍백전이라는 하나의 '전통'이 만들어져 온 과정은 분명 흥미롭다.

홍백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공정한 심사도 화려한 무대도 가수들도 아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그들이고, 적절한 규칙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들이며,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도 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홍백전에서 예고 없이 나체를 프린트한 복장을 입고 나온 가수 'DJ OZUMA'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최근 한국에서 시트콤에 나오는 여자 아이가 버릇없게 구는 것이 불편하다고 몇몇 사람들이 떼를 쓰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홍백전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DJ OZUMA'의 행동은 웃고 넘길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홍백전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비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빵꾸똥꾸'가 위협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공동체를 상상해 가는 과정이라면, 홍백전은 이미 일본의 '전통'이다. 그 전통이 위기를 겪는 것이 일본 사회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해마다 홍백전이 방송되는 12월 31일이라는 특별한 날의 그 '비일상적인' 시간은, 그래서 어쩌면 '일상적인' 일본 사회의 모습의 가장 압축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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