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하고 절대적이며 수치로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이미지는 수학이나 물리학(그것도 이론물리학)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과학기술은 '불명확하고 상대적인 성질'이 더 크다. 또한 수치를 정확히 제시할 수 있기보다 '오차의 범위를 줄이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광명성 3-2호나 3차 핵시험과 관련하여 사거리, 추력, 고도, 궤도, 공전주기, 폭발력, 지진 진도, 플루토늄, 우라늄, 핵분열, 핵융합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들보다 오히려 '불명확한 면, 알 수 없는 영역'이 더 커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학기술의 이면, 즉 객관적이고 명확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과학기술 뒤에 숨겨진, 불명확하고 애매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3차 북핵시험이 가져올 새로운 국면에 대해 차분하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핵실험(experiment)이냐, 핵시험(test)이냐
보통 사람들은 '실험'과 '시험'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쓰지만 실제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두 용어는 잘 구분해서 써야 한다. '실험'이라는 것은 구상 중에 있는 이론이나 가설을 통제된 상황 속에서 실제로 구현해보는 것이고 '시험'이란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의 대상이 되는 이론이나 가설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시험'의 대상이 되는 이론이나 능력은 이미 완전함을 검증받은 것이다. 시험의 대상은 완전히 검증된 이론이나 능력을 익힌 정도, 즉 습득 정도나 숙련도, 운영능력의 문제에 국한한다. 실험과 시험의 영어 번역을 떠올려보면 그 의미의 차이는 명확하다. 실험은 experiment라고 하고 시험은 test라고 한다. 수능 시험이라고 학력평가 시험이라고 하지 수능 실험, 학력평가 실험이라고 하지 않는다.
▲ 지난 12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핵실험 보도. 북한은 '제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
따라서 '핵실험'이라고 한다면 핵과 관련한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것이므로 그 실험에서 검증대상으로 삼는 이론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 된다. 핵실험의 수행 결과는 핵능력의 최정점에 해당한다. 첨단 이론이고 최고 수준이므로 아직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반면 '핵시험'이라고 한다면 이미 완성된 이론을 기반으로 그것의 운용능력, 성능 등을 점검하는 것이므로 그 실험에서 활용되는 이론은 완성된 것이다. 핵시험의 수행결과는 핵능력의 최정점일 필요는 없게 된다. 만일 최고 1단계부터 최저 10단계까지 있다면 그 중 9단계를 '시험'할 수도 있고 '1단계'를 시험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시험'한 대상이 꼭 최정점에 해당하는 '1단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북한의 핵시험에 대해 북한은 '시험'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남한 언론에서는 '실험'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인공위성,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는 남북 모두 '시험'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유독 핵시험에 대해 남한 언론은 '핵실험'이라는 말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외국 언론에서는 'test'라고 쓰고 있다.
이는 은연중에 북한의 핵능력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핵실험'이라고 부르게 되면 이번 실험 결과가 북한이 가진 핵능력의 최정점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아직 이것보다 더 위력적인 핵무기를 확보하지 못하였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고 '핵시험'이라고 부르게 되면 이번 시험 결과는 북한이 가진 핵능력의 일부일 뿐이고 실제 북한의 핵무기는 이것보다 더한 위력을 가졌을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한 언론에서 대부분 '핵실험'이라는 말을 쓰는 '이면'에는 북한의 핵능력을 최대한 낮춰 평가하고 싶은 목적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3차 핵시험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북한의 핵능력
핵무기를 만드는 재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플루토늄(Pu)과 우라늄(U)이 그것이다. 이들 물질을 인위적으로 핵붕괴시켜 막대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얻어내는 것이 바로 핵무기의 기본 원리이다. 이와 관련한 과학기술 이론의 첫머리에는 국민 물리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E=mc2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질량과 에너지가 변환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변환식을 위와 같이 구해냈던 것이다. 이 식에 의하면 아주 작은 질량이라 하더라도 사라지게 되면 굉장히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 즉 물질변환(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량결손때문에 에너지가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질량결손 현상은 핵분열 과정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소가 서로 합쳐져서 헬륨이 될 때(핵융합)에도 생기는데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수소폭탄이다.
그렇다면 이번 3차 핵시험에서 사용된 방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플루토늄탄이었을까, 우라늄탄이었을까, 아니면 수소폭탄을 가미한 증폭분열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순수한 수소폭탄이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중 어떤 것이었느냐보다 이들 모두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중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2차 핵시험이 수행되었던 2009년 5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라늄탄은 미국의 주장 속에서만 존재했고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는 플루토늄탄만 가능했다. 플루토늄은 1980년대 핵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8000여 개의 폐연료봉을 2003년에 재처리하면서 확보됐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2009년에도 새롭게 얻은 8000여 개의 폐연료봉을 한 번 더 처리하여 플루토늄의 양은 더 늘어났다.
하지만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한 원심분리기의 존재가 2010년 11월에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므로 무기화시킬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는 2010년 이후에야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에서 처음으로 핵융합 실험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은 2010년 5월에 공개되었다. 따라서 2010년 이전에 시행한 1차, 2차 핵시험은 모두 플루토늄을 원료로 제작된 핵무기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뒤집으면 이번 3차 핵시험은 우라늄을 활용한 것일 수도, 핵융합 현상을 활용한 증폭분열탄 혹은 수소폭탄일 수도 있게 된다.
세 차례의 핵시험은 3년이라는 일정한 주기로 수행되었는데 그때마다 핵 폭발력은 몇 배씩 늘어났다. 말 그대로 핵폭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폭발력 증가가 1차, 2차 핵시험까지는 플루토늄탄의 양적 증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3차 핵시험부터는 우라늄탄, 증폭분열탄, 수소폭탄 등으로 '질적 증대' 수준까지 넘어갔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북한의 핵능력 레퍼토리가 급격히 다양해진 것이다. 즉 1차, 2차 핵시험에서는 더 큰 폭발력을 의미하는 '숫자'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3차 핵시험은 그러한 숫자를 확정할 수 없게 만드는 '불확실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3차 핵시험은 '불확실성'을 얻기 위한 시험
북한이 3차 핵시험을 통해 얻은 '불확실성'은 핵능력을 양적, 질적으로 키워 특정할 수 없게 만든 것뿐만 아니라 남은 핵물질이 얼마인지 모르게 한 것도 있었다. 즉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핵무기 원료, 즉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양을 알 수 없게 만든 것이 이번 3차 핵시험의 핵심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과거, 그리고 그 결과를 어떻게 확인, 확정하느냐와 관련되어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약 20여 년을 끌어온 북핵문제는 1980년대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둘러싼 논쟁과 그러한 핵활동을 통해 얻게 된 핵물질의 양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그 진위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핵활동은 그 결과물로 방사능물질이 남기 때문에 부산물을 검사하면 언제 얼마나 많은 핵반응이 이루어졌는지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추정도 핵물질이 남아있을 때 가능하다. 즉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거나 1번 정도 진행했을 때는 그래도 '오차'가 크게 발생하지 않아 검증이 가능하다. 하지만 2차, 3차까지, 그것도 규모나 종류를 확인할 수 없는 핵시험이 진행된 지금은 이러한 검증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즉 3차 핵시험은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레퍼토리를 대폭 늘려놓은 것이기도 하고 남은 핵물질의 양을 절대 추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핵의 '불확실성'을 확보한 것이다.
8000여 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대략 35~40kg의 플루토늄이 얻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두 번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북한은 대략 70~80kg의 플루토늄을 얻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1개의 플루토늄탄을 만들기 위해 2~10kg가량의 플루토늄이 사용된다고 한다. 따라서 2번 혹은 3번의 핵시험을 통해 4~30kg의 플루토늄이 사용된 것이라 추정된다. 따라서 남은 양은 최소 40~76kg이 된다. 만일 나중에 북핵 협상이 잘 진행되어 검증단계에 도달하였을 때, 북한이 남은 플루토늄양이 50kg뿐이라 하더라도 반박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북한은 대략 30kg가량의 플루토늄을 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 확보한 '불확실성' 속에 숨은 진실이다.
이제는 새로운 협상국면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
핵무기는 가공할 폭발력때문에 이제는 '쓸 수 없는 무기', 혹은 '자국 영토에서만 쓸 수 있는 무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핵무기는 쓰기 위해 만들기보다 새로운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번에 진행된 3차 핵시험은 북한의 핵능력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갔음을 알리는 사건이었고 과거를 절대 검증 못하게 만든 이벤트였다. 따라서 앞으로 북핵 협상은 검증단계를 지나, 확산을 막는 단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은 진통이 있지만 조만간 북한과 미국은 협상장에서 만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강호제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 과학기술사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홈페이지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