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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의 몸으로 쓰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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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의 몸으로 쓰는 詩

[김상수 칼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

지난 11월 14일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prima ballerina)인 강수진(Kang Sue Jin)을 사흘간 연달아 만났다.

첫 날은 강수진 그녀의 초대로 같은 발레단 출신의 전 발레리노(Ballerino)이자 그녀의 남편인 둔츠 소크맨(Tunc Sökmen)의 안내로 발레 '오네긴'(Eugen Onegin) 공연을 보았다.

슈투트가르트 시내 중심가인 슐로스가르텐Schlossgarten)에 위치한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uettemberg)극장에서 공연된 '오네긴'은 러시아 문인 푸슈킨(Puschkins)의 시극(詩劇)을 텍스트로 하고 차이코프스키(Tschaikowskys) 기악곡들을 편곡해서 새로운 고전발레가 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다.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아나(Tatjana)역으로 출연한 강수진의 공연은 독일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관중들의 커튼콜은 그치지 않았다.

▲ 프리마 발레리나(prima ballerina) 강수진(Kang Sue Jin). ⓒ김상수
ⓒ김상수

강수진,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녀의 발레 공연을 나는 처음 봤다.

세계 최고 수준인 무용수들이 모여 있는 발레단의 공연에서도 그녀의 움직임은 단연 눈에 띄었다.

그녀가 관중을 열중시키는 힘은 놀라웠다.

공간과 시간은 그녀의 몸 동작에서 한 치 어긋남도 없이 한 획(畫) 한 획으로 피어났다.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가 어떤 모습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커튼콜이 끝나고 그녀의 남편과 함께 무대 뒤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화장을 막 지우면서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은 객석에서 봤던 무대 위의 모습과는 다르게 소박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슈투트가르트가 초행길인 나를 위해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친절하게 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

둘째 날 오후, 연습을 끝내고 극장 앞에서 만난 그녀는 전날 공연의 긴장과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밝고 따뜻한 얼굴로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누었다. 춤과 삶과 '한국의 예술, 문화, 사회의 현재'가 대화로 오갔다. 그냥 막연히 '세계적인 발레리나'로만 알고 있던 그녀로부터 '몸'과 '삶'에 대한 깊은 자기철학과 통찰(洞察)이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Stuttgart Ballet) 강수진 연습장면ⓒ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 ⓒ김상수
▲ ⓒ김상수
ⓒ김상수
▲ ⓒ김상수
▲ ⓒ김상수

춤이 구도(求道)의 예술이라 무대에서 춤을 추기까지의 과정이란 마치 불교의 교의(敎義)인 승(乘)에서 중생(中生)을 태워 생사의 고해(苦海)를 건너는 치열함이 기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입'과 '머리'만으로 행세하는 사람들과는 완연하게 다른 삶이었다. 육체의 단련을 통한 움직임의 세련이란 육체의 고통과 계속해서 마주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제대로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준열(峻烈)한 자기 헌신(獻身)이 거듭되고 거듭되어야만 비로소 무대 위에서 표현이 가능한 것이고, 공기를 사르는 가벼운 몸을 무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기화(氣化) 시킬 수 있는 수행(修行)이 동반되어야 했다.

나는 무대 위의 그녀가 춤추는 모습에서 기(氣)를 다스리는 발레리나가 어떤 모습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에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그 역할과 상관하는 자신과 출연자들,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까지 공간과 시간에 새 실로 수(繡)를 떠서 보여주는 것 같은 기(氣)의 흐름인 기운(氣運)을 펼치는 것이다.

공중으로의 도약과 착지에서 보이는 강수진의 새털 같은 가벼움에서 보듯이, 이처럼 완전하게 기의 흐름을 내면화하고 또 외면화하는 고도의 자기 수련을 통해서만 이것은 가능하다.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Stuttgart Ballet) 강수진 연습장면ⓒ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김상수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발레리나의 특이성은 바로 호흡(呼吸)이었다.

자기 몸의 중심에서 비우고, 받아들이고, 내쉬는, 호흡 말이다. 한국의 전통 무용에서 호흡은 바로 춤의 실체다.

처음 무용을 할 때 발레가 아닌 한국 전통무용에서 시작한 그녀는, 발레의 완고한 수직(垂直)의 코드(code)와 격식으로 채워진 형식미 속에 자신을 철저하게 '비움으로써 채우는 방식'인 호흡으로 표현을 시작하고 정리한다. 그러니 발레의 형식미에 보태어 그녀 특유의 기운이 발레를 더 풍요하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녀가 공중으로 팔을 뻗으면 촉수(觸手)의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 숨을 쉬는 것 같은 몸의 느낌이 전달되어 온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그녀의 몸이 움직여 형성하는 기운이 신체의 유기적인 연결성으로 그녀만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공간 형성이 바로 기운 생동(生動)으로 차기 때문이다.

셋째 날, 강수진의 배려로 극장 측의 허락을 받아 리허설 장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 발레복이 아닌 연습복 차림의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았고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으로 한 쪽 벽에 서서 동료들의 움직임을 차분하게 응시했다. 그러다가는 느리게 천천히, 그러나 때때로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간결(簡潔)했다. 몸으로 쓰는 그녀의 시는 아름다웠다.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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