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도와주려고 애를 써도, 노동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다핀(가명)은 두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1. 잘 데가 없다.
2. 한 달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우선 잘 데를 마련해주고서, 체불임금을 받아주기 위하여 노동부에 진정서를 보냈다.
며칠 후 수원노동부에서 출석요구서가 왔다. 출석일은 닷새 후, 오후 2시.
나는 며칠 전부터 다핀에게 출석일시를 알려주고
"꼭 나와야 해요. 안 나오면 돈 못 받아."
하고 다짐을 받았다.
그는 꼭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출석 당일 그는 노동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달아 전화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지금 일이 바빠서 못 가요."
기가 막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더 가관이다.
"노동부, 주말에 가면 안 돼요?"
"안 돼. 공무원들은 주말에 다 쉬잖아."
"그럼 안 가면 돈 못 받아요?"
"못 받지. 돈 못 받아도 괜찮아?"
"예, *괜찮아요."
돈 못 받아도 괜찮다니? 무엇이 이 방글라데시인으로 하여금 이토록 큰소리 탕탕 치게 만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굳이 발안센터가 아니어도 누굴 통해서라도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게 외국인 센터니까.
더구나 그는 믿는 구석이 두 가지 있다. 첫째가 <한국 여성들이 깜빡 죽는> 서양식 얼굴, 둘째는 <한국인들이 깜빡 죽는> 영어! 그는 지금 현재 이 두 가지를 내세워 바야흐로 얼굴값, 영어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다핀은 그 잘난 얼굴과 영어로 외국인을 잘 도와주는 00교회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었고, 여자 집사님들이 경쟁적으로 이뻐하여, 오냐오냐 해줌으로써 제 멋대로 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제 멋대로 굴든 말든 그건 제 몫이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그만 아닌가.
1. 일단 근로감독관에게 *미출석으로 사건을 종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2. 다핀과의 인연을 끊었다.
*미출석으로 사건을 종결 : 진정사건을 끝내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1. 진정 취하 2. 미출석 종결.
내가 만일 그날 진정을 취하하는 형식을 취했더라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다핀은 그 사건으로 다시 진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출석으로 종결했으므로 다시 진정할 수 있다. 나는 다핀이 다른 센터를 통해서라도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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