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그녀가 돌아왔다. 각성제 소지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당한 용의자 신분으로였다.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노리삐'(のり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잃어본 적 없던 그 청초하고 단아한 이미지에 약물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 일본 최고의 여배우 사카이 노리코는 약물 소지 혐의로 기소당했다. ⓒ신화통신=뉴시스 |
30.4%. 그녀가 출두하던 장면을 독점으로 내보낸 <TBS-TV> 저녁 방송의 시청률이었다. 이 전대미문의 수치는 모든 미디어에게 '총력전'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도 같았다. 3개월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리삐 극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 등 모든 미디어가 앞 다퉈 그녀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녀의 실종이 계획적인 도피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처음의 불안과 걱정은 순식간에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최후의 안전핀이 뽑힌 순간이었다.
매일 텔레비전을 틀면 그녀가 나왔다. 약물에 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들이 자극적으로 편집되어 하루 종일 전파를 탔다. 폭력단 두목 출신 아버지와 새어머니, 양아버지와 다름없다는 기획사 사장, 그리고 열 살의 아들까지. 그녀의 가족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그녀를 키운 모든 조건은 마치 약물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미디어는 그 모든 것이 약물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소를 해야 한다며 검찰을 압박했다. 방송 패널리스트들은 연예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무책임함에 비난을 쏟아냈다. 8월 28일, 데뷔 때부터 함께 해 온 기획사가 그녀에 대한 해고를 발표했다.
사실은 같은 시기인 8월 3일에 오시오 마나부(押尾學)라는 남자 배우가 역시 합성마약인 MDMA 투약 혐의로 체포되어 있었다. 함께 약물을 투약하던 애인이 쇼크증세에 빠지자 밖으로 도망쳐 나온 인물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미디어의 관심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 아이돌에 대한 환상을 깨뜨려버린 죄가 애인을 죽게 내버려둔 죄보다 더 큰 듯 했다.
▲ 노리코가 재판 받는 장면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fnn 뉴스'의 한 장면 ⓒ<후지뉴스네트워크> |
9월 17일, 보석으로 나온 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이번에는 그녀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따금씩 미소를 보인 것, 짜여진 각본대로 행동하여 진실성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평생 아이돌을 연기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아이돌스러움'의 죄가 추가되었다.
10월 26일, 첫 공판일. '노리삐 극장'의 절정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이 날 도쿄 히비야(日比谷)공원에는 아침부터 4~5백 명의 긴 행렬이 늘어섰다. 20석의 방청석 추첨권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히비야 공원에서 공판 방청권을 추첨하는 건 5년 전 그 유명한 지하철 사린 독가스 사건의 주인공인 옴진리교 교주의 공판 이후 처음이다.
추첨 시간이 가까워오자 갑자기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개 방청석에 총 6615명. 330.75대 1의 배율은 옴진리교 공판을 넘어선 기록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상당수가 아르바이트였다는 것. 사명감 넘치는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현장을 보여주겠다'며 풀어놓은 사람들이었다.
<후지TV>, <TV아사히>, <TBS-TV>, <니혼TV> 등 대표적 지상파 민방은 모두 특별방송을 편성하거나 기존의 방송을 확대 편성하는 방식으로 사카이 노리코의 첫 공판을 생중계했다. 우산을 쓴 채 길게 늘어선 행렬이 계속해서 화면에 잡혔다. 처음부터 이들 방송사들에게 필요했던 건 방청권 한두 개가 아니라 이 '그림'이었는지 모른다.
▲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노리코는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니칸스포츠> |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한 '노리삐 극장'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흥행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여름이 비수기라는 주간지와 스포츠 신문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 중에는 평소보다 40% 이상의 판매량 증가를 기록한 곳도 있었다. '노리삐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책만 세 권이 출판되어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얼마 전 한 저널리즘 세미나에서 모 방송국의 PD는 거의 모든 뉴스가 노리삐 사건을 첫 소식으로 다루는 일본의 저널리즘이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저널리스트 '개인'은 그런지 모르나 '조직'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오늘도 미디어는 '노리삐 극장' 시즌2를 올리기 위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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