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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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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비

[한윤수의 '오랑캐꽃']<149>

쿵쿵거리며 층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외국인 몇이 들어선다. 맨 앞에 선 필리핀 여성 룻(가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도와줘요. 문제 있어요."
뒤따라 들어온 건장한 한국인 남성이 말했다.
"필리핀 얘들이 택시비를 안 주네요."
그는 택시 기사였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룻과 남자 친구는 구직 중이라, 수원고용지원센터 2층에서 알선장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택시 기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혹시 공장 찾아? 좋은 공장이 있는데 갈래? 사장님이 데려오라고 했거든."
필리핀 남녀가 망설이자 택시 기사는
"갈 거면 빨리 결정해!"
하고는 우즈벡 남성에게로 갔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몰라도 5 분쯤 후 우즈벡은 택시 기사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선 한참 있다가 우즈벡이 2층으로 다시 올라와서 말했다.
"나 그 공장 가는데 너도 빨리 가!"
필리핀 남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짱으로 따라 나섰다.

차는 화성시 서신면 사강까지 달려갔다. 고용지원센터에서 33 키로나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보기에 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고용지원센터로 돌아왔다, 하지만 왕복택시비 6만 5천원이 문제였다.
필리핀 사람들은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버텼다.
"회사에서 제공한 차인 줄 알았거든요."
룻은 그 증거로 우즈벡과 나눈 대화를 들었다.
"우즈벡, 내가 이 차, 회사 차냐고 물었어, 안 물었어?"
우즈벡은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아니, 택시 타고 택시비를 안 내다니!"
답답해진 기사가 택시비를 5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나왔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화가 난 기사가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나쁜 놈들 아녀."
그러자 우즈벡이 얼른 5만원을 냈다.
기사가 말했다.
"우즈벡만 내면 어떡해? 필리핀도 반 정도 내야지. 필리핀. 너희들 우즈벡에게 2만 5천원 주라!"
필리핀은 거부했다.
택시 기사와 필리핀은 옥신각신하다가, 발안센터로 가서 판정을 받자며 발안까지 달려온 것이다.

내가 보기에 택시 기사는 결정적 잘못을 저질렀다. *사장님의 부탁을 받고 *법에 어긋난 짓을 했으니까. 아마 노동자들이 그 공장에 취직했더라면 사장님에게 커미션도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택시비를 80프로 이상 건졌으니 다행으로 알아야 할 터였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필리핀이 돈을 낼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기사는 처음에는 황당해 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불법이란 말에 수그러들었고 결국 *우즈벡과 함께 나갔다.

택시 기사를 보내고 나서 필리핀 남녀를 야단쳤다. 왜냐하면 그들도 잘못했고 얌체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알선장에 나오지 않은 회사에 가면 위법인데 그들은 뻔히 알면서 그런 회사에 갔다. 그리고 아마 그 공장이 마음에 들었으면 그대로 눌러 앉았을 것이다. 그러면 사장님은 *사후에 절차에 맞게 고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밀 것이고.

억울한 건 우즈벡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구해줄 방법이 없었다. 성미 급한 놈 술값 먼저 낸다고, 택시비를 이미 내버렸으니까. 낸 걸 다시 물려달라고 해? 그건 어렵다,
성미 급하면 손해다.

*사장님의 부탁 : 정부에서 금년 노동인력의 수요를 잘못 예측해서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불황이라 한국인이 3D업종에 취업할 줄 알고 외국인 노동자를 턱없이 적게 들여온 탓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런 업종에 가지 않았다. 따라서 3D 업종의 사장님들은 일손을 구하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한다.

*법에 어긋난 짓 : 택시 기사가 한 것처럼 알선장 없이 알선하는 행위는 무조건 위법이다. 물론 호객행위도 위법이다.

*우즈벡과 함께 : 왜 우즈벡이 택시 기사와 함께 나갔을까? 둘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만일 아무 관련도 없다면 우즈벡은 정말 억울하지만.

*사후에 절차에 맞게 고용 : 먼저 고용해놓고 나중에 절차를 밟는 편법을 말함. 가장 많이 쓰는 편법은 고용지원센터의 상설면접장에서 처음 만나서 고용하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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