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강행으로 처리되었던 신문법과 방송법의 권한쟁의 심판에서 이들 법의 처리 절차가 위법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이들 법에 대한 무효청구는 기각해 이들 법의 실효성을 인정했다. 이는 절차상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는 유효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과정은 위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는 판정인 셈이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절충식 판정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요체이자 근간은 절차의 합법성이다. 아무리 다수의 행위라 하더라도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행위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헌재는 미디어법 처리행위에서 절차의 위법성을 인정했음에도 그 결과를 무효화하지 않고 유효화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반하는 판정을 한 것이다.
사회정의를 '냉소'의 대상으로 만든 헌법재판소 결정
이 판정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신과 사법정의를 해치면서 집권여당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족하다. 그러니 이 판정에 대해 정치적 판정이라는 비난을 비롯하여 많은 비판적인 의견들이 들끓고 있다.
예컨대, "최고헌법 수호기관으로 오로지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할 헌재가 미디어법 처리 문제는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고, 그 효력에 대해서는 여당의 정치적 입장을 인정하는 교묘한 정치적 결론을 내놓음으로써 헌재의 권능과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결정을 했다"(경실련). 심지어는 헌재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비판도 나왔다. "헌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목을 비틀었다. 이런 헌재는 폐지해야 한다"(장세환 민주당 의원). "헌법을 수호하라고 만들어놓은 기관이 계속 헌법 파괴를 방조하니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구나"(어느 네티즌).
헌재의 판정의 모순된 논리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도 많다.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 "절도는 범죄지만 절도한 물건의 소유권은 절도범에게 있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강간 당해서 임신 했어도 어쩔수 없으니...출산해서 키워라", "수험생들 수능공부 왜합니까? 대충 명문대생 불러다가 대리시험치세요. 위법이지만 성적은 유효하니까요", "한일합병도 합법적인 것이다", "범죄에 대해 불법을 인정하나 처벌할 수 없다". 등등.
이러한 냉소적 반응들은 매우 불길한 것이다. 사회정의니 준법정신이니 하는 것들은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 판정은 우리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은 불법을 저질러도 그 행위가 처벌받기는커녕 합법화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다. 사람들은 이 판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 약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하지만 강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인식을 갖게 한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정부가 국민들에 준법을 요구하고 사회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번 판정은 여야간의 그리고 여야의 지지세력간의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조장할 우리가 크다. 이번 헌재의 판정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조화를 위해서도 치명적일 수 있다.
정치적 판정으로 태어난 방송이 '사회 정의' 구현할 수 있을까
이번 판정의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사법적 정의를 무시하고 정치적 판정의 결과로 대기업과 신문사가 방송에 진출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방송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중립성과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위법으로 처리된 법의 의해서 그리고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실효성을 인정한 판정으로 가능해진 방송에서 법치주의의 옹호를 비롯해서 사회정의나 저널리즘적 가치의 준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탄생과정에서부터 위법한 절차와 정치적 판정으로 탄생한 방송 그나마 막강한 힘을 가진 기존의 신문과 자본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방송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그리고 사회정의에 과연 올바로 기여할 수 있을까.
공정택 당선 무효와 미디어법 유효 판결 사이…사법정의는 어디로?
헌재의 미디어법 판정이 있던 날 대법원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상고심에서 선거과정에서의 위법성을 들어 교육감 당선을 무효화했다. 이는 절차상의 위법성을 들어 그 결과를 무효화한 것이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절차상의 위법성을 들어 그 결과를 무효화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절차상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는 유효화하는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사법기관에서 사법정의와 헌법정신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서나마 사법적 정의를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상반된 판결을 보고 어떤 혼란을 겪을까. 선생님들은 무엇이라고 가르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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