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29일 "(북한의) '선(先) 핵폐기'만을 강요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강경책은 핵 개발을 저지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굴복시키지도 못한 채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까지 초래했다"며 "이 네오콘의 접근 방식이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3000'의 원조"라고 말했다.
임동원 전 장관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뉴스> 창간 9주년 초청강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명박 정부는 '선 핵폐기'를 한반도 관련 모든 사안의 전제로 삼음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위축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임 전 장관은 이어 "지난 20년의 경험은 다른 문제들의 진전 없이 '선 핵폐기'부터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북핵 문제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미북 적대관계와 정전체제, 남북 군비경쟁 등 여러 요소들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이러한 문제 해결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북핵 문제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태도와 관련해 임 전 장관은 "북핵 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로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해 미북관계가 정상화되고 평화가 보장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해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북한이며 다른 나라들은 도울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임 전 장관은 최근 핵무기 개발 단계를 1단계 핵시설 가동, 2단계 핵물질의 생산과 보유, 3단계 핵폭탄의 제조와 실험, 4단계 핵폭탄의 소형화·경량화를 통한 핵무기화, 5단계 핵무기를 생산·배치하는 핵무장화로 구분한 바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도 이를 소개하면서 현 단계(3단계)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면 4단계에 이어 5단계까지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계정상화는 선물이나 보상이 아니다"
임 전 장관은 이어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중-클린턴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하는 결단이 요구된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5가지 제안을 내놨다.
오바마에 대한 첫 번째 제의는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제체를 실현하는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면서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할 수 있으며, 동북아에서의 국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계정상화는 선물이나 보상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평화·안보 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제의는 "북핵 문제는 압박과 제재가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을 '비핵화를 통한 관계 개선'에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로 과감하게 바꾸어 나가야 할 때가 됐다"며 "부시 정부가 추진한 '비핵화를 통한 점진적 관계 개선'이라는 완만한 단계별 접근방식을 지속하기에는 상황이 악화됐고 사태가 급박해졌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그의 네 번째 제안은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위로부터의 해결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섯 번째로는 미북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하되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해 동북아 평화·안보 협력 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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