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과 16일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남북 접촉과 적십자 실무회담이 연이어 있었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우리가 제안하고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동안 정부의 남북 대화에 대한 의사 표시는 있었지만, 실제로 만남이 제안되고 성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14일 오전 개성에서 열리는 임진강 수해방지 문제를 협의할 남북 실무회담에 참석하는 김남식 통일부 교류협력 국장(가운데)과 관계자들이 남북회담본부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
지난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 대해 '앞으로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것'이라는 언급을 상기시키면,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어왔던 두 사안에 대한 북한의 유감과 재발방지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어렵게 시작한 회담에서 지나온 과거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유감과 재발방지가 확인되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여기까지의 사태 전개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북한의 '전술적 변화'와 '진정성'을 운운하며 기다려야 할까?
임진강 수방 회담과 적십자 실무회담이 가르쳐준 것들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화만이 사태 해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임진강 참사나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한 적대적 감정의 공격과 비판, 제재 일변도의 대응책은 결코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나온 남북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든 그리고 어떤 일이든 마주 앉았을 때만이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의 접촉과 회담은 다시금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 정부가 북한의 최근 변화에 대해 '전술적 변화'와 '진정성'을 운운하는 것 역시 대화를 통해서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상대방의 속마음까지야 알 수 없겠지만, 상대의 의도와 진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달리 있을 수가 없다.
이번의 접촉이 현 정부 들어 경색된 남북관계를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의 재개와 임진강 참사로 인해 찬물이 끼얹어진 남북 대화의 기류를 되돌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새로운 만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적십자 회담에서 북한이 공식 요청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여전히 북핵 문제를 연계해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개념과 내용, 그리고 '진정성'의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할 것인지의 기준도 없으면서 상대방의 진정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정책과 주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북핵-남북관계' 연계 방침 혹은 병행론에 대한 비판은 이제 접어두자. 그러나 이번의 접촉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 교훈만은 분명히 해두자. 대화만이 해법이라는 것 말이다.
▲ 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8월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
김영삼 정부 대북 지원의 교훈 잊지 말아야
여기에는 또 하나의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이미 북한과 미국, 북한과 중국,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까지 대화와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일본마저도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의 일본에 대한 쌀 지원 요청과 일본 정부의 호응에 대응해 일본보다는 '우리가 먼저'를 주장하며 대북 쌀 지원을 실행했던 결과를 떠 올려보자. '좋은 의도'라기 보다는 경쟁심으로, 그리고 국내 정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한 쌀 지원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던 역사를 되새겨보자.
대화가 유일한 해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대화마저도 준비되고 그야말로 진정성있는 자세로 접근하지 않으면 아니함 만 못하다는 것 또한 역사가 보여준 교훈인 것이다. 떠밀린 대화로의 길은 가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정세를 둘러보면 이미 제재의 국면은 가고 대화의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번 달 말에는 북한의 리근 미국국장의 방미도 예정되어 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우리 역시 어렵사리 남북이 자리를 함께 했고, 그동안 남북관계의 경색을 가져왔던 문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걸림돌을 제거했다. 중국 베이징에서의 남북 비공식 접촉설도 제기되고 있고, 북한의 적극적인 남북대화의 요구가 여기저기서 전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새 판을 짜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역시 대화를 통한 문제의 해결과 해법의 모색뿐이다. 떠밀린 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명확해 질 것이다. 결국 잘 준비된, '진정성'있는 대화만이 해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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