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제재여 영원하라'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점점 커지는 종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머리를 흔들고 있다. 미국, 중국 등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감수하겠다는 태세다. 그 '결기'가 성공할지 한 순간의 치기로 끝날지를 가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위해 5일 저녁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찬을 마련, 서로 손을 잡고 즐거워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의 브레이크 '걸리긴 걸렸지만…'
사실 국면 전환의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2개월이 넘었다. 지난 8월 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부터다. 이번 김정일-원자바오 합의는 그 흐름이 대세임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북한과 중국이 경제·무역 관계를 촉진하기로 약속한 것은 한 마디로 대북 제재가 끝났음을 의미한다"라며 "그건 중국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7월 말부터 시작된 북-미-중 3각대화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대화는 7월 말 열린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이뤄졌다. 그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을 대북 제재에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이어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9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중 대화가 이뤄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는 행동에 돌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미국에서 '그랜드 바겐'을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원하는 걸 다 해주겠다는 그랜드 바겐은 현실성 없는 선(先)핵포기론에 불과했다. 따라서 비핵화를 위한 제안이 아니라 미국으로 하여금 제제국면을 이어가게 하기 위한 '발목잡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 미국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도 이 대통령이 거는 강력한 제동에 움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계획이 정리되고 있지 않은 것은 그 증거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일반적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입장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일 뿐, 보즈워스 대표가 11월 중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 전에 북한을 방문한다는 계획표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 중국이 설명할 것"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5일 "북미 회담 결과를 보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겠다"고 나왔다. 보즈워스 대표의 평양행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북 제재의 동력이 사실상 소멸되자 다급해진 이명박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마찰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과 중국이 약속한 각종 경제협력 사업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1874호에 대한 위반이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관 '제66회 편협대화'에서 '북중 경제협력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점에 대해 중국 측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며 "구체적인 경제협력 약속의 내용이나 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중국의 설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어느 국가든 북한 핵문제에 영향을 주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저촉되는지 검토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대해 코멘트한 내용도 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제재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 1874호는 무기 거래만 철저히 제한할 뿐 정상적인 무역과 인도적 지원, 개발 지원은 허용한다. 원 총리의 방북으로 맺어진 각종 협정은 여기에 해당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의 위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국면 전환에 대한 거부의 뜻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조선반도 비핵화' 새삼스럽게 언급한 까닭은?
김정일 위원장이 원 총리에게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한데 대한 고위당국자의 논평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북한 비핵화와 똑같지 않다"라며 "남한도 비핵화가 되고 남한에도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더 넓은 개념"이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그를 군사전략적으로 구체화한 '확장 억지력'까지 없애야 한다는 '비핵지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한 사람들이 입만 열면 하는 소리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는 6자회담의 목표는 비핵지대화가 아니라 비핵화라고 명시됐다. 북한의 주장을 배제한 것이다.
그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이 당국자가 김 위원장의 발언을 새삼스럽게 거론한 것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요구 사항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협상 국면으로의 이행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변화는 전술적인 것에 불과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말한 다자대화는 6자회담이 아닐 수도 있다' 등 해석을 부정적으로만 한다"며 "그 해석 자체는 맞을지 몰라도 북한의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국면을 끌고 갈 생각은 없다. 그것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정부가 국면 전환을 막아보려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일각에 있다. 정부 소식통이 "북한의 핵시설 복원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했다는 <연합뉴스>의 6일자 보도, 북한 컨테이너 4개를 압수해 분석하고 있다는 <동아일보>의 5~6일 연쇄 보도 등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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