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PD협회(협회장 김덕재)와 KBS 노조 중앙위원들은 공동으로 '졸속·코드 개편 저지를 위한 KBS PD협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에 나선 상황. 지난 28일에는 이병순 사장에게 <시사360>을 폐지하는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내기도 했다.
<시사360>은 없애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연성화'?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의 시사프로그램은 축소 일로를 걸어왔다. 지난해 <생방송 시사투나잇>을 폐지한 이후 비판의 수위가 현저하게 낮아진 <시사360>을 신설했으나, 이번 가을 개편엔 그마저도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이 '프로그램 폐지'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 KBS의 다른 시사 프로그램도 '연성화'의 늪에 빠져있다. 대부분의 시사 프로그램이 정치 권력 감시와 비판보다는 사회 분야 이슈에 집중하면서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360>이 정치 권력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한국 최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임을 내세우는 <추적 60분>이 최근 다룬 주제는 석면 문제("석면 비상! 비상구는 없는가?"), 간척지 분쟁("간척농지, 누가 경작할 것인가?"), 재개발 문제 ("검은 돈의 유혹, 상도4동 산65번지"), 성범죄자 문제("성범죄자, 교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등이다. 직접적인 권력 비판보다는 사회 분야의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 그러나 사회 이슈 중에서도 '용산 참사'와 같은 민감한 주제는 다루지 않았다.
<시사기획 쌈>이나 <취재파일4321> 등 기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다르지 않다. <시사기획 쌈>이 최근 다룬 주제는 이산가족 상봉("기다린 60년 기다릴 60년"), 상습 성 범죄자 대책("전자발찌 1년, 내 아이는 안전한가?") 한국과 일본 간 대륙붕 영토 분쟁 ("JDZ, 한·일 석유전쟁") 등 역시 대부분 사회 분야에 한정됐다. 이 프로그램도 초기 "참여정부 인사 대해부"를 편성하는 등 권력 비판에도 힘을 쏟았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 시민사회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정운찬 신임 총리를 비롯한 2기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고위 공직자를 검증하는 심층 보도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KBS 탐사보도팀이 정연주 사장 시절 고위공직자 비리 사실을 숱하게 밝혀냈던 것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 <생방송 시사360> 홈페이지. ⓒKBS |
이러한 변화의 1차적인 원인은 달라진 제작 환경에 있다. <시사360> PD들은 이병순 사장이 '심의'를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압박 도구로 사용했다고 고발했다. 이들은 "<시사투나잇>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시사360>을 두고 미흡하다고 하나 유난히 복잡다단했던 올해 시사 프로그램의 최전선에서 매일 아이템 하나를 정하는 것은 하나의 전투와 같았다"면서 "수많은 아이템들이 취재도 못해보고 날라갔으며 그 와중에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심의' 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심의는 시사프로그램, 특히 <시사360>에서 사장이 휘두르는 주요한 무기였다"며 "이병순 사장의 '심의'를 이용한 '간부 깨기'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간부들의 그다지 많지 않았던 애정마저 사라지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이병순 사장의 언론관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치우친 기준"
이러한 변화에는 이병순 사장의 '언론관'과 '심의'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 통제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와 관련해 <생방송 시사360> PD들은 이병순 사장의 언론관을 알 수 있는 발언을 최근 성명에서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시사360>팀에 따르면 이병순 사장은 몇달 전 <시사360>팀과의 점심 자리에서 "PD들은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치우친 기준을 갖고 있다", "보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것이 위법인가 적법인가의 여부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안의 본질보다는 현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시사360>을 '풍경 소개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구상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심야 시간 복잡한 것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시사360>도 전국에 멋있는 관광지나 멋있는 풍경을 소개하는 코너도 하는게 어떠냐"면서 "거기에 멋있는 가곡 깔아주고…숙박 정보도 소개하고 말이지"라고 말했다.
<시사360> PD들은 성명에서 "이 사장의 발언은 <시사360>을 폐지하고 <세상은 지금>을 신설한다는 개편으로 현실화됐다"면서 "결국 한국의 멋있는 풍경이 세계의 멋진 풍경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현상은 360의 폐지고, 본질은 저널리즘의 목을 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병순 임기 종료, 무리한 가을 개편 …'KBS 뒤집기' 가능할까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한동안은 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병순 사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고 일부 PD들이 중심으로 이번 가을 개편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경영진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KBS PD협회 비대위는 이병순 사장에게 보낸 질의서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시사360>은 동시대 경쟁프로그램 대비 시청률 1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사장이 지난주 국회에서 <시사360>의 폐지가 '시청자 수요에 대한 면밀한 조사 결과' 내린 결정이었다고 답한 바 있는데 그 면밀한 조사의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해 폐지된 <시사투나잇>도 시청률 1위에 광고 실적까지 2TV 전체 평균치를 웃돌았으나 사측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폐지했다"면서 "이번 <시사360>의 폐지는 향후 KBS 프로그램의 사회 비판, 감시 기능을 더욱 심각히 훼손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병순 현 사장이 오는 11월 23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고 손병두 이사장은 30일 "임기 만료 전에 (후임 사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적절한 인물을 찾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혀 '사장 교체' 가능성을 높였지만 이러한 제작 분위기가 바뀔 것인가는 미지수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경영진은 KBS 사원들의 요구에도 <시사360> 폐지 등 가을 개편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면서 "사장이 바뀐다고 해도 현 정권 기조 하에서 제작 환경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면서 '사면초가'의 상황을 토로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