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등의 책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독한 독서가' 정혜윤 CBS PD가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 줄게>라는 제목의 런던 여행기를 냈다. <프레시안>에 연재된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가 기초가 된 이 책은 연재를 열심히 읽었던 독자라면 새롭게 변주된 글을 읽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리니치 천문대, 자연사 박물관 등을 주제로 한 글이 새로 추가됐고 웨스트민스턴 사원 등 거의 모든 이야기가 새롭게 구성됐다.
▲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 줄게>(정혜윤 지음, 푸른숲 펴냄) ⓒ프레시안 |
또 하나는 누구나 아는 장소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 대부분의 책이 숨겨진 맛집, 멋집, 교통, 숙박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그는 런던탑, 대영박물관, 세인트 폴 대성당, 트라팔가르 광장, 그리니치 천문대 등 영국에 한번 가보지 않은 사람도 들어본 익숙한 공간들에 관한 여행기를 썼다.
그는 "한계와 갈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고 돈을 마련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가서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돌아와 '생각보다 볼 거 없더라'고 한다. 나는 그들의 손을 끌고 '아니야 이렇게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어,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책 속에도 이런 말이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view'란 그런 것이다. 이를테면 책임감 같은 것이다. 한 번 보고 두번 보고 다시 잊지 못하게 되는 것 같은 것이다. 내가 본 아름다움에 책임지고 싶다는 내밀한 욕망은 나의 내부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다나카와 슌타로 식으로 말하자면 세계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나일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사원 편)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상의 '한계' 속에서 떠난 여행에서 가져야할 '갈망'에 대해 말한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어떻게든 나를 연결시키고 싶다는 갈망.
"어쩌면 런던은 핑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쿄와 뉴욕이라고 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나는 도시의 이름을 빌어 갈망과 호기심과 또 다른 세계와 또 다른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서 중요한 지점은 '런던'이 아니라 '속삭인다'는데 있다. "런던을 속삭여 줄게"라는 제목처럼 책의 표지를 비롯해 곳곳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표지에 구식 전화기를 들고 있는 오렌지 원피스 차림의 모델이 바로 저자 자신. 이외에도 각 이야기 편마다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그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영국의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서, 트리팔가르 광장을 메운 인파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열정과 과거의 신비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역사와 그에 시련을 겪었던 시인에 대해,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미이라에 담긴 사연들에 대해, 트라팔가르 광장에 서 있는 넬슨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뿍 담긴 이러한 이야기들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더욱 생동감있게 하는 것은 이것이 '독서가' 정혜윤 PD의 이야기라는 것. 그가 만약 화가였다면, 선생님이었다면, 고고학자였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영국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백과사전식 여행기가 난무하는 속에서 그의 여행기는 오히려 궁금증을 부른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면 수천 수백가지의 재미있는 여행기가 우리의 이야기 속에 쏟아질 것이다. 그 친구의 여행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신에게 '런던'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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