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사회에는 '엄기영 사장 해임안' 등이 제출되지는 않았으나 김우룡 이사장 등 여당 추천 이사들이 "MBC는 총체적 부실 조직이며 책임지지 않는 방송"이라며 MBC 경영진을 강도높게 압박해온 터라 이날 MBC 경영진 해임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여당 측 이사들이 엄기영 사장 해임을 거론하는 것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일단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이사회 직전 언론노조 MBC 본부(본부장 이근행)가 김 이사장을 항의 방문하는가 하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것으로 본 민주당 추천 이사들이 이사회 후 기자회견을 계획하기도 했다.
이날 여당 측 이사들은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강도높게 제기해 조만간 엄기영 사장 해임안 논의를 다시 제기할 것을 예고했다. 방문진 이사들이 해임안을 두고 '엄기영 사장 길들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MBC 경영진 신뢰할 수 없다" 강도높은 불만 집중 제기
이날 여당 측 이사들은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김우룡 이사장은 "MBC 경영진이 악화된 경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흡했다. MBC 경영진이 장래 비전을 깊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면서 "이제까지 받은 업무 보고 내용을 심사숙고해 (해임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해보자"고 말했다.
여당 측 김광동 이사는 "적절한 시기를 봐서 현 경영진에게 MBC를 계속 맡겨야 하느냐를 검토하는 시기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차기환 이사는 "엄기영 사장이 '뉴 MBC 플랜'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선언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과 어떤 조치가 있을지 지켜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이사들은 방문진의 보충 질의에 대한 MBC 경영진의 서면 답변에 "지난 현안보고 때와 말이 바뀌었다"고 불만을 제기하거나 MBC 경영진이 한 컨설팅 회사와의 계약서를 '업무상 비밀'이라며 제출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 "이러니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불만을 제기했다.
차 이사는 "엄 사장이 새로운 계획을 내놨지만 신뢰할 만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았다"면서 "가령 <PD수첩> 건에 대해 취재 테이프 등 증거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하더니 이번엔 '법원 재판 중이라 불가하다'고 말을 바꿨고 <100분 토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엄 사장 등 경영진을 신뢰하려면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컨설팅 계약서 제출을 거부하는 등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신뢰성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룡-이근행 설전…"MB 요구하는 대로" vs "사주 받아 일하는 사람 아냐"
여당 측 방문진 이사들의 MBC 경영진 압박에 MBC 구성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노조 MBC 본부는 이날 회의 직전 김우룡 이사장을 항의 방문해 공개 질의서를 제출하고 방문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이날 공개질의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김우룡 이사장과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5분여 간 설전을 벌였다. 이근행 위원장은 김 이사장에게 "과연 저쪽(이명박 정부)에서 요구한 대로 MBC를 재단할 것인가를 지켜봤으나 근거 없이 MBC를 두고 부실 조직이며 총체적 문제투성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졌다. 총체적 부실이 뭐냐"고 따졌다.
또 이 위원장은 "오늘 MBC 경영진에 대한 총평을 내린다고 들었는데, 평가도 이뤄지기 전에 주관적인 판단으로 근거 없이 MBC를 총체적 부실 조직으로 정의한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황성철 MBC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MBC 단체협약이 경영권 침해라는 구체적인 증거를 밝히지 않으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마치 우리가 사주받아 일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위원장은 근거 있는 얘기를 하는 것인가"라고 맞서면서 "필요하다면 경영진과 이사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과 각 세션에 관한 속기록도 있으니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 김우룡 이사장(왼쪽)과 이근행 언론노조 MBC 본부장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
"김우룡 이사장은 'MBC 매도' 근거를 밝혀라"
MBC 노조는 이날 질의서에서 김우룡 이사장의 "MBC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 조직이며 책임지지 않는 방송", "MBC는 <PD수첩> 등의 프로그램에서 허위, 날조한 내용을 유포했다"라는 발언의 근거를 캐물었다.
MBC 노조는 "총체적 부실 조직이 어떻게 시청률 1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책임지지 않는 방송이 어떻게 신뢰도 1위의 방송이 될 수 있단 말이냐"며 "김 이사장은 어떤 이유로 MBC를 매도한 것인지 즉각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문진이야 말로 언론 주권을 빼앗는 사기집단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PD수첩>이 날조 방송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권력에 편승하려는 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을 방문진 이사장이 그대로 옮겨 반복해도 되는 것이냐"며 "그 근거와 당위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MBC 노조는 차기환 이사가 "단체협약 등에서 경영권의 핵심인 편성권과 인사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한 것을 두고도 "MBC 노조를 무력화하고 말살하려는 의도 아니냐"며 "단협 개정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하겠느냐"고 따졌다.
MBC 노조는 방문진이 엄기영 사장 해임에 나설 경우 적극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엄기영 사장과 뜻을 같이해서가 아니라 사장의 진퇴는 방송사의 독립성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도해임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엄 사장이 내놓은 계획도 방문진의 왜곡된 평가를 받아들인 듯한 인식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미래상을 만들기 위해 당당히 논의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 MBC 노동조합이 방문진 사무실 앞에서 공개질의서를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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