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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신정권의 등장 의미와 새로운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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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민주당 신정권의 등장 의미와 새로운 한일관계

하토야마 시대 일본과 동아시아, 전망과 제언 <2>

코리아연구원(www.knsi.org)과 <프레시안>은 8월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 대해 평가하고, 일본의 새 정부와 미국, 중국 그리고 한반도 관계에 대해 전망하고 제언하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및 사회통합 문제에 대한 정책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다. <편집자>


1. 자민당 정권은 왜 무너졌는가?

전후 반세기 이상 동안 일본을 지배해 왔던 자민당 정권이 8월 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일으킨 광풍을 맞아 마침내 붕괴되었다. 일본 정치사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가히 혁명적인 일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민주당은 480석 중에서 309석을 획득하여 1986년 중참의원 동시선거에서 자민당이 획득한 300석의 기록을 일거에 갈아 치우는 기염을 토해 냈다.

반면 자민당은, 그간 자신의 기초체력이라고 일컬어져 왔던 220석대에도 훨씬 못 미치는 119석을 얻는데 그쳐, 창당 이래 최대의 참당한 패배를 기록했다. 민주당의 역사적인 압승과 자민당의 괴멸적인 참패는 그야말로 일본정치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는 선거 혁명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의 압승은 자민당 지도부의 실정과 무기력, 관료지배 체제의 폐단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성공을 거둔 것이며, 관료주의 타파, 격차사회의 시정, 지방분권의 실현 등을 공약으로 앞세운 민주당의 공세가 엄청난 약효를 발휘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1년마다 총리를 교체하면서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며 실정과 실언을 거듭해 온 자민당 정권으로서는 '생활정치 복원'과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과감한 복지정책의 실현을 기치로 내건 민주당의 전방위 공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파벌정치와 세습의원의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동맥경화 상태에 빠진 자민당과 달리 민주당은 새로운 인물의 과감한 기용과 신세대 정치인의 수혈을 통해 확고한 정권담당 능력을 꾸준히 제고시켜 왔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번 선거이변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온 자민당 정권의 지지기반 하락 추세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일본 정치권의 총보수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자민당은 자유주의 진영의 수호자 역할을 더 이상 독점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버블경제의 붕괴와 일본경제의 장기침체는 고도 경제성장을 견인하며 이익분배 형 정치를 구현해왔던 자민당으로서는 더 이상 스스로의 지지 세력과 지지계층에 나눠줄 자원의 고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인 냉전과 고도성장 시대의 종언은 자민당 정치의 몰락을 초래한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 자민당 우월체제의 붕괴와 양당체제의 도래

자민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역사적인 압승으로 일본 정치권은 엄청난 변혁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신 정권의 등장은 일본정치에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변혁의 실마리는 정당 시스템의 재편과 관료주도 정치에 대한 개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민주당 정권은 격차 시정과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에 중점을 둔 복지정책의 추진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자민당의 우월 정당제로 특징 지워지는 '55년 체제' 는 마침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고 그 대신 자민당-민주당 중심의 양대 정당 시스템이 정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년 여당의 역할을 담당해왔던 자민당은 사상 초유의 참패를 딛고 조직 재건과 세력 복원에 나서겠지만 당분간 혼돈과 좌절의 늪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국내정치 분야와 사회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추구하면서 내년 여름 참의원에서의 승리를 위해 당력을 집중시킬 것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일본의 정당 시스템은 자민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중심축을 형성하여 정권 획득을 치열하게 다투는 본격적인 경쟁 구도로 이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1994년의 선거개혁으로 기존의 중선거구 제도가 폐지되고 소선거구제(300석)와 권역별 비례대표제(180석)가 결합된 병립형 선거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당 시스템이 자민당 우월정당제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되어 왔다. 이번 총선은 새로 도입된 소선거구제 하에서 다섯 번째로 실시된 선거로서 그야말로 소선거구제 제도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당별 득표율에서 보면 불과 20% 이내의 차이가 획득 의석수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소선거구제의 특징인 것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상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무당파 층'의 투표 행동은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되고 무당파 층의 선택이 바로 정권의 선택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2005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주도한 자민당의 '우정선거 압승'도 따지고 보면, 무당파 층의 몰표 덕분이었고 그 무당파 층의 표심이 이번에는 민주당 압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3. 관료주도에서 정치주도로 권력 이동

이번 민주당 정권의 출현을 계기로 일본정치는 관료주도에서 정치 주도로의 권력 이동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자민당의 장기집권 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왔던 관료제는 일본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거의 독점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국가예산의 편성에서부터 산업·금융정책에 이르기까지 국가자원의 배분을 주도하는 한편, 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와 인허가권 그리고 행정지도를 통해 일본 관료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관료가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갖는 일본적 시스템은 일본 국민에게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이라는 혜택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관료지배 체제는 동시에 수많은 폐단과 모순을 잉태하였다. 국가예산의 낭비, 관료조직 상층부의 무분별한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 관행,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그리고 무분별한 규제의 남발, 업계와의 유착과 부정부패를 양산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권은 향후 관료주도의 정치행태가 초래한 모순과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에 나서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정권 공약은, 관료주도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정치인과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되는 국가전략국을 설치하여 관료 조직에 대한 전면적인 관리와 통제에 나설 것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각 성청에 정치인 100명을 파견하여 관료조직을 단단히 다스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 마디로 관료통제를 통한 정치주도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는 정치주도의 의사결정은 예산편성과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방침을 수립하는 데서 출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 정권의 정치주도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에 대해 관료조직은 조직적인 저항 내지 사보타지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과연 민주당 정권의 관료주도 타파가 어느 정도까지 성공할 수 있는지는 향후 일본정치의 핵심적인 아젠다가 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건 각종 수당 및 보조금의 지급, 고속도로 무료화 등 재정지출을 요하는 사회경제 정책의 실현을 위한 막대한 재원의 조달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민주당 정권의 관료제 개혁 드라이브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 일본 민주당 지도부는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전후보상 문제에 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 주목된다. 7월 29일 오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수요집회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꽃편지를 할머니들에게 달아드리고 있다. ⓒ뉴시스

4. 한일관계에 청신호,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

이번 총선의 쟁점은 주로 국내정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신 정권이 집권 후 외교안보 정책상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권 공약을 통해 대등한 대미관계의 추구와 아시아를 중시하는 외교를 펼치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에서의 외교정책 상의 기조 변화가 감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 정권이 펼치게 될 한반도 정책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 조짐이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민주당 정권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한일관계는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판단되며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시키는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자민당 정권의 수뇌부와는 달리 민주당의 지도부는 역사인식 문제에서 전향적이고 건전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군사문제나 헌법문제 등 외교안보 정책에서 다소 유화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최근 한일관계 악화 배경에는 일부 자민당 우파 지도자들의 시대착오적 역사인식이나 섣부른 민족주의적 발상 그리고 부적절한 언행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민주당 정권의 출현을 계기로 한일 관계는 불필요한 마찰과 대립을 넘어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구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넓게 열려있다고 생각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동아시아 공동체 수립'과 '아시아의 공동통화 구상'을 그의 아시아 중시외교의 비전으로 주장한 바 있다. 또 자민당 정권하에서 격렬한 역사마찰의 뇌관으로 작용해왔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하겠다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야스쿠니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제3의 국립추도시설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이 무난하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민주당 집권 기간 중에 야스쿠니 문제가 한일, 중일 관계의 외교적 악재로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밖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정권공약과 선거유세,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기대되는 언급을 표명한 바 있다. 첫째,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하여 1995년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하에서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를 답습, 공유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이를 실천적으로 계승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둘째, 재일 한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는 입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셋째,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전후보상 문제에 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언급하였다.

민주당 지도부의 일련의 발언이 액면대로 실천에 옮겨진다면 한일관계의 최대 장애물 중 하나인 과거사 마찰 이슈는 상당 부분 약화되거나 해소되는 방향으로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한일 과거사 갈등의 불씨가 쉽사리 꺼졌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점이 남아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혁명에도 불구하고 일본정치의 보수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민주당 내의 좌우에 걸친 다양한 이념 및 정책의 혼재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한일관계에 대한 과잉기대나 지나친 낙관은 시기상조라고 말 할 수 있다.

일단 야스쿠니 참배, 전후보상, 과거사 인식 문제와 관련한 정치권 내의 반동적인 움직임은 민주당 정권 하에서 상당 부분 억제되겠지만 한일 간에 역사마찰이 재현될 가능성은 여전히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일 관계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정권이 단시일 내에 새로운 대북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한 반발과 불신이 워낙 뿌리 깊을 뿐 아니라 북한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위협과 경계심이 일본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민주당 정권으로서도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의 대일 자세 변화에 따라서는 민주당 정권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자민당의 대북제재 일변도 정책을 넘어서 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대북 접근을 시도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수교협상의 개시에 물꼬를 트려고 나름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경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대북외교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외무성 주도의 접근보다는 민주당 내의 거물 정치인의 결단이 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일관계의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인 독도문제에 관해서 민주당 정권도 자민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자민당이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도서'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민주당은 '독도가 일본영토이지만 한국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의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당장 독도문제와 관련해서는 올 가을 확정이 예정되어 있는 고등학교 교과서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 영유권' 기술을 포함시키려는 문부과학성의 시도에 민주당 정권의 지도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우리로서는 긴밀한 대화 채널을 신속히 구축, 가동하여 민주당 정권이 이 문제를 슬기롭게 다뤄나가도록 다각도의 예방 외교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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