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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난해서 저를 버렸나요?

[김상수 칼럼]<56> 프랑스 국적의 한국인 예술가, 다프네를 말한다

만 33살의 프랑스 국적의 한국인 다프네 낭 르세르장(Daphné Nan Le Sergent)은 1975년 6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배난희(裵蘭姬)다.
태어나 일주일 만에 홀트 아동복지회(http://www.holt.or.kr/)에, 자신의 아버지 손에 의해 넘겨졌다. 그리고 6개월 후에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아직 채 한 살이 되기 이전이었다.

프랑스인 양아버지는 한국에서 아기를 데리고 온 사람으로부터 공항에서 아기를 건네받으면서 프랑스 돈을 지불했고,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 순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프랑스 사람이 됐다.

▲ 프랑스 국적의 한국인 다프네 낭 르세르장 @김상수

파리 1대학과 8대학에서 미술사와 조형예술학 박사를 한 다프네는 미술작가이자 이론가, 대학 강의와 전시기획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아르마땅((l' Harmattan)에서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이 책으로 출판됐다. 책 제목은
'경첩의 이마쥬, 시선의 이야기'(L'IMAGE-CHARNIÈRE OU LE RÉCIT D'UN REGARD)이다.

경첩(a hinge)이란 쇳조각을 맞물게 만들어 창문이나 세간의 문짝을 열고 닫는 장식(裝飾)이고 도구다. 문짝과 기둥에 한 쪽씩 속으로 들어가 박히게 되어있는 경첩은 이쪽과 저 쪽의 '경계'로 기능하기도 한다.

어쩌면 입양아 다프네는 그녀의 실존을 '경첩'으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그런 것 같다.

▲ 다프네 낭 르세르장 @김상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정체성은 불안하다. 또한 프랑스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겉모습과는 일정 괴리가 있다. 내용은 프랑스인이지만 겉모습은 프랑스 인들이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안과 밖이 바로 '경첩'인 것이다.

경첩은 '경계'를 구분하기도 하고, 이 쪽 저 쪽으로 넘나드는 '경계'를 중심 잡게 하기도 하다. 하지만 도구로 '경첩'이 아닌, 사람으로 '경첩'이란 분열적이다. 이것이 입양아 다프네의 슬픔이고 그 정체다.

'분열'과 '경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인이라고 하기엔 사뭇 분열적이다. 이는 다프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프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지난 3월 주불 한국문화원(원장 최준호)에서 다프네는 사진전을 개최했다.
그 사진전에서 다프네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바 있다. '분열과 경계'라는 주제로 한국의 정치와 분단 상황을 아일랜드의 벨파스트라는 신·구교 종교분쟁 장소와 연상하면서 나름의 사진작업을 선보였다.

사진들은 전부 흑백이었다. 흑백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견 차갑게 비친다.
이는 거리두기이다. 대상과 시점으로부터 거리두기는 작가 자신의 작업의 태도에서는 시간의 요소를 냉정하게 응시하는 태도이다.

▲ 다프네의 사진작품 '경계' @Daphné Nan Le Sergent

이 시간은 다프네 자신에게 소용돌이치는 쌍곡선을 형성한다. 입양아로 버려짐과 동시에 또 다른 프랑스 부모들과의 만남, 이는 시간을 잇는 곡선으로 가교(架橋)이며 '경계'이지만, 동시에 순간과 세상을 향한 시선이 변함없이 '연결'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경계'가 의미하는 단절과 연결의 이중성은 다프네의 이중 정체성"(double identity)과도 '연결'된다.

그녀의 사진에서 보이는 그녀가 상상하는 한국의 이미지와 그녀가 직접 가 본 아일랜드의 이미지는 서로 겹친다. 이것이 그녀의 '연결'이고 '흐름'이며 시간의 사진들이다.

'경계', 낯설고 낯설지만 흐르고 연결된다

다프네가 파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을 처음으로 갔을 때를 그녀는 이렇게 회상 했다.

"서른 셋, 난 파리에서 살고 있고, 어느 친구를 따라 어느 전시회에 가게 된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한국문화원이다. 그곳에서 나를 닮은 수많은 얼굴들에 에워 쌓여 어안이 벙벙해졌다.

거울에 비친 듯한, 나와 닮은 얼굴들을 이처럼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다. 이 얼굴들이 그들의 나라이자 내 나라였던 '한국'의 얼굴들이다. 나에겐 넘어갈 수 없는 벽이자 경계가 된다. 나는 이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연속체로 만남의 의미가 해석되기도 했다"


▲ @Daphné Nan Le Sergent

그녀는 또 한국문화원 전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한국 문화원의 전시는 내게 경계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타자와 분리시키는 경계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재정적 이유로 북한과 한국을 나누고 있는 DMZ(비무장지대)에 갈 수는 없었지만, 이와 관련된 이마쥬를 나는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 빌린 책 어느 부분에서 찾아냈다.

정원과 물이 흘러가는 도랑과 작은 연못으로 꾸며진 열린 공간,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이라는 곳이다. 시인이자 성리학자인 김인후(金麟厚, 1510-1560)는 1555년 소쇄원을 찬미하는 시를 지었다.


'담장 아래로 흐르는 도랑
한 걸음 한 걸음 물을 보고 지나며
글을 읊으니 생각은 더욱 그윽해
사람들은 진원을 찾아 거슬러 가지도 않고
부질없이 담 구멍에 흐르는 물만을 바라보네'

이처럼 소쇄원과는 다른 곳이지만 나는 '단절'과 '연결'을 보여주는 북아일랜드로 떠났다.
가톨릭과 개신교 지역을 나누는 벽을 향해서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소쇄원의 문과 흡사한 문을 하나 찾아냈다. 벨파스트 알렉산드라 공원 내에 있는 높은 담장이었다. 이곳은 싸움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지만 공원 정원 내에 안도감을 주는 담장이 있었다.
담장은 정원을 둘로 나누고 그 아래로 작은 도랑이 흘러가고 있었다.

전시회의 형태가 점차 갖춰져 갔다. 전시할 사진들은 각각 경계, 평화의 선을 만들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물결과 흐름과 자연적 요소의 이마쥬들을 만들어 갔다. 서로 붙어있는 몽타쥬들은 서로를 대립시키고 분리시킨 후 다시 샘솟게 된다.

서로 융화될 수 없는 방향, 상호 불가능한 부식(腐蝕), 이 중첩(重疊)이 형태와 방향 사이의 단절로 인해, 비록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우리 앞에서 여전히 분리돼 있지만, 낯선 이국땅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큰 울림을 만든다.

바로 이것이 나의 작업 속에서 만들어지는 형상들이다. 사물 간의 관계 맺기와 관계 끊기로 이루어지는 형상은 기표(signifiant)들의 연쇄사슬과의 얽힘과는 다르게 내재적 한계를 넘어 움직임을 불러들이며 형상이 상기시키는 무한 속에서 그 이유를 찾고자 시도한다."


▲ @Daphné Nan Le Sergent

다프네의 위의 말은 이해가 좀 난삽하지만 딱 선명한 건 '경계'와 '연결'의 흐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말하고 있기도 하다.

다프네는 오는 9월 2일 자신의 한국인 부모를 찾아 고국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간다.

다프네는 주불 한국문화원 전시 때, 문화원장으로부터 한국행 비행기 표를 받았다.
그 비행기 표로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찾아간다. 오는 9월 2일에.

그녀는 계속해서 말한다.

"나선형 오브제가 자신 위에 접히면서 또 다른 곡선을 그린다. 한국문화원 전시를 끝내고 내가 프랑스로부터 경계가 그만큼 더 분명해지는 순간, 나는 한국과 프랑스, 이 두 나라에 중첩된 정체를 깨달아가는 것이다. 서양 예술 비평을 통해 예술과 세계화에 대한 탐구를 향해가는 중에 유럽 일방의 예술사의 시선이 사라지면서, 그 순간 시선은 타자의 존재를 깨닫는다."

다프네는 줄곧 '눈과 시선'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을 찾아간다는 건, 자신의 시선에서 그 정체성 중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을 스스로 들추어 깨어나게 하는 순간들이다.

그녀는 곧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간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저의 진짜 부모는 정말 가난해서 저를 버렸나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p.s - 본문 중에 인용한 다프네의 프랑스 글 번역은 문화공간 한센(han-seine)의 임준서 원장이 수고해 주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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