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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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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냐, 아니냐?

[한윤수의 '오랑캐꽃']<119>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공장에서 일을 돕다가 사고가 나면 산재일까, 아닐까?
참으로 애매하다.
공장에서 일했으니 산재가 맞긴 맞는데, 그 공장에 고용된 게 아니니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서 산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태국 여성 마랑(가명)은 남편의 회사에서 일을 돕다가 알미늄 철심이 튀어나와 손가락 사이를 뚫고 들어가 팔뚝을 관통했다. 왜 그녀는 남편의 회사에서 일을 했을까? 미안해서다! 왜 미안하냐구? 먹고 잘 데가 없어 남편의 기숙사에서 먹고 잤기 때문이다.

이게 산재가 될까? 마랑은 팔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나를 찾아왔다. 그의 얼굴은 근심으로 초췌했다. 치료비는 사장님이 댄다고 하니 어차피 치료는 된다. 하지만 집에 돈을 부쳐야 하는데, 다쳤으니 몇 달 동안 일을 못할 테고, 일을 못하면 돈을 부칠 수 없는 것 아닌가.

마랑은 방콕 옆의 피싸룰룩 출신이다. 고향에선 (전)남편과 함께 트럭을 몰며 생선 행상을 했다. 남편과의 사이에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남편은 마약에 빠져 일을 하지 않고 마랑이 버는 돈을 탕진했다. 마약기운이 떨어지면 약을 사내놓으라며 그녀를 때리기까지 했다. 견디다 못한 마랑은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던 중 목돈을 벌러 5년 전 한국에 왔다. 쌍둥이는 친정 엄마에게 맡겨놓고. 그 쌍둥이가 지금 13살인데 중학교에 가야 하니 돈이 많이 들게 생겼다.

마랑은 한국에 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지금의 남편도 마약의 피해자였다. 마약을 하면서 바람을 피우는 아내와 이혼한 처지였으니까. <마약에 피해를 본>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만난 것이다. 둘은 찰떡궁합으로 마음이 맞아서 재작년 1월 태국에 갔을 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이 벌써 3살이다.

마랑은 성남의 양말 공장에서 일하고 남편은 화성의 알미늄 공장에서 일했다. 마랑은 남편을 너무나 좋아해서 자신의 공장에 일이 없는 날에는 남편의 공장에 와서 남편의 일을 거들어주곤 했다. 5월부터 양말 공장에 일이 줄어들었는데 5월 한 달은 거의 1주일에 하루 꼴로 남편의 공장에 와서 일했다. 그렇다고 월급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도와준 것이다.


양말 공장에 일이 대폭 줄어서 마랑은 결국 6월 20일 그 공장을 나왔다. 그녀는 직장을 구할 때까지 남편의 기숙사에서 먹고 자기로 하고 짐을 옮겨 왔다. 그녀는 그냥 먹고 자는 게 <미안해서> 자발적으로 일한 것이다. 물론 임금을 받진 않았다. 그러다가 7월 20일에 사고가 났다. 알미늄 철심이 그녀의 팔목을 관통한 것이다. 의사 말로는 치료에만 3, 4개월이 걸리는데 후유증이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산재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그녀의 운명을 가를 것이었다. 그녀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호소하듯 내 눈을 쳐다보았다.


"산재가 될까요? 쌍둥이도 쌍둥이지만 친정 엄마도 아프거든요. 산재가 되어야 돈을 부치는데."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나는 즉답을 피하고 평일날 다시 오라고 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이틀 후 나는 근로복지공단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의 공장 일을 도와주다 다쳤는데 산재 승인이 날까요?"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솔직히 말해주었다.

"단순히 도와준 거라면 산재가 안 됩니다. 다만 일용직이라도 일당을 받았다면 산재 적용 여부를 심사해볼 수가 있겠지요."


대강 감이 잡혔다. 임금을 받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만일 그렇다면 사장님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장님이 무슨 명목으로든 돈을 주었다면 산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산재보험료가 올라가겠지만 좋은 사장님이라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마랑은 그 회사에서 한 달 이상 봉사했으니까.

나는 마랑을 당장 오라고 했다. 그날도 비가 왔는데 그녀는 택시를 타고 왔다. 1만원이나 주고서.
나는 마랑에게 물었다.
"사장님 좋아요?"
"예, 좋아요."

"그럼 사장님에게 부탁해보세요. 사장님이 해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서 마랑이 가져온 서류를 들쳐보다 깜짝 놀랐다. 맨 뒤에 <요양 보험급여결정통지서(산재보험카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이미 산재로 처리해준 것인데 마랑은 그것도 모르고 나에게 부탁하려 또 온 것이다. 마랑은 좋은 사장님을 만난 것이었다. 하기야 마랑도 좋은 사람이니 좋은 사장님을 만난 것이겠지.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정식으로 결혼식 : 결혼식은커녕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이 꽤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말만 부부일 뿐이다. 태국에 가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있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헤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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