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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조문단 청와대 예방, 첫 술에 배부르랴"

'김대중평화센터' 정세현·김연철 긴급 인터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파견한 조문단이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뒤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은 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했고 이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에게 전해달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남북 양 정상은 조문단을 통한 간접 대화에서 공통의 인식을 발견했다기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기본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찬바람이 불던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문단을 맞이하고 당국간 대화의 교량 역할을 했던 김대중평화센터 측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과 조문단의 만남은 남북관계 개선의 첫 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과 조문단 영접의 실무를 맡았던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회담 등 앞으로 있을 남북의 만남을 발전시키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북한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에 대한 정세현 부이사장 및 김연철 소장의 인터뷰 전문이다.

▲ 북한 조문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오른쪽)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가운데)이 23일 홍양호 통일부 차관의 환송을 받으며 서울을 떠나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들은 이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연합뉴스


■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의 예방을 받고 조문단도 청와대 방문을 위해 하루를 기다린 것 모두 잘 된 일이다. 청와대의 면담 결과 발표를 보니까 서로 각자의 얘기를 한 것 같긴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겠나. 1년 6개월간 서로 적대했는데 30분 만났다고 한 번에 해빙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불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만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생겼고, 남북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슬기롭게 포착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대북 제재국면을 끝내고 북미관계를 상당히 유연하게 풀어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한미관계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또, 다음 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일본의 대북정책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북관계와 일북관계를 따라가지 못했을 경우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상은 어떻게 되겠나.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을 부여해 조문단을 내려 보내고 청와대도 조문단을 만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은 양측 모두 국제정세의 흐름을 감안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더 이상 이렇게 돼서는 안 되겠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입장차는 있었지만 일단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입장 차이는 앞으로 해소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같은 것도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니 성과가 곧 나올 것이다. 나아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에 가서 합의해 온 5개항을 정부 차원에서 보장하거나 지원하는 문제가 나올 것이다.

이렇게 서로 쌍방의 이익을 위해 협조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으니까, 오늘 만남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협상하면 잘 풀려 가리라고 본다. 작은 신뢰가 큰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더 높은 수준의 당국 회담으로 올라갈 수 있다.

조문단 파견 의사를 김대중평화센터에 먼저 통보했다는 이유로 통민봉관(通民封官. 북측이 남측의 민간하고만 대화하고 당국을 배제함)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은 선(先)통민-후(後)통관으로 업그레이드 됐고, 또한 선민후관으로 이어지도록 김대중평화센터가 다리를 놓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문단과 식사를 같이 했는데, 북측은 남북의 화해·협력 사업을 계속하면서 관계개선을 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문제는 남측인데, 북측의 변화된 모습이 지난 1년 6개월간 남측이 대북 강경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드디어 북한이 항복하고 있다는 식으로 의미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북측은 남측보다 국제정세의 흐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뒤지지 않으려고 주도적이고 주동적으로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 물론 북한의 의도가 제재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유화 제스처를 쓰는 건 아니다.

특히 이달 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대미라인이 아니라 대남정책의 총책이라고 할 수 있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만남에 배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이 최소한 병행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클린턴 방북 전부터 지속적으로 북한에 보냈다. 따라서 김양건 부장이 그 자리에 나온 것은 미국의 그러한 뜻에 부응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조문단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나를 비롯해서 김대중평화센터 측에서 영접을 했는데, 민간인인 우리하고 밥을 두 끼 연속으로 먹은 뒤에 어제 만찬은 통일부 장관이 마련했다. 그리고 조문단은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갔다. 민에서 관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이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선통민-후통관을 연결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틀을 짜기 위한 거푸집 역할을 했다. 틀이 만들어지면 거푸집은 떼어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어제 오전에 조문단과 작별을 하고 철수했다. 그래서 나는 공항 환송에도 나가지 않았다. 통일부 차관과 국장이 환송을 나갔다.

김대중평화센터의 한 일원으로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픔을 남북 화해·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 김기남 북한 조문단장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청와대

■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북한 최고위 당국자들이 남쪽에 내려온 것은 우선 조문 때문이었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에 큰 선물을 준 것 같다.

북측은 이번 조문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정식 회담은 아니었지만 당국간 만남도 충분히 있었다.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남북 정상간 의사도 간접적으로 교환됐다.

큰 틀에서 보자면 남북 모두 '이제는 문제를 풀자. 만나자'는 의사를 주고받은 것이다. 앞으로 실무 회담을 하나하나 열어서 서로 입장차를 조율하고 좁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보면 여전히 수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앞으로 쟁점들을 해결하려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바꿔야 한다. 대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걸 살리지 못하면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 고비가 많이 있겠지만 정부가 큰 방향에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조문단과 만나는 과정을 보니까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 측면이 있다. 그건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전략적 방향이 모호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걸 우선 빨리 정리하고, 회담 역량도 더 정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래도 조문단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도 좋은 얘기가 나오고 여야를 떠나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이 만들어 준 환경이 보기 좋았다.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계기가 됐는데,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안아서 문제를 푸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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