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외신들은 서울발 속보로 전세계에 타전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는 웹사이트에 장문의 기사를 신속하게 게재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이 신문은 김 전 대통령은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자행된 사형선고와 암살기도에도 살아남은 반정부 인사로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NYT는 이어 '햇볕정책'과 남북 첫 정상회담 성사를 중심으로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조명했다. 다음은 NYT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정적들에게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그는 지난 2000년 북한 평양에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과 남북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은 분단된 한반도에 유례없는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한반도는 1953년 한국전쟁이 평화조약 없이 휴전돼 기술적으로 전쟁상태로 남아있다.
이른바 '햇볕정책' 하에 남북은 휴전선을 넘어 도로와 철도 연결에 나섰으며, 남북 합동산업구역인 개성공단을 건설했다. 남측에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한의 금강산을 관광했다.
반세기 넘게 흩어진 남북이산가족들이 상봉의 감격을 누리는 장면이 전세계에 중계되기도 했다.
"말년에 자신의 업적 무너지는 아픔 겪어"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 의지한 몸으로 폐렴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드나들며 말년에 자신의 업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북한에 몇 조원에 해당하는 원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거의 없다고 느낀 한국인들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을 천명한 보수파 지도자 이명박을 선택함으로써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외면했다.
북한은 2006년과 지난 5월 잇따라 핵무기 실험을 단행하고, 미국과 남한, 그리고 일본이 국제 제재를 주도하면서 남북 관계는 최악의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의 꿈을 향한 한국인들의 투쟁을 상징한 인물이다.
"서구인들보다 자국민들에게 인색한 평가 받아"
지난 2000년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민주주의의 옹호자로서 그가 겪은 시련과, 50년에 걸친 남북의 불신과 적대행위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는 서구인들 사이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추앙받고 있지만, 오히려 자국민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판을 받은 편이다.
그는 북한 정권을 감싼다거나, 집권 기간 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전라도 출신 관료들을 많이 발탁해 역차별을 했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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