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에겐 직장 이동기회를 3번만 준다. 그런데 불과 1년 반 동안에 이 3번의 기회를 다 써버리고 더 이상 직장을 옮길 수 없는 딱한 노동자가 있다. 태국인으로 이름이 파용이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와서 충남 홍성의 벽돌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거기서 일한 1년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남보다 일을 못한다거나 일을 싫어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생긴 여자라도 자신이 웬만큼은 생겼다고 생각하듯이. 그는 자신이 남만큼 일도 잘하고 일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그가 벽돌공장을 그만둔 것은 순전히 담배 한 개피 때문이었다. 우즈벡 노동자가 언제나처럼 담배 한 개피를 달라고 했다. 파용은 너무나 얄미워서 주지 않았다. 그 우즈벡은 담배를 사서 피우지 않고 입만 갖고 다니는 자였기 때문이다.
"못 줘!"
"치사한 놈."
말싸움이 격투로 변했다.
사장님은 파용을 가해자로 보고 해고했다. 그게 끝없는 방랑의 시작일 줄이야.
두 번째 간 곳이 경기도 양주의 돕바 공장이다. 그는 거기서 일을 잘못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너 손으로 일하냐, 발로 일하냐? 이거 숫제 더듬발이 아녀?"
사장님은 그를 고문관 취급했다. 한 달 만에 쫓겨 나왔다. 비참했다.
세 번째 간 곳은 충남 천안의 닭 가공공장이었다. 닭고기를 상자에 담아 높이 쌓는 작업을 했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생긴 거하고 다르게 약골이네."
노동력이 귀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장님은 그가 그만두기를 바랬다. 2 주 만에 그만두었다.
마지막으로 4번째 간 곳이 화성시 송산면의 포장지 공장이다. 종이는 다 무거운데 포장지라고 안 무겁겠는가? 종이 한 장은 가볍지만 200장씩 묶어놓으면 가운데를 펀치로 뚫은 포장지라도 무지하게 무겁다. 너무나 무거워서 하루 일하고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그 다음날로 근로계약서를 만들어 고용지원센터에 신고해 버렸다. 그게 7월 중순이었다.
그리고서 한 달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의 주장은 자신이 계약서에 싸인한 적이 없으므로 그 계약은 무효라는 것이었다.
"그럼 누가 싸인했어요?"
"누가 대신 지장을 찍은 것 같아요."
만일 누가 대신 지장을 찍은 게 사실이라면 경찰에 신고해서 지문 대조를 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명이 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만일 파용이 그 계약을 문제를 삼지 않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그 회사에서 일했다면 묵시적으로 그 계약을 인정한 꼴밖에 안 된다. 그럼 그 계약이 무효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는 한 번 더 확인 차 물었다.
"아직도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예."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회사를 옮기기 어렵다.
더구나 이 사람은 어디 간들 또 옮기려고 들을 사람 아닌가! 그냥 있는 수밖에 없지!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못 옮겨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럼 어떻게요?"
"그냥 있어요."
"있기 싫은데."
"불법 되기 싫으면 있어야 돼."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송산 포도 유명해. 포도 많이 먹고 거기 있어요."
그는 씩 웃었다. 하지만 결국 *공장에 남기로 결정했다.
하기야 더 이상 옮길 방도가 없으니까.
*공장에 남기로 : 공장에 남기로 결정해놓고 그는 다음주 일요일에 또 왔다. 혹시 옮길 수 있나? 하고. 나는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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