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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축이 아니다, 정신의 죽음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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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축이 아니다, 정신의 죽음을 경계한다

[김상수 칼럼] 컴퓨터 아티스트 볼프강 키우스와의 대화

'기계인간'들의 세상

지난 6월 파리 예술가촌(Paris Cite international D'arts)에 머물 때 내가 만난 컴퓨터아트 1세대인 독일인 아티스트 키우스((Wolfgang Kiwus·71)는 최근 외신으로 접한 한국 정부의 노골적인 인터넷 통제 뉴스에 대해, 이런 억압이야말로 시민을 어중이떠중이 '바보 대중'으로 한없이 깔보는 경악할 만한 짓이며 대중을 나머지 잉여(剩餘)의 존재로 여기면서 '자기들만의 체제'를 꿈꾸지만 그 실상은 한없이 어리석은 결과로 곧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기계 시스템에 스스로 포섭된 맹신적인 '기계인간'들의 자가당착이라고 말하면서 문제는 이런 '기계인간'들이 무지(無知)하게 설치면서 세상은 자꾸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간다고 크게 걱정했다.


▲ 컴퓨터 아티스트 볼프강 키우스. ⓒ김상수

키우스는 폭력적인 발상으로 인한 억압적인 장치들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니며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 귀착되면서 억압적 체제 자체가 어느 날 스스로 해체당하는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인터넷 통제라는 폭력은 시민들 삶의 중요한 가치를 파괴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까지 파생시키는 폭력의 자동성(自動性)이야말로 통제가 어렵다는 것을 깨우치기에는 과거 역사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결코 가축이 아니며 짐승이 아닌데, 가축이나 짐승처럼 길을 들이겠다는 '기계인간'들이야말로 독일의 역사가 경험한 아돌프 히틀러와 히틀러 측근들, 그런 인간 군상들과 다름이 없단다.

특히 키우스는 규모의 시스템에 의한 통제는 극소수의 지배계급의 손에 대중이 통제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교묘하고 은밀하게 지배, 장악되고 있는 무서운 현실을 직시할 것을 말했다.

지난 6월 초순 세 차례에 걸쳐서 있었던 키우스와의 대화는 컴퓨터의 미래, 컴퓨터 아트,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고 파리에서의 만남 이후 대화는 이메일로 계속 진행되었다.

독일어 이메일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해준 임혜민 씨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음악치료 학사과정으로 재학 중이다.

ⓒ볼프강 키우스
ⓒ볼프강 키우스

아날로그(analog) 시대의 추억

김상수 : 국적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들었다.

키우스 : 그렇다. 내가 1939년에 태어났을 때 유서 깊은 도시 브로츠와프(Wroclawska)는 독일 땅이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내 고향은 폴란드 땅이 되었고 나는 폴란드 국적인이 되었다. 이후 1958년 독일로 이주하게 됐고 다시 독일시민이 됐고 1959년부터는 대학도 활동도 사는 곳도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김상수 : 지금은 폴란드 땅이 된 브로츠와프에서의 추억에 대해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키우스 : 그 곳에서 음악학교를 다니고 1954년부터 1958년까지는 브로츠와프 필하모니(Wroclawska Filharmonia)에서 플롯 연주자로 활동했다. 오케스트라로 참여, 연주를 한 경험은 훗날 내가 혼자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 때 항상 화음의 균형을 의식하게 해주었다. 슈투트가르트 음악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실험음악에 몰두했지만 15세부터 18세까지 브로츠와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플롯을 연주하던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고 회상된다. 기억에 남는 사실은 브로츠와프의 백주년 기념관 (Centennial Hall in Wroclaw: 필자주-19세기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려고 했지만 1813년 독일은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을 패퇴시키고 독일은 그 백주년 기념으로 기념관을 지었는데 독일의 건축가 막스 베르그(max Berg)가 다목적 공간으로 설계, 1911년에서 1913년까지 건축된 강화콘크리트 건축역사에 남는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2006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서 높은 유리 돔의 천정으로 울려 퍼진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운율이 항상 기억에 남는다. 이후 나는 디지털 컴퓨터 음악과 미술을 만들지만 20세기 초 아날로그 시대 당시에는 최첨단 건축이었던 백주년 기념관에서 나는 이미 미래를 경험하기 시작했단 점이다.

김상수 : 슈트르가르트로 이주한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가?

키우스 :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슈투트가르트음악대학을 다녔다. 60년대가 되면서부터 나는 실험적인 음악들을 시도하는 것에 열중했다. 1963년도에 나는 작가들과 현대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1963년부터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1964년부터는 라디오 극본을 쓰게 되는데 대부분 서독일방송국(West Deutscher Rundfunk-WDR, West German Broadcasting)에서 제작되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나는 여러 곳에서 일을 했고, 방송국에서는 기계제작위원으로 일했다. 1978년부터 나는 이탈리아에서 한 출판사를 차리게 됐고 그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1992년에 설치미술을 위한 갤러리 알파예츠트(alpha-JETZT)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한다. 2002년부터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 엑스키우스(xKiwus)를 프로그래밍 했고 2006년부터는 인지물리학의 반증을 위해 일하고 있다.

컴퓨터 미래의 결과, 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김상수 : 인지물리학(認知物理學 Cognitive physics) 또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라고 하면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학문 세계로 듣고 있다.

키우스 :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지능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물리학과 인지과학은 심리학, 신경과학, 언어학, 인류학, 철학, 사회학, 생물학, 전산학 등 여러 가지 학문과 상관되어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algorism)을 전산(電算)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학문이고 인간의 뇌, 신경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티스트로 내 시각과 청각으로 시뮬레이션한다고 할까, 컴퓨터 일반에서 말하는 기초 수리학이나 집합론 범주론 수치 해석이나 수학계산 이론, 양자 계산 이론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바꾸어나가면서 시청각의 예술인 미술과 음악을 컴퓨터로 나는 표현하는 것이다.

김상수 :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 당신 모습을 옆에서 보자면, 아티스트라기보다는 건축설계가 같은 느낌이 든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아주 건축적이다.

키우스 : 제대로 보았다. 나는 컴퓨터아키텍처나 마이크로아키텍처이기도 하다. 컴퓨터비전(computer vision)을 만드는 나는 필수불가결하게 공학적 수학적인 원리에서 컴퓨터 운영체계를 스스로 계발해왔다. 지금하고 있는 작업은 일종의 진화연산(progress annual)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초기단계 작업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데이터마이닝(date mining)을 통해 본격적으로 내가 구상하는 이미지를 그래픽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김상수 : 데이터마이닝이란 말은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닌가?

키우스 : 그렇다. 그 쪽에서 이쪽 언어를 차용한 것이다. 누적된 고객 관련 정보를 토대로 고객의 미래 구매행태를 예측하거나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끌어내는 기법으로 최근에는 금융기관 유통업 도소매업 등에서 이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연결구매나 반복구매 가능성이 높은 고객층을 선별해 구매를 권유하거나 구매량에 따라 차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판매를 극대화한다.

김상수 : 이제 생활 전분야가 컴퓨터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용어나 개념도 혼용되어 너무 어지럽다.

키우스 : 맞다. 나도 어지럽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인공지능의 자동추론(自動推論)으로 움직이는 로봇들과 인간들이 마구 뒤섞여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나는 딱히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공생명과 생물 정보학 등이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으로 현실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또 다른 고민을 낳게 될 것이란 점이다.

김상수 : 또 다른 고민이란?

키우스 : 그것은 오늘날 암호학을 동원해 소프트웨어 보안을 하고 인터넷 보안을 해도 네트워크 보안이 어려우며 해킹이나 크래킹(Cracking)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보면 알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생물학적 복제(複製)의 위험성이 널리 실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복제란 그 자체의 복제성으로 자기복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만큼 관리나 통제가 어렵단 얘기다. 생물체 바이러스의 진화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시스템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시스템이란 건 한 종류의 시스템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복합적인 시스템들이 따라온다. 시스템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면 그 변화는 사람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인간이 작용하고 관계되어 있을 때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연함이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김상수 : 이제 나노테크놀로지나 로봇공학, 유전자공학, 미생물학 응용 등 과학기술의 파생이 끊임없는 현상으로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명은 점점 위험의 축조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키우스 : 내가 90살이 되는 19년 후면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보다도 수십만 배 이상의 전산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불과 20년 전에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의 수준을 역산하면 답은 간단하다. 복제란 이제 너무나 일상의 일이 되고 만다. 생물학과 물리학 그리고 유전공학이 컴퓨터 산업과 만나지면서 인간의 신기루를 만들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포로(捕虜)가 되고 말 것이다.

ⓒ볼프강 키우스
ⓒ볼프강 키우스

기계문명의 위험성, 그 경고를 들어라

김상수 :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계 시스템에 의존해 살고 있으며 오늘날 컴퓨터가 없는 일상생활을 상상할 수 없듯이 똑똑한 기계를 만들고 심지어 '척척박사기계'까지 꿈꾸는 사람들은 이제 기계가 일상의 많은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람들은 때때로 타인의 말이나 판단보다는 기계를 작동해서 나타난 결과나 결정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키우스 : 기계라는 물질에 인간의 영혼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인간의 끊임없는 착각은 드디어 기계들의 폭력에 인간의 삶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과속인 상태의 테크놀로지 발전 속도란 자칫 인간을 삼킬지도 모르는 위험한 현실이 됐음을 심각하게 깨우쳐야 할 때가 이미 지났다.

김상수 : 새로운 기술인 나노테크놀로지는 응용 확장되고 있고 또 유전자공학은 위험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듭 팽창일로인 현실에서 이제 이런 문명의 이기(利己)앞에 때때로 인간들은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키우스 : 전 세계에 급격하게 퍼지는 테러의 공포도 여하히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는 빠져들지 않겠다는 강박(强拍)으로 일상의 삶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그러나 테러라는 폭력의 기계성(機械性)에 우리는 근본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폭력이란 기계성은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자체는 선악의 감정이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다. 그저 반복적이고 연쇄적인 사이클로 상승되면서 원인이나 동기가 어떻든 그 구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누가 가해자였고 누가 피해자였으며 누가 악한이고 누가 착한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 자기번식력을 가지고 진행되면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하는 것이다. 불과 60년 전의 역사가, 그리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속성이, 그리고 급격하게 퍼지는 테러가 바로 그렇다.

▲ 키우스는 "컴퓨터 아트는 손만으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무한한 표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 ⓒ김상수

김상수 : 당신의 책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었다>가 그런 내용인가?

키우스 : 80년대 중반부터 전부 2000페이지 분량의 책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었다> 혹은 <불운이 불가피했던 건>이라고 이름 붙인 책을 계획하고 있었다. 텍스트는 다 썼지만 그림 등을 삽입하고 전체 틀을 정리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전 작업과정을 난 내 컴퓨터를 사용했지만 80년대 중반에는 그것들을 전부 가능하게 해 줄 프로그램이 당시엔 없었다. 난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김상수 : 그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가?

키우스 : 대개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회의를 품기보다는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것에 대하여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지독한 습성은 과학에 발전에 대하여 회의를 나타낸 내 책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사람들은 다소 내 책을 읽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김상수 : 과학자나 학자들과 다르게 예술가들은 세상을 내다보는 안테나가 있다. 통찰력이랄까, 감수성, 직관 같은 것 말이다. 당신은 과학자와 학자의 태도로 예술까지 하고 있다.

키우스 : 과학이 발전하여 인간에게 수많은 혜택을 줄 것이란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과학은 당신의 자식들을 죽일 수도 있어요! 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게 예술가들이 할 일이다.

김상수 : 그러나 무엇보다도 종합적인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당신의 말처럼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눈을 뜨고 세상을 봐야 한다. 나는 그나마 내가 예술을 할 수 있었음을 다행이라고 여긴다.

키우스 : 문제는 인간의 생존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인 이해관계만으로, 다시 말해서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과학이 취급되기 십상이란 점이다.

김상수 : 결국은 생태적인 시각을 지녀야하지 않을까.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가져야 하는, 말이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면 인간들도 그 대가를 받게 되지 않겠는가.

키우스 : 그렇다. 이제 인간들은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나 무서워서 얼마 전에 내 컴퓨터로 교회를 하나 만들었다. '플라스틱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고 기도를 자주한다.

김상수 : '플라스틱 교회'라고?

키우스 : 나 혼자 예배를 보는 교회를 내 컴퓨터 모니터 안에 디자인해서 만들었는데, 교회라고 하기에는 비록 초라하고 간단하지만 그래도 거룩한 합창을 하는 성가대도 있고, 내가 욕심을 내면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는 특별한 장치도 만들었다. 이 장치가 자주 깜빡거리는 걸 봐서 나는 아직 인간이 덜 됐다는 자각을 스스로 하기도 한다. '플라스틱 교회'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컴퓨터 안의 조형적인 교회라 그냥 '플라스틱 교회'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볼프강 키우스
ⓒ볼프강 키우스

컴퓨터아트의 새로운 가능성

김상수 : 당신은 작곡가이며 라디오 극작가였고 컴퓨터아티스트다. 언제 처음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키우스 : 본격적인 관심은 70년대 이전부터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개인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 했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 컸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은 컴퓨터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지 예술가들은 꿈도 못 꿨다. 말하자면 컴퓨터 아트의 시작은 PC가 일반인들에게 보급되면서 시작되었다. 1980년도부터는 컴퓨터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니까.

김상수 : 컴퓨터그래픽 자체를 예술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기록을 보니까 독일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인위적인 예술'로 자리를 구축한 게 1965년에 있었던 전시부터라고 되어 있다. 그 당시 키우스 당신도 컴퓨터 그래픽에 대해 매력을 느꼈나?

키우스 : 그 당시는 새로운 시작의 장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뉴욕에서도 컴퓨터 그래픽 전시회가 열렸다. 나는 독일에서 그것을 정말 가까이서 경험했고 큰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것을 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고 할까,. 너무 어려운 길이었으니까.

김상수 :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선 단지 수학적인 지식만을 필요하단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전자언어는 또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 꽤 복잡한 분야라고 알고 있다.

키우스 : 처음엔 화면구성으로 시작했다. 동시에 4가지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시도했다. 그건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다. 이것으로 컴퓨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구성요소들이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은 흥미로웠다.

김상수 : 그것들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었나? 아니면 그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내놓을 계획이 이미 있었나?

키우스 : 처음에는 컴퓨터 아트를 하는 우리 소수 이외에는 그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결과물에 냉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몇 년이 흐르고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매번 우리가 아닌 컴퓨터공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중심에 섰었다. 그것을 카오스이론을 통해 설명하려고 했고, 그것은 마치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했듯이 나온 하나의 결과물로 내세웠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당시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뭐 이미 실체를 다 드러내고 누구나 컴퓨터 응용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니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김상수 : 당신은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통해 화면을 통한 작업을 어떻게 발전시켰나?

키우스 : 80년대 중후반부터 나는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그 때 이미 흑백의 인쇄방식이 존재했지만, 나는 여러 색을 이용하여 인쇄를 해 보고 싶었고, 인쇄잉크를 색 밴드 형식으로 바꿔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하고, 그것을 인쇄를 통해 나타내었다. 나는 그것을 작은 생태계(Biotope)라고 불렀고, 새로운 방식으로 형성된 정돈되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나 그 고리타분한 방식들이 가끔은 그립다.

김상수 : 컴퓨터아트의 특장(特長)은 무엇인가?

키우스 : 컴퓨터아트는 단순한 그림보다 훨씬 무한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장르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단지 그림이나 스케치에서 끝나지 않고, 그림과 소리가 함께 창조될 수 있고 이미지가 움직일 수도 있다. 단지 손으로만 이끌어 낼 수 없는 결과물이 창조된다.

김상수 : 당신이 계발한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당신의 정신적인 영감들을 컴퓨터 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인 셈인가?

키우스 : 컴퓨터로 내 요구사항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나는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하나의 시점이나 방법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Vector) CAD 프로그램(Computer aided design)으로 구조적인 계획을 세우고자 했다. 그것은 비트맵(점묘방식) 방식이 아닌, 선과 다각형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계발하게 됐다. 이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집의 설계라든지 도시의 계획도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CAD 프로그램도 나의 작품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무척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천천히 늙어간다는 것

김상수 : 당신의 생활리듬은 어떻게 돼나?

키우스 : 대략 7시 쯤 일어나 커피를 만들고, 잠에서 깨는 것을 돕기 위해 컴퓨터에 체스프로그램을 켜서 몇 분 정도 게임을 한다. 이 때 한 두 대의 담배를 피운다. 그 다음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거나 글을 쓴다. 전반적으로 하루동안 커피를 자주 마시고 담배를 자주 피운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장을 보러가고 가끔 신문이나 책을 사러가기도 한다. 저녁 8시와 10시 사이에 컴퓨터를 끄고 남은 시간은 그 전부터 보려고 했던 책들을 읽는다. 자정 정도가 되면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내 아내 옆에 누워 잠든다. 밤에 우리는 꿈을 꾼다. 얼마나 우리가 좋은 것들 것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하루일과를 끝냈다는 그 사실과 또 우리가 천천히 늙어간다는 것도. 몇 십년 동안 이런 생활이 이어져왔고 아주 가끔은 몇몇의 친구들의 방문으로 이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문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리듬으로 나는 내 프로그램과 글을 작성하는 것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른 것들은 내게는 그다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김상수 : 컴퓨터아트를 하는 당신에게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키우스 : 미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예술을 통해서 정신적인 감동을 줄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술은 창조속의 미의 과정이며, 자연의 반복이다. 그러나 예술은 자신의 존재감을 정신 안에서의 존재로 정당화시킨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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