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가 훤해서 똑똑한 것 같지만 실제론 그다지 똑똑하지 않고, 한국에 4년이나 있어서 한국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론 거의 모르고, 팔뚝에 문신이 있어서 거센 것 같지만 실제론 전혀 거세지 않은 태국인이 왔다. 이름이 파이야(가명)인데 순진할 정도로 아무 것도 몰라서, 마치 강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는 한 회사에서 3년 일하고 재입국하였으며 다시 1년을 그 회사에서 일했다. 도합 4년을! 그의 꿈은 다른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회사를 옮겨야 할지 몰라서 방법을 물으러 온 것이다. 그러나 회사를 옮기려면 주의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현행법에는 모순이 많고 *도처에 함정이 있다.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한 군데서만 삐끗해도 퇴직금을 못 받거나 벌금을 낼 확률이 높다. 나는 그를 아예 강가에 내놓은 아이로 취급하고 하나하나 가르치기로 했다. 그날 내가 가르친 것은 4가지다.
1. 확실히 끝내기
그 회사를 그만두려면 재계약서에 싸인하면 안된다. 태국인은 아무데나 생각 없이 싸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싸인하면 안돼! 알았죠?"
"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확실히 알아들은 것 같다.
2. 고용지원센터에 신고
1년 만기 후 퇴직자는 반드시 고용지원센터에 신고하고 구직필증을 받아야 한다. 파이야의 1년 만기는 8월 29일이다. 그러나 29일은 토요일이라 고용지원센터 휴일이다. 따라서 그에게 <8월 31일> 월요일에 고용지원센터에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원고용지원센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서 고용지원센터의 위치도를 주었다. 우리가 만든 위치도에는 약도와 함께 버스 타는 법이 태국어로 자세히 적혀 있다.
3. 출입국에서의 비자 연장
1년 고용계약이 끝나면 동시에 비자 기한도 끝난다. 비자 연장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구직필증이 있어야 하고 그 구직필증을 가지고 비자 만기일인 8월 29일 이전에 신고하여야 한다. 하지만 구직필증은 31일에나 나온다. 따라서 만일 구직필증을 가지고 31일에 신고한다면 형식상으로 비자기한을 이틀 넘기게 된다. 하루 어기면 1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니까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는 미리 신고하는 게 좋다. 사유발생 90일 이전에는 미리 신고할 수 있으니까. 평일에는 출입국에 갈 시간이 없으므로 휴가 때 출입국에 가서 신고하라고 했다. 그러면 임시접수증이 나온다. 이 임시 접수증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해도 된다. 나중에 구직하고 나서 정식으로 신고하면 되니까. 파이야는 수원출입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태국어로 된 위치도를 주었다. 위치도에는 수원역에서 출입국이 있는 구운동까지 가는 버스 타는 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4. 퇴직금 확실히 받기
노동자가 재계약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만기 며칠 전에 내보내는 악덕 기업이 간혹 있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간혹 이런 경우도 있으니까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노동자에게 확실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하루라도 먼저 나오면 안되요. 알았죠?"
"28일에 나와도 안되요?"
"물론이죠. 그럼 퇴직금 못 받아요."
"사장님이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1년 계약했으니까 1년 일할 권리 있어요. 사장님이 나가라고 해도 나오면 안되요. 노동자한테는 안 나올 권리도 있어요. 알았죠?"
그래도 미심쩍어서 8월 23일 일요일에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그날 확실히 한 번 더 각인을 시키기 위해서.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현행법에 모순 : 직장을 이동하는 외국인노동자는 고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구직필증이 있어야 출입국에 비자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구직필증은 1년 만기 이후에 받을 수 있고, 비자 연장은 1년 만기 전에 신청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신고는 만 1년이 되기 전에 해야 하고 또 한 가지 신고는 만 1년이 된 후에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모순 아닌가!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신고를 정식으로 할 수 있는 날은 정확히 1년이 되는 만기일 하루 밖에 없다.
*도처에 함정 : 직장을 이동하는 외국인노동자는 반드시 고용지원센터와 출입국 양쪽에 신고하게 되어 있다. 하나만 신고하고 다 했거니 하고 안심하고 있다가 몇 백만 원씩 벌금을 무는 노동자와 사장님들이 가끔 있다. 이 두 가지를 전부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함정 아닌가! 이 두 가지를 원스톱으로 한 번에 처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위험할 가능성 : 8월 29일과 30일은 휴일이므로 구직필증을 31일에 받고 그날 출입국에 신고해도 벌금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연휴 다음 날이니까. 하지만 외국인에게 굳이 모험을 시킬 필요는 없다. 아슬아슬하니까. 그리고 시간 있을 때 미리 신고하면 한갓지고 좋지 않은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