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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비비디 바비디 부!

[김민웅 칼럼]<43> 우리 모두의 '마법의 권능'을 바라며

인간으로 둔갑한 요괴들

요괴(妖怪)가 따로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다 저지른다. 그러고도 이들은 인간으로 둔갑해서 우리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요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자 하나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요괴를 퇴치하기 전까지는.

마구잡이 폭행과 짓밟기를 예사로 하는 국가 권력 앞에서 보통의 시민들은 좌절하고 무력해져간다. 항의와 저항을 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능멸, 그리고 자칫하면 죽음뿐이다. 경찰은 무장한 조폭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폭력은 여성과 노인, 비무장 시민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응징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 앞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경찰은 요괴들이 기르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불법적 폭력을 휘두르는 무장경찰을 정부가 자제시키거나 법적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폭력경찰이 바로 정부의 몸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말대로 일상의 정의는 헌법이 아니라 시민을 대하는 경찰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시민들은 경찰을 통해 이 나라 정부의 진면목을 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이명박의 얼굴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얼굴은 무엇을 떠올리게 하고 있을까?

경찰, 자본이 고용한 용역?

지난 2008년 촛불 이후 우리는 이렇게 날로 기세가 등등해져가는 포악한 권력과 마주하고 있다. 못할 것이 없다는 잔혹한 자신감에 꽉 찬 권력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경찰은 자본에 고용된 용역이고, 의회는 권력의 인감도장 탈취 현장이며 조-중-동을 선두로 한 권력-자본 동맹이 장악한 언론은 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이 되고 있다.

백설 공주의 아름다움을 시기한 마녀는 처음에는 목걸이로 목을 졸라 죽이려 했고 두 번째는 독이 묻은 빗으로 머리를 찔러 죽이려 했으며 세 번째는 독이 든 사과로 죽이려 들었다. 권력은 이 나라 민초들을 탐욕의 정치로 현혹시키면서 사실은 그 목을 조르고 있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머리를 공격하더니 이제는 아예 목숨을 겨냥하고 있다. 권력에 저항하는 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가 이들의 구호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여길 이 마녀를 닮은 권력은 어찌 될까?

백설공주, 신데렐라, 한젤과 그레텔의 끝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의 끝은 이렇게 되어 있다. "백설 공주를 괴롭힌 마녀 왕비는 백성공주와 왕자의 혼인식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백설 공주가 얼마나 예뻐졌는지 보고 싶어 그리로 간다. 백설 공주를 보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란 마녀왕비는 그 자리에서 온 몸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마는 것 같았다.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빨갛게 달군 철로 만든 신발이 그녀 앞에 놓이더니 그 발에 그 신을 신기는 것이었다. 뜨겁기 짝이 없는 신발을 신고 그 마녀 왕비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무대 위에서 춤을 춰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들려주기 어려운 잔혹동화다. 그러나 마녀가 권력을 휘두르는 역사가 뒤집히기를 바라는 민중의 갈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림형제가 전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그녀를 괴롭혔던 두 이복 자매는 나중에 눈을 멀게 하는 징벌을 받는다.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나 모두, 봉건체제의 억압에 질리고 질렸던 게르만 민중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어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한젤과 그레텔을 잡아먹으려한 숲 속의 마녀도 결국 마녀 자신이 불 화덕에 던져지고 만다. 혁명의 불길이다.

잔혹동화와 서유기의 일깨움

16세기 이태리의 지오반 프란체스코 스트라파롤라가 집대성한 유럽의 민중설화가 프랑스 혁명 이전의 프랑스에서 새롭게 꽃을 피운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그 혁명의 열기를 담은 프랑스 민담이 18세기 말과 19세 초 독일에 가서는 독일 농민들의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민담으로 진화해가는 것 역시 이상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19세기에 사는 사람들이 되고 있는 것일까?

불경을 구하기 위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가던 손오공은 갖은 종류의 요괴의 출몰에 맞서 싸운다. 다행히 그에게는 그만한 괴력이 있기도 해서 이들을 하나하나 물리쳐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요괴나 다를 바 없는 손오공은 이 요괴 퇴치의 과정을 통해 인간 이상의 불법(佛法)의 존재가 되어간다. 결국 손오공의 활약을 그린 <서유기(西遊記)>는 요괴퇴치의 끝을 보여준다.

미국은 여러 가지로 비판받을 제국이지만, 최소한 이들은 자국 국민의 생명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모범을 보인다. 물론 거기에는 제국의 위력에 그 어느 경우에도 손상 받지 않게 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역사가 깔려 있는 것이기는 하나 궁지에 처한 생명 하나를 구하는 정부의 치밀하고 성실한 노력은 세계적 부러움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것은 그 반대다. 이 나라 정부에 의해 언제 그 생명이 죽음의 지경에 몰리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을 자본의 소모품으로 삼고 권력의 폭력적 동원 대상으로 만드는 파시즘은 영웅과 민중의 환호를 언제나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자본의 탐욕을 관철하기 위한 권력의 폭력화 과정과 그 체제다. 이는 국가가 거대한 괴물 리바이던이 되어 일상적 제도가 되는 참담함이다. 리바이던이나 요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식인(食人)하는 종(種)이다. 루신(魯迅)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인간을 찾아 나서는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가리 없는 아고라의 슬픔

아가리를 벌려 광장 아고라를 만든 역사는 이 나라에서 불법행위가 되고 있다. 동원의 현장에서 관람의 자리로 바뀐다면 모르겠거니와 아가리를 열어 요괴퇴치를 주장하는 순간, 머리에 철퇴가 내려지고 온 몸에 오랏줄이 휘감긴다. 광화문 앞은 광장을 관람하는 조형물 공간 내지 정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권력의 발상과 문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차도의 정체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혈관이 막혀가는 우리 사회의 동맥경화를 상징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한없이 좌절하고 무력해지며 쉽게 망각하기를 고대하는 권력은 희망의 몰락을 재촉하는 세력이며, 우리를 인간 이하로 변신시키려는 카프카의 심문관들이다. 이들은 도처에서 그런 문서에 손가락 찍기를 강요하고 있다. 평택 쌍용차의 이른바 합의는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죽음의 벼랑 끝에 몰아놓은 뒤 자본과 권력이 얻어낸 항복문서이다. 그러나 그 문서에는 피가 묻어 있다. 용산의 절규에는 아직도 피맺힌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이 시대의 양심은 통곡하나 권력은 그 양심을 겨누어 테이저 건을 쏘고 있다.

마법의 권능을 바라며

결국 마법의 능력이 간절하다. 모든 민담과 전설이 역사의 돌파구를 찾는 것은 짓밟히고 눌렸던 자들이 마법의 능력을 갖게 되면서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마을을 소란스럽게 하고 식량을 갉아먹고 있던 쥐 떼를 몰고 간 것은 그 피리소리의 마술 효과 때문이었다. 다윗이 거문고를 타자 미쳤던 사울 왕이 제 정신을 차린다. 사울을 괴롭히던 귀신이 쫓겨 간 것이다.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죽음의 장에서 깨운 것은 키스의 마술이었다.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마음, 고난에 처한 이에 대한 깊은 사랑, 어떤 난관이나 위협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영혼, 그러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이 마술의 능력을 우리 안에서 태어나게 하는 근본이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서로 손을 잡고 나서면 거기에서부터 마법은 시작된다. 요괴가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비비디 바비디 부"는 신데렐라를 도운 요정의 주문만이 아니다. 요괴 없는 세상을 원하는 모든 이들의 주문이다. 비비디 바비디 부! 모두 함께 같은 생각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분명코 생각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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