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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대북제재, '대화와 협상'의 준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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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대북제재, '대화와 협상'의 준비 과정"

[전문가 진단] 서재정 美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북미관계 전망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이후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던 한반도에 대화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4일, 일곱 발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후 조용해졌고, 미국의 대북 제재 드라이브도 7월 들어 약해지고 있다.

나아가 지난 22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관계정상화, 항구적 평화체제, 경제·에너지 지원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도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잇달아 띄웠다. 북한에 구속된 미국인 여기자 문제와 관련한 북미 대화가 마무리 단계라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대화 국면이 본격화했다고 하기엔 이른 구석도 많다. 우선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6자회담 틀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하기에 앞서 북한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31일 새벽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대북 금융제재 대상 북한 기업을 하나 더 추가했고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이처럼 엇갈리는 현상을 두고 많은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화와 제재가 공존하는 '투 트랙'(Two-Track) 접근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서재정 교수는 오바마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이라는 하나의 트랙만 있을 뿐 투 트랙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마련된 여름 강의차 서울에 머물고 있는 서재정 교수는 3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하고, 제재를 하는 것 같은 미국의 행동들은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에 제시할 인센티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대북 제재 캠페인이 휩쓸고 지나간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서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정치학자인 서 교수는 현재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로 있고 한국학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최근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라는 책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프레시안

프레시안 : 최근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 조짐이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서재정 교수 : 미국 조지아대학의 박한식 석좌교수가 7월 4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 다녀오면서 북한에 구속된 미국인 여기자들에 관해 긍정적인 소식을 가져 온 게 북미간 분위기 전환에 크게 기여했다.

박한식 교수는 여기자들이 재판을 거쳐 형을 받았지만 북한 당국이 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고, 나아가 여기자들을 평양의 호텔도 아니고 최고급 초대소에 머물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소식이 있은 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0일 국무부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의 기자회견을 했다. 박한식 교수의 말을 들은 클린턴 장관은 그 자리에서 여기자와 관련한 발언을 했는데 그게 북한에 의미 있는 메지시를 준 것 같다.

힐러리는 잘 만들어진 발언문을 준비해 이렇게 말했다.

"The two journalists and their families have expressed great remorse for this incident. And I think everyone is very sorry that it happened." (기자들과 가족들은 깊이 후회했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매우 유감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사과한다거나 국무장관으로서 사과한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유감으로 여긴다"는 말에는 클린턴 자신도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 화법으로 미국 정부의 사과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 났을 때 절대로 "sorry"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유감이라는 표현도 되지만 자기의 과실을 인정하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힐러리의 이 발언은 국무부에서 북한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고민 끝에 만들어 낸 것 같은데 분명한 사과의 뜻이 담겨 있다. 북한이 여기자들을 긍정적으로 잘 처리하려고 한다는 박한식 교수의 메시지와 북한의 사과 요구에 미국이 화답한 것이다.

또한 클린턴 장관은 여기자들이 "북한 법에 따라 사면돼"(amnesty through the North Korean system)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원한다고도 말했다.

사면(amnesty)이라고 한 것은 기자들을 그저 인도적인 견지에서 풀어달라는 게 아니다. 미국이 북한의 법체계를 인정하고, 기자들이 법을 어긴 것도 인정하겠으니, 바로 그 법체계에 따라 풀어달라고 한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주권국가임을 미국이 인정한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누가 사면권을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한다. 얼마 전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사면권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가지고 있었는데, 헌법 개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팩트는 아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클린턴 장관이 사면을 요구한 것은 김정일의 권한을 인정하고 김정일한테 직접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은 현 상황에 대해 평화와 전쟁을 얘기하는 단계가 아니라 자기들의 주권이 무시되는 상황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미국이 주권을 인정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는 다른 주권국들이라면 다 하는 것이고, 발사(4월 5일) 전에 관련 국제조약에 가입하는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았는데 자기들만 유엔 재재를 받는 건 주권 침해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국무장관이 나서서 북한의 주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준비된 발언을 한 건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됐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그 후 클린턴 장관과 북한은 다시 험담을 주고받았다.

서재정 : 일회성 해프닝에 불과하다. 클린턴 장관이 TV 회견을 하면서 북한에 대해 "관심을 끌려고 보채는 꼬마이자 철부지 10대"라고 비하했고, 북한은 23일 힐러리에 대해 "때로는 소학교 녀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마당에나 다니는 부양을 받아야 할 할머니 같아 보이기도 한다"고 험담했다.

그런데 북한도 무슨 성명을 발표한 게 아니라 외무성 대변인이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즉, 가장 낮은 수준으로 대응을 했을 뿐이다. 물론 클린턴 장관도 준비된 말을 한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여기자들에 관한 10일 기자회견 이후의 기조를 바꾼 것은 아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21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은 미국과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며칠 후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신선호 대사가 외신기자들을 불러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미국이 메시지를 보내고 북이 화답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일단은 기자 문제를 매개로 하는 것이지만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북미가 다 보고 있는 것이다.

▲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커트 캠벨 국무부 차관보.. 캠벨 차관보가 신미국안보센터(CNAS) 소장 시절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를 소개하고 퇴장하는 장면 ⓒ사진공유 사이트 flickr.com 자료사진

프레시안 :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특별한 근거가 있나?

서재정 :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때문이다. 캠벨 차관보가 6월 말 청문회를 통과해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고 대북정책을 총괄하면서 취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대화와 제재의 투 트랙(Two Track)을 추구한다'고 쓰는데 나는 그건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캠벨의 방침은 투 트랙이 아니라 원 트랙(One Track)이다. 대화와 협상을 하는 트랙이지, 제재와 압박 트랙은 아닌 것이다.

캠벨이 국무부에 들어오기 전 소장으로 있었던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올 6월 발간한 보고서 '환상은 없다'(No Illusion)를 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세 가지 트랙을 검토한다. 첫 번째는 군사적 방안이고, 두 번째는 제재와 압박, 세 번째 트랙은 대화와 협상이다.

그런데 그 보고서는 첫 번째 트랙에 대해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에서 이미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면서 제쳐버렸고, 두 번째 트랙인 제재와 압박도 클린턴과 부시 때 해봤더니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고 했다. 그래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대화와 협상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레시안 : 미국의 움직임에는 분명 제재와 관련된 게 있는데 원 트랙이라고 할 수 있나?

서재정 :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 북과 대화와 협상을 했는데 미국이 북에 끌려 다녔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지렛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보따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으로 가고 북을 협상으로 끌고 오기 위해, 또한 협상이 시작되면 미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가진 게 없다면 새로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경제제재, 금융제제를 하겠다고 돌아다니고 북의 기업 및 개인들의 이름을 제재 대상에 몰리고 하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미국의 움직임을 일견 보면 압박과 제재를 하면서 협상도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캠벨의 기본 입장은, 협상이 시작됐을 때 미국이 던져줄 수 있는 미끼 혹은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러이러한 제재들을 하고 있는데 너희가 뭘 하면 풀어줄게'라는 식의 '포지티브 인센티브', 반대로 '너희가 자꾸 이런 행동을 하면 제재의 고삐를 더 강하게 하겠다'는 식의 '네거티브 인센티브'가 미국에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최근의 조치들이 나오는 것이다. CNAS 보고서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프레시안 : 미국은 6자회담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또 캠벨의 '포괄적 패키지'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6자회담을 말고 북미 양자회담을 주장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립 구도와 유사한데, 이런 상태에서 쉽게 대화로 갈 수 있을까?

서재정 : 샅바싸움 차원으로 봐야 한다. 2003년에 처음으로 6자회담을 시작할 때도 북은 원래 양자회담을 주장했고 부시 행정부는 3자 혹은 4자 같은 다자회담을 얘기했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6자회담이 됐는데, 그 때도 처음 분위기로만 봐서는 6자회담이이 결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6자회담으로, 북미 양자회담은 그 틀 안에서 하는 걸로 낙착이 됐다.

지금 회담 형식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것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기싸움이다. 미국은 그 과정에서 협상장에 가져갈 보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미관계는 북한의 주권을 간접적으로나 인정해줄 정도로 수준이 낮다. 2000년 조미 공동 코뮈니케를 만들던 당시에 비하면 그 수준이 훨씬 낮다. 미국이 북의 선제 행동을 요구하는 건 그런 상황을 반영한다.

프레시안 : 서 교수께서는 지난 6월 중순 <프레시안> 칼럼 '주술적 정치와 현실적 정치'에서 오바마 미 행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펴는 것은 부시 정부에서 내려오는 관성과 관료정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캠벨이 차관보로 확정되면서 그런 경향은 해소가 된 건가?

서재정 : 요즘 서울대에서의 강의 때문에 2주 가량 워싱턴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캠벨이 오기 전까지 대북정책은 중국통 고위 관리와 비확산 전문가가 주도했었다. 특히 중국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은 중국통의 작품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사실 북한도 잘 모르고 북중관계도 모른다. 그걸 관료정치 모델로 보자면, 중국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꾸 말해야지 자기의 위상도 높아지기 때문에 그런 관료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해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정교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냉전적인 입장을 가진 국무부 내 실무 책임자도 문제였는데, 그런 사람들이 최근 자리를 떠나고 캠벨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대북정책을 주도하던 중국통, 비확산 전문가, 그리고 캠벨의 역관계가 어떻게 재조정되느냐가 관건이다. 아직은 정리가 안 됐다. 지켜봐야 한다.

프레시안 : 캠벨 차관보가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고 보나.

서재정 :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펴면서 과거 미국이 벌어놨던 것까지 까먹은 측면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직후 체코 프라하에서 비핵화 관련 연설을 하면서 북한의 로켓을 '미사일'이라고 규정했고, 국제규범을 위반했으니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그 후 대북정책이 계속 강경하게 나가면서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게 됐고,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캠벨이 국무부에 들어가게 됐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정리하기에 좋은 시점이라고 본다. '봐라, 너희들이 그렇게 해서 망친 거 아니냐. 내가 수습을 좀 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캠벨이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북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북도 대화를 하고 싶어 하니까 나름대로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발언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종잡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 ⓒ프레시안

서재정 : 대중정치인이라서 그런다.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가서 북미대화가 잘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자기의 성과라는 식으로 얘기할지도 모른다.

클린턴 장관이 TV 대담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10일 기자회견 때처럼 준비된 스크립트로 말한 건지 아니면 그냥 한 건지 모르겠다. 확인을 해 봐야 알겠지만, 내용이나 톤을 보면 준비된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강하다. 즉흥적으로 했을 것이다.

물론 자기는 준비된 메시지를 보냈는데 북에서 대답이 없으니 '화답하지 않으면 틀지 모른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아서 그런 말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기자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사과하고 협상하자'는 입장이고 그와 관련해서 실무적인 접촉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여곡절은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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