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정일은 오늘도 현지지도에 나선다… 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정일은 오늘도 현지지도에 나선다… 왜?"

[화제의 책] 이관세 前통일차관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올 상반기에만 77회의 현지지도를 다녔다.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와병설이 제기됐고, 사진과 영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 전과 다르지만 현지지도만큼은 예년보다 더 많이 다녔다.

김 위원장이 2008년 한 해 동안에는 95회, 2007년 86회, 2006년 99회의 현지지도를 다녔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올해의 수치는 예사롭지 않다. 월 평균 13회로 거의 이틀에 한 번 꼴이다.

올 상반기 현지지도의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 관련 시설을 27번 방문해 전체 현지지도의 35%에 달했고, 작년 14차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시찰'이라고 표현하는 군부대 현지지도는 27차례로 작년 보다 1회 느는데 그쳤다.

김 위원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일치한다.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한 북한이 경제 재건에 그만큼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장거리 로켓을 발사, 2차 핵실험 등 북한이 대미 강경책을 몰아붙이는 걸 보고 많은 이들은 군부의 입김이 더 세졌다고들 말하지만, 최고지도자의 군부대 방문 회수가 눈에 띄게 늘지 않은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이관세 지음, 전략과 문화 펴냄) ⓒ프레시안
이처럼 최고지도자가 현지지도로 어느 곳을 얼마나 갔고 무엇을 지도했느냐 하는 문제는 북한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정책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단서' 정도가 아니라 방향을 정확히 가리켜 주는 풍향계에 가깝다. 아울러 김 위원장을 누가 수행했느냐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북한을 분석할 때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통일부에서 27년간 몸담으며 대북 문제에 잔뼈가 굵은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이 퇴임 후 학술적 연구의 주제로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천착한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나온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이관세 지음, 전략과 문화 펴냄)은 그 결실이다.

리더십의 디딤돌인가

외부 관찰자로써 북한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는 김정일의 '오늘' 현지지도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과거 현지지도가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살펴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관세 전 차관은 이 책에서 "북한 체제에서 현지지도는 북한식 정치제도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경제발전 전략이 형성되고 제도화하는데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해왔다"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 과정에서 인민을 동원하고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제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1956년 무렵 북한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발전노선에 관한 이념 논쟁 이후 현지지도가 대중동원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건국 초기 산업화 정책의 추진과 권력 갈등의 타개를 위한 대안으로 현지지도가 등장하고 기능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현지지도는 권력의 행사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형성에도 기여했다는 것이 이 전 차관의 분석이다. 다만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과 다른 점은 이른바 '사상론'과 '속도전'을 통해 아버지에 비해 대규모로, 더 빈번하게 대중을 동원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김일성은 사회주의 건설 초기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을 중요시한 반면, 김정일은 '위로부터의 지도'를 통한 대중동원을 더 중시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김일성은 창시와 실행의 과정에서 리더십을 확립했고, 김정일은 이데올로기의 실행과 확산을 통해 리더십을 확고히 했다"고 규정했다.

'국정 실패'의 근원인가

하지만 북한과 같은 유일체제에서 최고지도자가 현장에 내려와 무언가를 지시할 경우 아랫사람들이 그걸 거역하기란 불가능하다. 관련 전문가들이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지시지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의 '현명한 영도와 무오류성'이 이미 이데올로기화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합리성의 마비로 나타났다. 건국 초기 북한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현지지도가 가진 결정적인 한계는 바로 그것이다.

"현지지도의 지배방식은 동의기제를 배제하고 억압기제를 활용해 수직적, 수평적 지배를 구축함으로써 정치발전을 저해했다. (…) 현지지도는 생산성을 제고시켰으나 정치적으로 리더십의 정당성을 결여했다. 특히 성장정치를 내세워 당과 국가 관료의 특권적 지배를 강화하기도 했다."

"대중동원식 경제운영과 표리관계에 있는 현지지도는 경제 전반에 대한 딜레마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대중동원식 경제 건설을 목표로 삼았던 현지지도는 1990년대 경제난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이 전 차관은 "현지지도는 현재 북한을 짓누르고 있는 국정 실패의 요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이 책은 현지지도가 가지는 어떠한 요인들이 북한을 저발전의 질곡에 빠뜨렸는지에 대해 이론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 이관세 전 차관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차관으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실무 주역이었다. 사진은 이 전 차관이 2007년 9월 21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선발대 단장으로 평양에 다녀온 뒤 서울 남북대화사무국에 도착하는 장면 ⓒ연합뉴스
한편, 풍부한 자료와 참고문헌이 곁들여져 있는 이 책에서는 특히 최근의 북한에 대한 분석도 눈에 띈다.

이 전 차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작년 12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고 올해 1월에는 황해제철소를 간 사실을 거론하면서, 김일성 주석이 1956년 12월 강선제강소(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전신)를 현지지도하고 이듬해 1월 황해제철소에 갔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역시 북한의 현재 경제 재건 전략과 맞닿았다는 것인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 같은 통찰은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이관세 전 차관은 1981년 통일부에 들어가 2008년 초까지 일했다. 통일부 대변인, 정보분석국장, 통일정책실장, 차관 등을 역임했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북한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길을 닦았다. 현재는 퇴임 후 경남대학교 석좌교수로 북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